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미디어 비평>과 이상호 기자
  • 정혜신 정신과의원 원장 (www.hyeshin.co.kr)
  • 승인 2003.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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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에 ‘긴장의 법칙’ 심다
거의 매일 긴장 상태에서 살아야 하는 세상살이 때문인지 상담실에서 뒷머리와 목의 뻣뻣함,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머리와 목에 있는 근육들이 장기간 수축될 때 나타나는 긴장성 두통이다. 긴장 감소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긴장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마련인데 그것이 불가능할 때 긴장은 불안으로 번져간다.

역대 권위주의 정권들은 곧잘 긴장 감소가 순환하는 것을 차단했다. 입만 열면 건국 이래 최대의 안보 위기나 경제 불안을 강조하며 전략적으로 긴장감을 조성해 불안을 증폭해 왔다. 우리에게 건강한 ‘긴장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데에는 그런 사회 분위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부부 간에도 건강한 상호 관계를 위해 긴장감이 필요한 것처럼, 긴장이란 본래 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대상을 객체화할 수 있는 심적인 힘이다.

그런 점에서 6월 중순 방송 100회를 맞는 MBC <미디어 비평>은 건강한 긴장 문화가 무엇인지를 실감 나게 보여준다. 한국 방송 사상 최초의 매체 비평 프로그램이라는 <미디어 비평>은 ‘동종 업계 비판 금지’라는 언론계의 오랜 관습을 깨고 매체간 상호 비평을 본격화함으로써, 우리 언론계의 건전한 비평 문화 정착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평을 위한 비평이라는 일각의 비판도 있지만 ‘<미디어 비평>이 출현함으로써 신문들이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표현은 매우 적확해 보인다. 한 언론이 다른 언론의 잘못을 묵인하는 침묵의 카르텔이 깨질 수 있었던 것은 <미디어 비평>이 지난 2년 매체 상호간 긴장 관계를 꾸준히 유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의 본분을 비리 고발이라 믿고 있다는 <미디어 비평>의 이상호 기자는 지난 10여 년간 스무 차례에 달하는 각종 소송과 살해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탐사·고발 전문 기자로 불릴 만큼 기자로서의 탁월한 긴장감을 유지해온 흔치 않은 사람이다. <미디어 비평>과 관련해 자사 사장의 성향까지 비판할 대상으로 삼는 이상호 기자에게 언론계 내부 비판과 상호 견제를 목표로 하는 <미디어 비평>은 맞춤 양복처럼 보인다.

얼마 전 이상호 기자는 <미디어 비평>에서 1980년 광주 항쟁 때 언론인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아무런 반성 없이 아직도 우리 사회 주류로 활보하는 전직 언론인들을 인터뷰했다. 말이 인터뷰이지 제대로 말상대도 해주는 않는 이들을 따라다니며 끈질기게 그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추궁하는 이상호 기자를 보며 나는 ‘먹먹한’ 감동을 느꼈다. 언론계 선배이기도 한 현직 국회의원이 이상호 기자에게 “(당신도 기자라니 잘 알겠지만) 그때(5공 시절) 당신이 기자라면 어떻게 했겠어?”라고 질문하는 것을 보며 나는 <미디어 비평>의 존재 의미를 새삼 깨달았다. <미디어 비평>처럼 언론계 내부의 상호 비평을 마다하지 않는 매체가 자꾸 늘어난다면 훗날 이상호 기자 같은 후배나 동료에게 ‘쪽’이 팔릴까 두려워서라도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에 제동을 걸지 않겠는가. 우리의 신체가 항상 일정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개개의 근육이 따로따로 긴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긴장의 법칙은 언론 상호 간에도 똑같이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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