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선에 미치면 ‘패가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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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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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대박’ 소동, 사기극으로 끝나기 일쑤…“돈스코이호에 금괴 없을 수도”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러시아 침몰선 발견을 계기로 주식 시장에 보물선 파동이 재연되었다. 장외 시장에서 2백∼3백 원대를 오르내리던 동아건설 주식은 돈스코이호 발견 소식이 전해진 6월3일, 주당 8백원에 거래되었다. 동아건설에 7천억원 이상 채무 보증을 해준 대한통운 주가도 12%나 뛰었다. 주식 시장에 골드 테마주가 형성되면서 해저 유물발굴 업체인 (주)골드쉽에 투자한 대아건설 주식도 상한가를 기록했다. (주)골드쉽은 인천 옹진군 해상에서 침몰한 청나라 때 목선인 고승호(高昇號) 인양 작업을 하고 있다.

동아건설과 대아건설 주가의 반짝 상승은 2001년 진도 죽도 해저 매장물 탐사에 뛰어들었다가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된 (주)삼애인더스 주식 파동 때와 비슷하다. 당시 액면가 2천5백원이었던 삼애인더스 주가는 1만5천원대까지 올랐다가 천원대로 추락한 뒤 다시 4천5백원을 기록하는 등 극심하게 널뛰기했다. 당시 삼애인더스는 보물 사업의 가치가 무려 20조원이라며 선량한 개미 투자자들을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보물선 소동은 ‘염불’(보물)보다는 ‘잿밥(주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한탕을 노리기 때문에 되풀이된다. 현재 파산 절차를 밟고 있는 동아건설은 2000년 12월에도 50조원어치 금괴가 실린 돈스코이호 발굴 작업이 주식 시장에 알려지면서 17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적이 있다. 그러나 동아건설은 2001년 법정관리 폐지 결정을 받음으로써 주식 상장이 폐지되었다. 당시 동아건설 주가 상승은 보물 탐사업체 투자 붐을 일으키며 삼애인더스 보물 소동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2000년 이후 3년 만에 보물선 파동을 되풀이하고 있는 동아건설은 현재 “발견된 침몰선이 돈스코이호일 가능성이 높지만 돈스코이호에 보물이 실려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라며 한 발짝 물러섰다. 돈스코이호에 금괴가 실려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보물이 있다는 주장도 추정일 뿐이다. 러시아 일간지 <시보드냐>는 2000년 12월 ‘울릉도 부근에서 침몰한 드미트리 돈스코이호에는 당시 해군 예산의 일부인 황금을 선적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돈스코이호 선박 모형 등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해군박물관은 2001년 4월, KBS <일요 스페셜> 제작팀에게 ‘돈스코이호에 금괴가 실려 있다는 자료는 없다’고 금괴가 있다는 일각의 주장을 부인했다.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침몰선을 발견한 한국해양연구원 유해수 박사도 “돈스코이호 보물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설령 돈스코이호에 금괴가 실려 있다 하더라도 러시아가 보물에 대한 청구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동아건설이 대박을 맞을 확률도 높지 않다. 국내에서 보물선 소동이 일어난 지역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현재 (주)골드쉽이 작업하고 있는 인천 옹진의 고승호 인양사업을 비롯해 (주)조인트산업이 거제도 해상에서 침몰선 ‘해방 39함’ 탐사 작업을 했다. 거제도·거문도·군산·부안 앞바다에서 태평양전쟁 때 침몰했다는 일본 군함이나 화물선에 금괴가 실려 있었다는 소문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오른쪽 지도 참조).

국내 보물선 전문가로는 진도 죽도 보물 탐사에 나섰던 소윤하씨(59)와 거제도 해상에서 ‘야마시타 보물선’으로 알려진 해방39함 인양을 추진했던 신동식씨(56)를 꼽을 수 있다. 또 군산 선유도 인근 해상에서 금 28t과 보석 상자 4개가 실려 있다는 일본 화물선 ‘장산환’(長山丸)을 아직도 탐사하고 있는 백 아무개씨(47)도 있다. 소윤하씨와 함께 진도 죽도 매장물 탐사에 나섰던 오세천씨(35)도 신동식씨의 도움을 얻어 침몰선 10여 척의 위치까지 알고 있는 전문가로 통한다. 오씨는 2001년 말부터 (주)삼애인더스와 손잡고 해저 유물 탐사에 나섰다가 지난해 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씨 구속까지 몰고온 보물 게이트에 휘말려 홍역을 치른 뒤 자취를 감추었다. ‘보물선 파동’은 사기 행각 등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북 군산에 살던 조 아무개씨(45)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조씨는 2000년 11월 “태평양전쟁 때 금괴를 싣고 가다 군산 앞바다에서 침몰한 ‘쾌창환’을 인양하면 금괴 지분 17%를 주겠다”라며 투자자 최 아무개씨(42)로부터 7억원을 받아 가로챈 사실이 드러나 지난해 2월 사기 혐의로 체포되었다. 조씨가 보물선 ‘쾌창환’이라고 주장한 침몰선 발굴 소식은 2000년 여름, SBS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 <호기심 천국>과 <초특급 일요일 만세> 등에서 여러 차례 방송해, 공중파 방송이 사기 범죄에 이용당했다는 비난을 샀다.

보물선 소동은 끝이 없지만 실제 국내에서 해저 유물이 발견된 지역은 서너 곳에 불과하다. 1976년 중국 송·원대 유물 2만2천여 점이 실린 보물선이 발견된 전남 신안 앞바다와 조선 백자 8점이 발견된 전남 고흥 앞바다, 그리고 고려청자 수천 점이 발견된 전북 군산 일대이다. 특히 고군산군도가 있는 군산 앞바다는 해저 유물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군산시 옥도면 비안도 앞바다에서 고려청자와 접시 등이 3천여 점 발견되었고, 현재도 문화재청이 4차 수중 발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해저 유물 탐사업자 오세천씨도 고군산군도 바다 밑에서 다이빙 작업을 하다가 고려 청자류를 발견해 당국에 신고한 적이 있을 정도로 군산 앞바다에는 침몰선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아건설이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침몰선 발견 소식을 발표한 6월3일, 공교롭게도 진도 보물섬 사기에 연루된 (주)삼애인더스는 “이용호 게이트의 장본인 이씨가 회사 운영자금을 횡령하는 등 회사에 4백60억원의 손해를 입혔다”라며 이용호 전 대표와 이씨의 대리인 김 아무개 변호사를 상대로 60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삼애인더스 주주들은 이씨가 재산을 모두 처분해서라도 회사에 끼친 손해를 만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유령처럼 출몰하는 보물선 파동 때문에 패가 망신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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