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수수료 분쟁 막을 카드는 없는가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4.08.3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맹점·카드사 수수료율 대결 팽팽…BC카드·E마트 ‘벼랑 끝 힘겨루기’
신용카드사와 카드 가맹점 간의 수수료 협상이 3개월째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수수료 인상을 둘러싼 갈등은 할인점에 이어 홈쇼핑 업계, 이동통신업계, 손해보험협회(보험금 결제) 등으로 번지고 있으며, 양 진영의 사업자 단체들도 이 싸움에 가세해 점입가경이다. 8월26일 한국백화점협회·한국주유소협회 등 40개 사업자 단체로 구성된 전국가맹점사업자단체협의회(가단협)는 카드사들의 수수료 인상 방침에 맞서 결사 저지 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 날 가단협의 공격에 6개 전업계 카드사 모임인 여신금융협회도 즉각 반박 자료를 내고 방어에 나섰다.

두 사업자 단체가 내놓은 자료에는 수수료 분쟁의 쟁점이 잘 드러난다. 가단협측이 가장 문제 삼는 것은 대손비용이다. 카드사가 방만하게 경영해 대규모 부실을 초래했고 이에 따라 대손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는데, 이 비용을 가맹점에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BC카드 원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체 원가 4.75% 가운데 대손비용이 2.3%에 달했다.

이에 대해 한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사의 ‘원죄’는 인정한다. 하지만 카드 매출이 크게 늘어 덕을 본 것은 카드사만이 아니라 가맹점들도 그렇다”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또 백번 양보해 대손비용을 빼고 자금 조달 금리와 카드 승인·청구 비용 같은 프로세싱 원가, 부가서비스 원가만 따지더라도 평균 수수료율이 2.32%는 되어야 하는데, 현재 2.27%에 그쳐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카드사들이 가단협측을 극렬하게 비난하는 대목은 소비자 관련 부분이다. 카드사들이 소비자 불편과 제품 가격 인상을 초래할 수수료율 인상을 강행하고 있다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드사들은 또 과거 수수료율을 인하했을 때 가맹점들이 과연 소비자에게 이익을 돌려주었느냐고 반문했다. 카드사들이 2000년과 2002년 백화점 업계와 정부·여론에 내몰려 수수료율을 크게 인하한 것은 사실이다.

카드사들 경영 악화로 인상에 목 매

구조 조정을 통해 경영 부실을 해결하라는 가단협 주장에 대해서도 카드사들은 과도한 요구라고 일축했다. 지난해 29%(7천3백명)의 인력을 감원했고 2002년부터 현재까지 4조5천억원의 자본을 확충했으며 카드 자산을 69%나 감축하는 구조 조정을 단행했는데 더 하라는 것은 영업을 하지 말라는 뜻과 같다는 것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사들은 지금 숨이 넘어갈 지경인데, 경영 상황이 훨씬 괜찮은 가맹점, 특히 할인점들이 현재도 원가에 못미치는 수수료를 조금도 더 물지 못하겠다는 것은 극도의 이기주의다”라고 비난했다.

현재 카드사들의 경영 상황이 나쁜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냈던 카드사들은 올 상반기에도 1조3천억원이 넘는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은행계 카드를 뺀 6개 전업 카드사 기준). 게다가 지난해 말 개정된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카드사들은 이익을 많이 냈던 현금 서비스 비중을 2007년 말까지 50% 이하로 떨어뜨려야 한다. 신용카드의 본질이 현금 서비스나 카드론 같은 금융 부문이 아니라 신용판매 기능이라는 점에서 제대로 된 방향이지만, 카드사로서는 당장 가맹점 수수료율 인상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그동안은 신용 판매 부문의 적자를 금융 부문 이익으로 메워왔는데 갈수록 이렇게 상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수수료 분쟁이 확전 기미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것은 BC카드와 신세계 E마트이다. 한국 최대 신용카드사와 최대 할인점인 두 회사는 양 진영을 대표해 ‘선도투’를 벌이는 양상이다. 양 진영에서 이른바 교섭력이 가장 뛰어난 두 회사의 힘겨루기가 어느 편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수수료 분쟁의 향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KB·삼성·LG카드 등 카드사와 할인점·홈쇼핑·통신업체 들은 협상을 벌이면서도 두 회사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양측은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와 같은 형국이다. 8월25일 BC카드는 E마트에 9월1일부터 전가맹점에 대해 현재 1.5%인 수수료율을 2~2.35%로 올리겠다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이에 대해 E마트는 BC카드가 수수료율 인상을 강행하는 즉시 가맹점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초강경 방침을 재확인했다.

BC카드와 E마트는 왜 피차 최대 고객인 상대방과 결별하려는 것일까. BC카드측은 “E마트는 BC카드에 최대 매출 고객인 동시에 최대 적자 고객이다. 지난해 E마트로 인한 적자가 2백50억원에 달했다. 1996년부터 최저 수수료율(1.5%)을 적용받아온 데다 5만원 이하 소액 결제가 유독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E마트는 0.5% 인상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아예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3천억원의 이익을 낸 회사가 이렇게 버티는 것은 상도의를 저버린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E마트측도 완강하다. 모든 카드사가 0.5%만 올려도 수수료로 2백20억원을 더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신세계 매출액 6조7천억원(E마트 5조1천억원) 가운데 4조4천억원이 카드 결제여서 비중이 65.7%나 되는 데다가 BC카드 요구를 받아들이면 다른 카드사의 요구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착 상태가 계속되면 정부개입론이 무성해지기 마련이다. 이미 가단협과 일부 시민단체는 소비자 불편을 내세우며 개입을 촉구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것은 당사자 해결 원칙이라는 시장 원리를 헝클어트리는 최악의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금융연구원 이건범 연구위원은 “불편이 야기될 수 있지만 분쟁 당사자가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소비자가 참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BC카드와 E마트가 파국으로 치닫는 형국이지만 이들이 극적 타결을 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9월28일 추석 대목이 불과 한 달여 남았기 때문이다. 통상 추석 특수가 추석 2~3주 전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9월 초순, 늦어도 중순이면 양측이 중간 지점에서 타결의 실마리를 찾으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늦어지면 피차 치명적 손상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