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IS 논쟁 계기로 ‘정보 인권’ 인식 싹터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 만에 생활기록부를 떼어본 이용호씨(가명)는 깜짝 놀랐다. 서류가 손때 묻은 서류철이 아니라 컴퓨터에서 깔끔하게 인쇄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세상 참 편리해졌다는 생각이 든 것도 잠깐, 갑자기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지능지수 125’ ‘과묵하고 책임감이 양호함’. 담임 선생님들이 손으로 작성한 구닥다리 생활기록부가 통째로 컴퓨터에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앞으로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흘러다니게 될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 것이다. 현행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가동되면 이런 초·중·고교 기록이 고스란히 한데 모인다. 1996년부터 생활기록부가 전산 입력되기 시작했으므로, 정보를 한데 모으기 위한 기초 공사는 일찌감치 끝난 셈이다. 실제 중학교 교사인 장민호씨(가명)가 기자 앞에 켜 보인 NEIS 시스템에는 이미 학생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교사의 종합 의견은 물론 건강 기록이 망라되어 있고, 심지어 이 학생이 어느 의사로부터 치과 치료를 받았는지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한 내용이 가득했다. 하지만 시범 학교에서 담임을 맡고 있는 그도 아직 그 정보가 어디까지 흘러갈지 알지 못한다. 장씨는 “학교 바깥에서 학생 정보를 탐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정보가 어디까지 흘러들어가게 될지 몰라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른바 전교조가 ‘센’ 초등학교에서는 학생 정보를 올려보내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위 학생처럼 상세 기록이 컴퓨터 NEIS 속에 모두 올라 있는 상태다.
외부로부터의 해킹만이 아니라 내부자에 의한 정보 유출에 속수무책이라는 점도 불안한 요소다. 또 법적으로 정보 접근권을 가진 사람뿐 아니라 엉뚱한 사람이 정보를 다룰 개연성도 크다. 실제 장씨가 다니는 학교의 경우 교사에 대한 교무 기록은 교감이 관리해야 하지만, 교감이 컴맹인 탓에 다른 교사가 대신한다. 일선 학교에서 교육청으로 모으는 과정에서, 그리고 모아진 후 가공되는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 정보를 다루게 될지 장담하지 못할 상황인 것이다.
NEIS에 의한 정보 인권 침해 우려는 비단 재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1981년 2월 이후 각급 학교 졸업자도 NEIS의 정보 수집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름과 주소, 입학 및 졸업 연도 등 ‘간략 정보’만 놓고 볼 때 등재 대상은 무려 2천만명에 이른다. 재학생과 다를 바 없는 상세 정보가 등록되는 1998년 이후 졸업자는 5백만명. 여기에는 이름과 주소, 부모의 성명과 생년 월일은 물론, 재학 시절 출결 상황, 키와 몸무게 및 체력 급수, 수상 경력, 자격증, 교사의 진로 상담 기록, 체험 활동 상황. 수강 과목과 성적, 교사의 행동 특성 및 종합 의견까지 두루 망라된다.
이대로 실행될 경우 정부는 주민 등록을 한 성인에 관한 정보뿐 아니라 그 성인의 성장기 정보까지 일목요연하게 손에 쥐는 셈이 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라더’가 따로 없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이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교육부가 상세 정보 보관 기간을 5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겠다고 후퇴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이에 따라 지난 6월11일 고교 졸업자 44명이 국가를 상대로 개인 정보 침해에 대한 손해 배상을 청구하고 나섰다. 주관 단체인 ‘프라이버시 보호와 NEIS 폐기를 위한 연석회의’는, 상세 정보 등록 대상자인 1998년 이후 졸업자들을 모아 2,3차 소송을 밀고 나갈 계획이다. 혹 떼려다 혹 붙인다고, NEIS의 무지막지한 식탐은 오히려 정보 인권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논란 끝에 삭제하기로 했지만, 학생에 대한 징계 기록이나 건강 기록, 학부모의 직업이나 교사가 속한 단체 이름 등을 기재하도록 요구하면서 우리 사회의 인권 불감증이 극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외국에서는 최상급 요주의로 취급하는 ‘형벌·건강·신조에 관한 정보’에 해당한다.
결국 전자 정부 구현 진척 속도가 다른 부처보다 느리다는 부담을 느껴온 교육부는 섣불리 행보를 재촉하다 도리어 전자 정부에 대한 회의론을 확산한 꼴이 되었다. 일찍이 전문가들은 전자 정부에 대해 개인 정보 보호 장치가 미흡하다고 비판해 왔다. 이제는 시민단체가 앞장서서 ‘내 정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인 정보 인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그제서야 행정자치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6월14일 검찰과 경찰 등 공공기관이 개인 정보를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에 따르면 개인정보보호심의위원회를 만들어 포괄적인 통제권을 갖도록 하고, 수사기관이 공공기관의 개인 정보를 이용할 경우 이를 당사자에게 알려주도록 하는 ‘정보 이용 고지 의무’를 신설하기로 했다.
전문가에 따르면, 정보 인권은 전세계적으로 ‘생성 중인 기본권’이다. 이인호 교수(중앙대 법대)는 “정보 인권은 디지털화한 개인 정보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타인의 수중에서 무한대로 수집되고 관리될 수 있는 새로운 정보 환경에서 등장한 권리다. 이를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확립해야 하고, 정보를 분산 관리하는 것 자체가 자동 방화벽 기능을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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