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신했다, 고로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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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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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개성 표출 수단으로 큰 인기…경찰 검거 열풍에 “억울하다”
“어때요. 아파요?” “따끔따끔거리지만 이 정도는 참아야죠.” 평소 영화업계에서 일하면서 문신에 관심이 많았던 ㅎ씨(32). 동유럽에 유학할 때 그 곳 젊은이들의 문신 문화를 처음 접한 그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뒤져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문신시술소을 찾았다.

문신시술가는 ㅎ씨에게 문신의 위험성과 주의 사항을 설명하고 피부병이 있는지 확인했다. ㅎ씨는 팔뚝에 트라이벌이라고 불리는 불꽃 모양 문양을 새기기로 했다. 티셔츠 소매를 내리면 가려지는 크기다. 시술가는 문양이 그려진 특수 종이를 ㅎ씨 팔에 붙였다 떼어 표식을 남겼다. ㅎ씨가 카펫 위에 눕자 작업이 시작되었다. 시술가는 투명 장갑을 끼고 문신 기계를 팔에 댔다. “띠리리리~” 마치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검은 특수 잉크가 몸에 새겨졌다. 테두리를 그리는 데만 15분 정도 걸렸다. 동그라미 안에 ㅎ씨 이름의 머리 글자를 새기는 것으로 1시간여 만에 시술이 끝났다.

ㅎ씨는 흥정 끝에 20만원을 지불했다. ㅎ씨처럼 최근 끼 있는 젊은이들 사이에 문신 바람이 불고 있다. 5월31일 안정환 선수가 한·일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후 웃통을 벗는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안선수의 오른쪽 어깨에는 십자가가, 왼쪽 어깨에는 영어로 ‘혜원 러브 포에버’라고 적혀 있었다. 팬들은 징그럽다기는커녕 멋있다며 박수쳤다. 경기도 수원에서 영업 중인 한 문신시술가는 “평소에는 문신 안내 홈페이지 접속자가 4백여 명이었는데, 안정환 골 세리머니 이후 10배 이상 늘었다. 하루에 문신 문의 전화가 40통 이상 온다. 반나절이면 배터리가 닳아버린다”라고 문신 열풍을 전했다.

막 문신을 한 ㅎ씨는 “압구정동의 헬스클럽에 다니는데 옆에서 문신한 몸을 보이며 운동하는 사람을 자주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화 업계가 감각과 개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문신하는 게 직업적으로도 낫다”라고 말했다. 6월5일 저녁 서울 홍익대 앞에서 다음카페 태투(문신) 동호회 회원 10여 명이 모임을 가졌다. 문신동호회라지만 각자의 문신은 티셔츠 속에 가려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문신을 억지로 과시하고 자랑하는 사람은 오히려 동호회에서 왕따당한다”라고 말했다. 회원 가운데는 여성 최승원씨도 있었다. 의상 디자인을 하는 그녀는 “어머니가 결혼 어떻게 할 거냐고 야단치기는 하지만 사회 생활에서 문신 때문에 불이익 본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회원들은 즉석에서 서로의 팔에 헤나(1주일 가량 지속되는 문신)를 그려주기도 했다. 김낙윤 회원은 “문신이라는 말 대신 태투(tatoo)라는 용어를 써달라”고 주문했다. 비록 뜻은 같지만 문신이라는 단어 속에 조폭 이미지가 있어서 오해를 산다는 것이다. 문신시술가는 태투이스트라고 부른다. 문신 동호회 회원들은 학생·태투이스트·회사원 등 조폭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대부분이다. 2000년 이맘때 4백여 명이던 회원 수는 6월7일 현재 1만2천명이 넘을 정도로 늘었다. 동호회 운영자(아이디 데쓰마왕)는 “안정환 골 세리머니 이후 회원이 천명 가량 늘었다”라고 말했다.이들을 끌어들이는 문신의 매력은 무엇일까. 한 문신동호회 회원은 “영원함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영원하지 않다면 왜 태투를 하겠습니까.” 태투 문화는 피어싱 문화와도 관련이 깊다. 현 문신동호회 운영자도 원래 피어싱동호회 회원 출신이다. 한때 피어싱동호회와 연합 카페를 꾸리기도 했다.

문신 애호가들이 늘어나면서 파생 산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안효엽씨(28)는 문신 애호가들을 위한 문신용품 온라인숍을 열 계획이다. 벌써 전통 문신 문양이 그려진 티셔츠·목걸이·인형 등 문신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물건 100만원어치를 수입했다. 그는 “일반적인 컵이라도 태투 문양이 있으면 다른 의미가 되고 가격이 두배로 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문신 애호가들과 문신 업자들은 우울하다. 문신 열풍과는 반대로, 경찰의 ‘문신 검거 열풍’이 몰아치기 때문이다. 6월3일 광주 서부경찰서는 문신을 새겨 재신검을 받아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은 공익근무요원과 공익요원 대기자 34명을 체포했다. 4일에는 경기도 군포경찰서가, 7일에는 인천경찰서가 비슷한 혐의로 병역 기피자와 문신 기술자를 구속했다. 눈썹미용 문신업자 56명도 6월5일 체포되었고, 이들 중 2명이 구속되었다. 가히 문신 공안 정국이다.

팔에 있는 문신으로 인해 공익근무 판정을 받은 김우람씨(21)는 “나는 정말 문신이 좋아서 한 건데 병역 기피자로 의심받아서 억울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경찰 조사는 받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2계 관계자는 “본청으로부터 문신 관련 병역 기피자들을 색출하라는 수사 지시 공문을 받았다. 내사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실정이어서 문신 시술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들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는 핸드폰 번호만 공개될 뿐 이름이나 사무실 전화번호를 알리지 않는다. 현재 법률은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문신을 시술하면 ‘보건 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법’ 위반으로 처벌받게 되어 있다. 문신 시술을 무면허 의료 행위로 보는 것이다.

서울 강남 신사동에서 간판까지 내걸고 영업을 했던 태투이스트 상운씨(예명)도 최근 쫓기듯이 작업실을 오피스텔로 옮겼다. 그나마 간판도 걸지 못하고 항상 불안에 떠는 처지다. 그는 “의사들은 문신 시술을 하지도 않고 할 줄도 모른다. 현행법은 사실상 문신을 하지 말라는 소리다”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2000년 한 태투이스트가 위헌 소송을 냈지만 기각된 적이 있었다. 물론 자격이 없는 사람이 함부로 문신을 시술하면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최&이 서울피부과 병원의 최성준 전문의는 “문신을 하다 에이즈나 간염이 전염되었다는 사례가 종종 학계에 보고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문신 제거 수술을 하더라도 자국이 남기 때문에 무분별한 문신 유행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도 문신을 의사만 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은 현실과 맞지 않으며 의사가 나서야 할 시술 행위는 아니라고 말했다.

문신 시술이 불법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더 심해진다는 지적도 있다. 문신 용품 규제나 위생 기준을 따질 수 없기 때문에 피해는 고스란히 문신 애호가들이 보게 된다. 외국의 경우 문신 시술자들은 정부에 사업 등록을 하고 정기적으로 보건 당국의 점검을 받으며 영업을 한다. 카펫을 쓰면 안되고 항균 타일 위에서 시술해야 하는 등 요건이 까다롭다. 최근 외국에서 태투 문화를 접하고 귀국한 신세대 태투이스트들은 국내 태투 문화를 바꾸고 있다. 에르난 씨(33)와 같은 태투이스트들은 국제 사회에서 문신이 하나의 예술로 자리잡았다며 한국 사회의 편견을 비판한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호리요시(일본)나 아닐굽타 같은 태투이스트는 문신 애호가들 사이에서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현행법상 단순히 귀를 뚫는 행위도 의료인이 아니면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귀고리를 하고 있는 수많은 국민은 불법 행위에 동참한 셈이다. 결국 국민의 생각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신 열풍은 쉽사리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서울 이태원에서 문신업을 하는 유고씨(31)는 “법으로 아무리 규제해도 문신을 할 사람은 끝내 한다. 올 여름 해변을 기대하라. 작년과는 풍경이 다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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