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구본무 “죽어도 못 진다”
  • 장영희 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2.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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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 생활 가전 시장에서 피말리는 전 쟁…고급화·대형화·디지털화 전략은 똑같아
LG전자 직영 유통망인 하이프라자 서울 테헤란로점. 백색 가전을 취급하는 이 매장은 사방 벽면을 새로 하얗게 칠해 놓았지만, 정작 흰색 제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가구 같은 느낌의 인테리어 개념을 도입한 최고급 냉장고도 보였다. 10년 쓴 냉장고와 세탁기를 바꾸려고 이 매장을 찾은 주부 김수연씨(40)는 한마디로 어리둥절했다고 털어놓았다. 눈에 익었던 가전 제품 모습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결혼을 앞두고 서울 대치동의 삼성전자 리빙프라자를 찾은 예비 신부 최영애씨(25)는 이미 광고와 인터넷을 통해 가전제품이 고급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신혼 살림을 꾸밀 아파트가 20평도 되지 않았지만 최씨는 646ℓ 양문형 냉장고와 7.5㎏짜리 드럼형 세탁기, 40인치 디지털 텔레비전을 골랐다. 여기에 영상기기를 중시하는 세대답게 100만원대 홈시어터를 선택했다.






사양 산업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변신



가전 업체들이 올 가을 1조4천억원대 혼수 시장을 잡기 위해 격전 중이다. 제품은 점점 더 고급화·디지털화했고, 매장 또한 고급화·대형화하는 추세다. 2백평에 이르는 LG전자 테헤란로점은 지난해 말 매장을 단장했다. 바닥에 카펫을 까는 것은 기본. 최고가 상품인 인터넷 냉장고의 최고급 이미지에 걸맞도록 호화롭게 꾸몄다. 박상근 점장은 “본사 차원에서 지방 중소 도시까지 적어도 100평 이상의 고급화 전략 점포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라고 말한다.



삼성도 비슷했다. 직영 유통망인 리빙프라자의 고급화·대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 대치동 직영점 리빙프라자의 이춘재 이사는 삼성이 고급형 통합 브랜드로 내놓은 하우젠 매장을 2층에 새로 꾸몄다며, 앞으로 하우젠 전문 명품점이 생겨날 것이라고 귀띔했다.
현재 생활 가전 시장에서는 대우전자 경영 정상화가 더디게 진행되는 바람에 LG전자와 삼성전자의 양강 구도가 굳어지고 있다. LG와 삼성이 라이벌인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만, 두 회사의 선점 경쟁은 점입가경이다. 생활 가전제품이 고급화·디지털화·대용량화로 급속히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두 회사의 사령탑이 경쟁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LG전자 디지털어플라이언스 김쌍수 사장은 생활 가전이 고급화·디지털화라는 변곡점을 지나는 상황에서 LG가 확실히 승기를 잡아야 한다며 임직원을 독려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LG보다 강도가 더하다. 삼성전자 디지털어플라이언스네트워크 한용외 총괄 사장이 “생활 가전은 절대로 사양 산업이 될 수 없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없어서는 안되는 생필품이며 산소 같은 존재다”라고 역설할 정도다. 1998년 생활 가전 부문을 매각하는 것을 검토하는 등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보았던 때와는 분위기가 딴판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한사장에게 ‘백색 가전에서도 1등이 되라’는 특명을 내린 상태다.



이건희 회장이나 구본무 회장이 생활 가전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에는 물론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미래가 없다고 여겨지던 생활 가전이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면서 앞으로 10년은 거뜬히 버틸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가전 고급화 경향은 두 회사에 큰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삼성의 경우 텔레비전 부문에서 40인치 이상 대형 디지털 텔레비전 판매 비중은 10%도 안되지만 매출액 비중은 30%가 넘는다. 양문형 냉장고도 판매 비중은 30%에 그치지만, 매출 비중은 50%가 넘는다. 그만큼 단가가 높아진 것이다. 같은 양문형 냉장고라도 여기에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인터넷 냉장고의 경우 가격은 기본형의 2∼3배에 이른다.



경쟁이 격화하는 조짐은 일선 마케팅 및 영업 조직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삼성은 소비자들이 지펠(양문형 냉장고)과 파브(디지털 텔레비전)는 잘 알아도 디오스나 엑스캔버스는 잘 모른다며 은근히 LG를 깎아내리고 있다. 반면 LG는 브랜드는 늦게 지었을지 몰라도 제품을 내놓은 시점은 엇비슷하며, 거의 모든 LG 제품이 삼성을 따돌리고 있다고 반격한다. 하지만 삼성측은 에어컨에서나 LG가 다소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뿐이다. 삼성측은 아예 종합전자회사인 삼성전자와 가전 회사 성격이 강한 LG전자와 맞비교하는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며 불쾌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삼성이 올 8월 야심작이라며 내놓은 통합 브랜드 ‘하우젠’에 대해서도 양사의 신경전은 첨예하다. 삼성측은 고급형 김치냉장고와 드럼형 세탁기, 에어컨 제품에 하우젠을 고안한 것은 지펠과 파브의 성공에 이은 또 하나의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이라고 말한다. 반면 개별 브랜드 전략을 취하는 LG는 다맛(김치 냉장고) 블루윈(에어컨) 같은 기존 브랜드에서 눈길을 끌지 못한 삼성이 내놓은 고육책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린다.






삼성측은 8월부터 시작된 하우젠 광고에 연말까지 100억원대 예산을 책정했다고 말하지만, 관련 업계에 알려지기는 2백억원대. 광고 회사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전체 생활 가전 광고비로 삼성은 1천1백억원대를 썼고 LG는 8백억원도 안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백50억원대는 족히 넘을 것으로 보이는 5개월치 하우젠 광고비는 이례적으로 많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LG·삼성, 6조5천억 시장 80% 넘게 차지



삼성이 하우젠이라는 브랜드로 승부수를 띄우기 직전인 지난 7월 말께 두 회사의 신경전은 극에 달했다. 두 회사의 2분기 실적이 알려진 것이다. 매출액이나 영업 이익에서 삼성은 LG전자를 두배나 앞질렀다. 하지만 반도체와 정보통신 등을 뺀 백색 가전과 텔레비전 등 미디어 부문에서는 달랐다. LG 생활 가전 부문의 매출액이 1조7천억원으로 삼성보다 7천억원 가까이 많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의 하나인 영업 이익률이 LG는 13.3%였지만 삼성은 8.5%에 그쳤다.



두 회사의 경쟁이 한국 가전 산업을 세계 수준으로 발전시켰다는 긍정론도 적지 않다. 한 증권사의 전자 담당 애널리스트는 “삼성과 LG 가운데 누가 내수 시장에서 앞서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큰 의미도 없다. 중요한 것은 내수 시장에서 피말리는 전쟁을 벌인 결과 두 회사 모두 세계 시장에서 수위 다툼을 벌일 수 있는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라고 평가한다.



영원한 맞수 삼성과 LG, LG와 삼성. 두 회사가 올해 6조5천억원으로 추정되는 생활 가전 시장을 80% 이상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벌어질 차세대 디지털 가전 제품에서의 선두 경쟁은 더 불꽃이 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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