식지 않는 ‘위장 계열사 밝힘증’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2.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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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들 비자금 조성·사업 확장 위해 ‘호시탐탐’…협력 업체로 둔갑, 적발 어려워
공정거래위원회와 시민단체가 눈을 부릅뜨고 있지만 재벌은 위장 계열사를 만들려고 호시탐탐 엿본다. 적발되면 철퇴를 맞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재벌은 왜 위장 계열사를 가지려는 것일까. 위장 계열사가 가져다 주는 이득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새한그룹 이재관 전 부회장은 위장 계열사와 거래를 가장해 1천2백억원을 빌렸다. 해태그룹 박건배 전 회장은 위장 계열사인 합경을 사금고로 이용했다. 박씨는 위장 계열사로부터 매달 2백50만원씩을 정기적으로 받았으며 회사 돈을 마음대로 사용했다. 신동아그룹 최순영 전 회장은 위장 계열사를 통해 1억8천여만 달러를 대출받아 이 중 1억6천5백여만 달러를 해외로 빼돌렸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도 최씨는 위장 계열사를 이용했다.

또 자기 아들이 이 회사에 근무하는 것처럼 장부를 조작해 3억여원을 착복하기도 했다. 재계 서열 1위 삼성도 위장 계열사를 이용했다. 2000년 12월 부당 내부 거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적발된 삼성의 위장 계열사는 이재용씨에게 변칙 증여를 하기 위한 발판이 되었다.


위장 계열사 좋아하다 큰코다친 김우중


위장 계열사를 많이 만들어 교묘하게 이용한 기업가로는 단연 대우 김우중 전 회장이 꼽힌다. 지난 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대우의 위장 계열사 6개를 적발했다. 지난해에도 대우는 10여 개의 위장 계열사를 운영하다 들통 났다. 위장 계열사를 들여다보면 대우가 왜 무너졌는지 단박 알 수 있다. 김씨는 IMF 칼바람이 불던 1999년 6월 ㈜대우의 영국 런던지사 계좌에서 4천4백30만 달러를 빼내 홍콩의 위장 계열사 KMC에 송금한 다음 이 자금을 이용해 알짜배기 기업인 대우정보시스템을 헐값에 인수하기도 했다. 대우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대우그룹이 공중 분해된 지금도 이 위장 계열사들은 김씨의 비자금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0대 그룹이 계열사간 채무보증 금지와 출자총액제한 등 각종 규제를 받지 않기 위해 위장 계열사를 만들었다고 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돈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둔다. 국내 10대 그룹 총수들은 상장 계열사의 지분 단 2.02%로 그룹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총수는 계속해서 계열사 확장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견제하고 자금을 마련하기도 어려워 계열사를 확장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위장 계열사를 설립해 비자금을 마련하고 사업 확장도 꾀하는 것이다. 위장 계열사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가장 고전적인 수법은 실제 공사 금액보다 부풀려 차액을 빼돌리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공사 대금이 100억원이면 2백억원을 주고 100억원을 빼돌리는 식이다. 위장 계열사가 정식 계열사와의 독점 관계를 활용해 큰 수익을 낸다면 딴주머니를 차기가 그만큼 쉬워진다. 설사 손실이 나서 부실액이 커져도 모기업과는 법적으로 무관해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이다.


위장 계열사가 교묘하게 협력 업체로 둔갑해 공정거래위는 적발하는 데 점점 더 애를 먹는 형편이다. 30대 기업집단 소속 6백24개 회사 중 4분의 3 이상이 비공개 회사여서 외부의 감시가 전혀 미치지 않는다. 더구나 자금을 지원한 내용을 감추거나 분식 결산을 한 것을 재무제표만으로 가려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결정적인 내부자 제보가 없다면 실체를 규명하기 어렵다.


시민단체들은 “위장 계열사를 신고해도 공정위가 계좌추적권을 갖고 있지 않아 자금 거래 내역을 정확히 잡지 못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에 계좌추적권을 주어 정밀한 조사를 해야 한다”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재벌의 막강한 로비에 밀려 계좌추적권은 현재 공정거래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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