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5년이면 한국 따라잡는다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2.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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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팀, 현지 시장에서 7개 분야 밀착 조사…의류·조선 등 바짝 추격
한국은 중국보다 5m 이상 앞서 달리고 있다. 그러나 이 격차만으로 한국의 우승을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레이스 초반인 데다 중국은 체력과 근력이 우세하다. 이미 가속도까지 붙고 있다. 중국은 한국에 비해 출발이 늦고 경험이 부족할 뿐이다.





100m 달리기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과 중국의 주요 산업기술 경쟁 판도가 그렇다는 것이다. 산업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재단은 최근 한국과 중국의 산업기술 경쟁력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한국은 중국에 비해 4~7년 정도 기술이 앞선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서는 한국의 전통 주력 산업으로 꼽히는 자동차 반도체 조선 기계 등 7개 분야를 비교 분석했다. 분야별 전문 연구자들이 업계 실무자들과 함께 중국 현지 공장과 연구소를 직접 찾아다니며 조사했다.



7개 분야 가운데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의류업계이다. 현재 이 분야에서 한국이 중국보다 나은 것은 디자인과 품질 관리, 기획과 마케팅을 지원하는 정보화 수준이다. 가격 경쟁력은 말할 것도 없고, 생산 설비 수준은 중국이 한국보다 5년 이상 앞서 있다. 특히 우븐의류(바지 점퍼 티셔츠류)는 중국이 세계 일류 기업들의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생산 기지 노릇을 하면서 막강한 경쟁력을 확보했다. 중국 현지 조사를 나갔던 삼성패션연구소 김진영 연구원은 “중국 의류업체의 생산 설비와 규모가 상상을 뛰어넘었다”라고 전했다. 다만 그는 한국이 디자인이나 원단의 품질을 인정받고 있어 고급 의류 시장에서는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제일모직이 갤럭시를 중국 시장에서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올려 놓고 고가 전략을 구사하는 데에도 그런 위기 의식이 깔려 있다. 라피도·아스트라·후부 등을 진출시키면서도 고가 전략을 고집했다. 중국에서 생산하면 인건비 덕분에 원가 절감을 할 수 있지만 철저한 품질 관리를 위해 80~90%는 국내에서 생산해 운반한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중국과의 경쟁에서는 탁월한 디자인과 철저한 품질 관리를 기반으로 한 고가 정책만이 무기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갈림길에서 제일모직은 저가 시장을 내주는 대신 고가 시장을 먹는 쪽을 택한 것이다.



외국 자본가들, 중국 투자 선호



한국의 ‘달러 박스’였던 조선 분야도 중국의 추격에 바짝 긴장해야 할 상황이다. 중국 조선산업은 최근 대형 설비를 갖추며 급성장하고 있어 2~3년 안에 한국 조선업계의 맞수로 떠오를 것이라고 업계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기술 수준에서는 한국이 적어도 7년 이상 중국보다 발전해 있다. 전문가들은 오랜 노하우가 필요한 생산 관리 기술은 2010년에도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기 힘들겠지만, 설비와 인력만 갖추면 되는 설계 기술은 상당히 따라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여기에 대항하기 위해 국내 조선업계는 고기술 시장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중공업 백명철 부장은 “유럽이 조선산업을 한국과 일본에 빼앗기면서도 크루즈 선박은 아직도 직접 만드는 것처럼, 한국도 고기술 선박 시장은 중국에 절대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고기술 선박은 일반 상선보다 가격이 3~4배 가량 높고, 마진율도 좋다.



건설기계 산업도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진 분야이다. 한국 업체들은 굴삭기와 지게차에 주력하고 있는데, 핵심 부품의 기술 경쟁력에서 한국이 중국보다 4~5년 가량 앞서 있다. 그러나 변속기의 경우 이미 한국산이 가격 경쟁력을 상실했고 중국에 진출한 캐터필러·고마쓰·히타치 등 세계 일류 브랜드와 제휴한 업체들과 한국의 한판 경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현대중공업 이홍선 이사는 “이 분야의 중국 인건비는 한국의 10분의 1이어서 외국 자본가들이 중국 투자를 선호한다. 자본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까지 이전하기 때문에 중국의 기술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중국은 특히 산학 연계가 잘 되어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과학자들이 적극 개발해주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이이사는 덧붙였다.



의류·조선·건설기계에 비하면, 한국의 최대 주력 업종으로 꼽히는 자동차와 반도체는 한숨 돌릴 수 있는 형편이다. 한 해 1백50만대를 수출하는 한국 자동차의 기술 경쟁력은 약 3만대를 수출하는 중국보다 5년 가량 앞서 있다.



그렇다고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베어링·시트·에어컨·범퍼 같은 범용 부품에서는 값싼 인건비 덕에 중국 자동차가 막강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소형 상용차와 중·대형 트럭에서도 경쟁 제품보다 40~85% 싼 가격으로 시장을 휘어잡고 있다. 또 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GM·폴크스바겐 등 외국 업체와의 합작으로 품질 경쟁력도 급격하게 향상되는 추세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김성익 부장은 “중국의 자동차업계는 10년 전 방문했을 때보다 눈부시게 발전해 있었다. 특히 외국 협력 업체는 시설이나 생산성 모두 국내 업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가 올 들어 중국의 4대 자동차 회사인 북경기차와 합작회사를 설립한 것도 추격중인 중국 업체들을 앞지르려는 전략이다. 현대자동차는 2005년까지 중국 시장에 4억3천만 달러를 투자해 EF쏘나타와 아반떼XD를 생산할 계획이다. 아울러 EF쏘나타를 베이징 표준 택시로 공급해 브랜드를 알리고, 중국은행과 손잡고 자동차 할부금융에도 진출해 판매 효율성을 꾀하고 있다.



반도체산업은 자동차보다 한결 여유 있다. 중국이 지난해 4월부터 반도체산업 3단계 발전 전략을 추진하는 등 적극 육성하고 있지만(중국의 반도체 무역 적자는 1백40억 달러에 이르러 중국 정부가 필사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기술 격차가 워낙 커서 한국을 쉽게 따라잡지는 못할 전망이다.
세계 최대 D램 반도체 생산국인 한국에 비해 중국은 자본과 기술을 투자한 타이완과 싱가포르의 도움을 받아 겨우 한두 걸음씩 걷는 수준이다. 전반적인 기술 수준이 한국보다 5~6년 뒤져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관계자는 “반도체는 그 어떤 분야보다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하기 때문에 현재 중국 수준으로는 한국을 따라 오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별 소자 쪽은 상황이 다르다. 중국은 워낙 메모리와 같은 고기술 쪽보다 다이오드와 같은 저기술 저가 개별 소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이 분야에서는 품질 경쟁력을 꽤 갖추고 있다. 개별 소자 쪽을 현지 조사한 KEC 박흥기 부장은 “개별 소자 분야는 예상보다 훨씬 발전해 있었다. 물량 가동률과 원가 경쟁력이 높고 품질도 상당히 좋아져 한국 기업을 위협할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중국 산업, 개구리 점프로 빠른 질주”



가격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공작기계산업과 염료 분야에서도 중국은 위협적이다. 중국 공작기계산업이 합병·매수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는 데다 가격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 5년 안에 한국의 경쟁자로 떠오를 것이다. 특히 저가 선반과 같은 노동집약형 공작기계에서 추격전이 치열하다. 전문가들은 한국 공작기계의 브랜드 인지도가 높지 않은 편이어서, 더 걱정하고 있다.



염료산업 역시 긴장의 고삐를 바짝 당겨야 할 판이다. 중국 염료산업의 기술력은 한국에 비해 4~5년 뒤지고 있지만, 2010년에는 거의 비슷해질 것 같다. 최근 중국 업체들은 신제품을 개발하고 응용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 연구 프로젝트를 진두 지휘한 한국산업기술재단 석영철 정책연구위원은 “중국은 우리의 발전 단계를 그대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발전 단계는 뛰어넘는 개구리 점프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과기흥국’(과학 기술로 나라를 부흥시키자)을 내세우며 주요 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외국인 투자와 기술 지원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에 주목해야 한다고 석연구위원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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