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병은 한 평, 대통령은 100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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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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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 국가 공헌도 아닌 계급 따라 묘지 규모 차별
‘묘지 번호 1586, 이경 곽형근’. 지난 4월11일 곽형근 이경은 숨진 지 2년 만에 대전 국립 묘지에 안장되었다. 벽제 ‘추모의 집’에서 대전 국립 묘지까지 3시간이면 갈 거리를 ‘죽은’ 그는 2년이나 걸려서 갔다. 2001년 곽이경은 2층 내무반에서 밖으로 떨어져 숨졌다. 타살 혐의가 없기에 자살이라고 우기며 당국은 공식대로 처리하려 했다. 하지만 아버지 곽한열씨(61)는 2년간 다리품을 팔아 끝내 순직 처리를 받아냈다. 국립 묘지로 가는 길이 트인 것이다. 자살자는 국립 묘지에 묻힐 수 없다(1980년부터 지난해까지 군에서 자살로 처리된 3천8백53명은 국립 묘지 언저리에도 가지 못했다). 그러나 산 너머 산이었다. 안장 대상자를 심사하는 국가보훈처가 제동을 걸었다. 행정 심판까지 거친 끝에 곽이경은 국립 묘지에 안장되었다. 곽형근 이경의 유골은 1평 남짓한 공간에 묻혔고, 60cm짜리 묘비가 세워졌다. 이처럼 사병인 곽형근 이경에게는 국립 묘지 행이 험난했다. 그러나 장성급들에게 국립 묘지행은 뻥 뚫린 고속도로다. 안장된 뒤에도 사병과 장교는 계급에 따라 차별을 받는다. 현재 국립 묘지는 다섯 곳이다. 동작동 국립 묘지와 대전 국립 묘지 외에도 3·15 국립 묘지(마산) 4·19 국립 묘지(서울) 5·18 국립 묘지(광주)가 있다. 풍수지리상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 형상을 띠고 있다는 동작동 국립 묘지는 국립 묘지의 원조 격이다. 1954년 국군 묘지에서 시작한 동작동 국립 묘지에는 5만4천4백60명이 안장되어 있다(4월30일 현재). 포화 상태여서 1976년에 문을 연 대전 국립 묘지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동작동 국립 묘지는 전직 대통령, 임시정부 요인, 애국지사, 국가 유공자, 장군, 경찰관 묘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런데 계급에 따라 그 규모와 안장 방식이 다르다. 대통령령인 국립묘지령이 아예 차별을 못박고 있다. 국립묘지령에 따르면, 국가 원수급은 80평 규모로 유해를 안장할 수 있다.

동작동 국립 묘지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내외의 묘소가 있다. 이대통령 묘소는 프란체스코 여사와 합장해 봉분이 크게 조성되어 있다. 박정희 대통령 내외의 묘는 국립묘지 가장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 5월27일 한 관람객이 육영수 여사의 묘를 훼손할 때도 눈에 띄지 않았을 만큼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 전직 대통령 묘역은 주변 조경을 감안하면 규정된 80평보다 넓은 100평 규모다(윤보선 전 대통령은 국립 묘지 행을 거부하고 선산에 묻혔다).

장관급 장교인 별들의 무덤은 8평 규모다. 국립묘지령에는 국가 원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평토장(평장)을 해야 한다. 땅위에 봉분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별들의 무덤 역시 모두 봉분을 하고 있다. 명백한 위반이지만 관리를 맡고 있는 국립현충원측은 관례라며 묵인하고 있다. 나머지 영관급 장교 이하와 사병의 묘역은 1평이다. 곽형근 이경의 경우처럼 화장한 뒤 유골을 안장하고, 평토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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