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꽃신’ 전략을 아시나요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2.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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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 제공→소비자 노예화→유료 전환’ 마케팅…IT업체들, 너도나도 활용


'동물 나라에 세상 모르고 편안히 살던 원숭이가 있었다. 하루는 오소리가 찾아와 원숭이에게 오색 빛 꽃신을 선물했다. 원숭이는 신발이 필요 없었으나 선물이라기에 받아 신었다. 그 후로도 오소리는 꽃신을 계속 바쳤고 원숭이 발바닥 굳은살은 차츰 얇아졌다. 이윽고 신발 없이 나다닐 수 없게 된 원숭이는 그만 오소리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정휘창씨가 1977년에 쓴 유명한 동화 <원숭이 꽃신>의 줄거리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천만 회원을 가졌다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 회사는 이 우화를 현실로 만들었다. 프리챌홀딩스(주)는 11월14일부터 국내 최초로 커뮤니티 유료화를 단행해 파장을 일으켰다. 마스터 회원(동호회 운영자)에게 매달 3천원을 내도록 요구했는데, 네티즌 세상에서는 대소동이 벌어졌다. 프리챌을 떠날 것인지 격론이 벌어진 것이다. 프리챌의 커뮤니티 수는 1백12만 개에 달한다.


프리챌 서영선 과장은 매달 서비스 운영 비용으로 13억원이나 들어간다며 유료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11월9일 현재 10만 명이 유료화에 동의하고 요금을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의 한 동호회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권기봉씨(24)는 “회원이 2백명이 넘고 게시물도 3천 건이 넘어서 도저히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었다. 유료화가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그냥 남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2000년 프리챌이 처음 무료 서비스를 열 때부터 이런 전략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프리챌은 원숭이(고객)를 유혹한 오소리가 되고 말았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이런 ‘원숭이 꽃신 경제학’에 충실한 기업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대학을 상대로 마케팅 사업을 많이 벌이고 있는데 그 중에 AATP라는 서비스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대학에 무료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신, 해당 대학은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교과목을 설치해야 한다는 계약이다. 학점을 인정받는 정식 과목이어야 하고, 대학은 마이크로소프트에 강의계획서·운영계획서·결과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현재 1백60개 주요 대학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학생 때부터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에 익숙해지면 사회에 나와서도 같은 제품을 쓸 가능성이 높다. 워드프로세서 같은 소프트웨어는 새로 배우는 데 학습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마이크로소프트가 미국의 빈민 학교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지원하려고 했지만 연방 법원이 독점이 우려된다며 규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선마이크로시스템은 지난 9월17일 전세계 학교에 자사 프로그램을 공짜로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1998년부터 AATP 계약을 맺은 서울대의 한 관계자는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은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AATP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실제 수업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램만 강의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서울대가 보고서를 불성실하게 제출하는 등 계약을 위반했다고 판단해 협정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통신회사가 핸드폰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도 비슷한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핸드폰 번호를 바꾸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한 번 가입자는 평생 가입자가 되기 쉽다.


경쟁 방해·신기술 개발 ‘양면성’ 지녀


업계에서는 이 ‘원숭이 꽃신 전략’을 전문용어로 록인이펙트(Lock-in effect)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벤처 업계에서 일하는 한 마케팅 담당자는 “요즘 전략 회의를 할 때마다 고착화 전략이나 록인이펙트라는 용어를 자주 쓴다”라고 말했다. IT업계에서는 특히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이 전략을 흔히 응용한다. 프리챌이 초등학생에 한해서는 요금을 면제하거나 이동통신업체가 10대에게 요금을 할인해 주는 것도 비슷하다. 록인이펙트가 인위적·자연적 고착 현상에 모두 쓰이는 말인 데 비해, 원숭이 꽃신 마케팅은 기업이 주도하는 인위적인 현상만을 설명할 때 쓴다.


박준우 교수(상명대·경제학)는 “기본적으로 록인이펙트는 경쟁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독점을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상품의 질을 높이기보다 고객의 교체 비용을 높이는 방식은 실질적인 경쟁을 방해한다는 분석이다.


반면 김상훈 교수(서울대·경영학)는 “꼭 록인이펙트를 나쁘게 볼 것은 아니다. 어떻게 잠금 효과를 풀 수 있을지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록인이펙트와 교체 비용(switching cost)은 양면의 거울 같은 것인데, 교체 비용을 낮추는 신기술이 등장하면 열쇠가 자물쇠를 열 듯 ‘록’이 풀린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프리챌이 유료화를 선언하자, 경쟁 업체가 자동 게시물 이전 프로그램을 만들어, 프리챌에 저장된 자료를 손쉽게 옮길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휴대 전화의 경우에도 ‘포터빌리티’(이동성) 서비스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예를 들어 011을 쓰던 사람이 019로 전화번호를 바꿀 경우, 기존 011 번호로 걸어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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