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준 뜨자 ‘몽 브라더스’ 끙끙
  • 장영희 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2.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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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 기업들, 대선 지원 의심받고 그룹 위기설 퍼져 고전



현대 관련 기업들이 여의도발 ‘정치 리스크’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 10월27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정몽준 후보가 현대전자 주가 조작 사건에 연루되었음을 강력히 시사하면서 현대가(家) 기업들은 다시 ‘MJ 악재’에 노출되었다. 이번 이씨의 돌출 발언과 현대전자 1억 달러 유용설, 4천억원 대북 송금설이 아니더라도 현대가 기업들은 9월17일 정후보가 공식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이후 가을 나뭇잎처럼 흔들려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MJ 쇼크’에 주가는 추락하고…


현대가의 정치 리스크에 대해 시장 한복판에 서 있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대신증권의 한 관계자는 “시장 사람들은 현대중공업 주가를 정치 리스크의 바로미터로 본다. 올 3월에 기록한 고점과 대비할 때 반 토막이 나 있다. 조선 업황과 환율이라는 경제적 요인이 있지만 하락 요인의 절반을 MJ 쇼크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라고 주장한다.


북한경제시찰단 박남기 단장이 ‘대단한’ 회사라고 칭송한 현대중공업이지만, 그 주식은 사실 올 9월께부터 시장에서 소외되어 왔다고 해도 큰 무리가 아니다. 주식 수가 7천6백만주에 달하지만 하루 거래량이 많아야 20만주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외국인 지분율이 올해 초에 비해 약간 높아졌다고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은 7월께부터 최근까지 100만주 이상 팔아치웠다. LG투자증권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을 비롯해 투자자들은 현대 주식들에 대해 한마디로 꺼림칙하게 여기고 있다. 다른 ‘깨끗한’ 주식들이 많은데 현대 관련 주식에 굳이 손을 대겠느냐”라고 반문한다.


애널리스트들에게 현대가 기업의 주식은 기피 종목이다. 무슨 말을 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한다. 좋은 예가 올 하반기부터 현대 관련 기업들에 대한 기업 분석 보고서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정후보가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과 정몽헌 의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구실을 하는 현대상선에 대한 분석 보고서는 업계에서 사라졌다.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자동차가 현대의 자존심을 겨우 살려주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삼성증권의 한 관계자는 현대에 대한 애널리스트들의 정서를 이렇게 귀띔한다.“대선이 끝나거나 정후보가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한 애널리스트들은 현대가 기업들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현대의 정치 리스크를 계량화할 수도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 뭔가 말하는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


정후보가 9월17일 대선 출마를 위한 공식 기자 회견을 한 직후인 19일 현대자동차는 정경 분리를 선언했다. 21일에는 3남 정몽근 회장이 이끄는 현대백화점도 정경 분리 선언을 했다. 선언만 하지 않았을 뿐 현대중공업이나 7남 정몽윤 회장이 이끄는 현대해상화재, 사촌 형제인 정몽규 회장이 이끄는 현대산업개발 등 이른바 ‘몽 브라더스’ 기업들은 출마 직후 일제히 정후보와의 연결 사슬을 끊기에 바빴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정후보의 출마 선언은 개인적 결정일 뿐 현대 관련 기업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정후보에 대한 어떠한 인적·물적 지원도 하지 않겠으며 할 수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대그룹이 총동원되어 치른 1992년 대선에서 실패한 후 현대가 겪었던 혹독한 시련을 악몽처럼 떠올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애널리스트들은 현대가 기업들이 정후보를 지원할 여지가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9월10일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 ‘용감하게’ 정의원의 대선 출마설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던 우리증권 이종승 기업분석팀장은 “현대는 시장이나 국민 정서가 기업이 대선에 연루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본다. 시장이나 언론 같은 촉수가 많은 상태에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본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점은 상당수 애널리스트들도 공감한다. 현재까지 지원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징후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한나라당은 정후보가 대권 행보를 가속화한 9월 하순께부터 현대 때리기에 골몰해 왔다. 민주당도 거들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정치권이 사정없이 현대를 흔들어대자 정몽헌 의장이 이끄는 현대그룹 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든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과 사실상 채권단 손에 넘어간 현대건설, 매각 작업이 지연되고 있는 현대증권 등 금융 계열사가 모여 가까스로 그룹 모습을 띠고 있다. 정몽헌 의장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권과 해외 신인도가 더 나빠지면 진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풍문이 어지럽게 나도는 것이다.




중공업 임원이 정몽준 자금 창구 노릇?


기업 내용 측면에서 가장 안전 지대에 있다는 현대자동차도 바로 그 점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현대자동차는 부채 비율이 106%에다 4조원대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수출이 잘되어 하반기 실적이 좋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아무리 단절을 외쳐도 여전히 한통속으로 보는 정서가 있다. 피가 물보다 진하지 않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맏형 격인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자금력을 볼 때 어떤 식으로든 돕지 않겠느냐고 의심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그룹은 펄쩍 뛴다. 정몽구 회장이 도와줄 의지도, 도울 방법도 전혀 없다고 입이 아프게 강조하고 있으며, 아예 정치의 ㅈ자도 꺼내지 못하게 한다.


현대중공업도 한사코 정치와 거리를 두려고 애쓴다. 정후보가 이미 고문 직에서 사퇴했으며 11%의 지분도 은행에 신탁해 방화벽이 쳐졌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현대중공업 주가에 정치 리스크가 작용했다는 측면도 부정하려고 든다. 10월 말 현재 올 수주 목표를 55%만 달성했으며 애널리스트들이 자기네의 기업 내용을 부정적으로 보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말까지 흘릴 정도다. 현대중공업은 어떻게든 정후보와 연결 사슬을 끊으려고 하지만, 최근 증권가에 한 임원이 정후보의 자금 조달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풍문이 나돌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결국 정치 리스크라는 비정상적인 요인이 사라지면 현대가 기업들이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 애널리스트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스스로 통제가 안되는 정치적 위험에 노출된 기업을 투자자들이 기피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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