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록·사유서, 사실과 다르다
  •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3.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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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보성초등학교 관련 서류 입수/“조작·은폐됐을 수도”
지난 5월9일 오전 11시, 대전에 있는 충남 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대전 충남 지역 시민·사회 단체 대표들은 ‘보성초등학교의 진실을 규명하고, 도교육청은 사건 해결을 위해 즉각 나서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장 주변에서는 17일째 천막 농성 중인 전교조 충남지부 소속 교사들이 피켓 시위를 벌였다. 서승목 교장이 자살한 이후 여론의 몰매를 맞은 전교조가 이처럼 ‘사건 은폐 조작’을 규탄하며 천막 농성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장학록과 사유서에 있다. 이들은 보성초등학교의 장학록이 조작되었고, 서교장의 사유서를 교육청이 은폐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시사저널>은 국회 교육위원회에 속한 민주당 이미경 의원실로부터 문제의 장학록과 사유서 등 관련 자료를 얻어 정밀 분석했다. 보성초등학교의 장학록은 이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이다. 장학록은 사건 초기 차 접대를 거부한 데 따른 ‘보복 장학’이라고 주장하던 진 아무개 교사의 주장을 뒤엎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충남도교육청도 이 장학록을 근거로 진교사를 해임 처분했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입수한 장학록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 먼저 3월5일자 교감의 장학록을 들여다보자. 진교사가 차 접대를 거부한 날은 3월8일. 그 이전에 장학이 있었는지 여부는 진교사에 대해 집중된 장학이 보복성이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다. 홍 아무개 교감의 3월5일자 장학록에는 ‘학습 지도 방법 별도 지도 요구됨. 기본학습 지도 미흡. 사후 지도. 기본학습 지도 방법. 특별실 사용 지도 안내. 교실 관리 미흡, 항상 임장 지도 필요’라고 적혀 있다. 대상은 진교사가 담임을 맡았던 3학년 1반이다.

그런데 이 학교의 근무 상황부에는 홍교감이 3월5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인사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예산교육청에 출장을 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날 과학 수업 시간은 3교시. 진교사에게 특별실(과학실) 사용 지도를 했다면, 오전 11시에 홍교감은 학교에 있었어야 한다. 장학록은 수업 시간표와도 상이하다. 장학록에는 홍교감이 3월11일(화)에 국어과, 3월12일(수)에는 수학과 시간에 장학 지도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3학년 1반의 수업 시간표를 살펴보면, 화요일에는 국어 과목이, 수요일에는 수학 과목이 없다.
서교장의 장학록도 미심쩍은 점이 있다. 서교장은 2001년 5월 이후로 장학록을 쓰지 않았다. 2년 가까이 쓰지 않던 장학록을 갑자기 쓰기 시작한 것은 3월8일로, 이 날은 진교사가 차 접대를 거절했다고 주장하는 날이다. 교장과 교감이 각각 작성했다는 장학록은 내용도 차이를 보인다. 이전 장학록은 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인 교육 과정이나 통상 업무에 대한 내용이 전부였다. 그런데 2003년 3월에 쓰인 장학록은 진교사에 대한 수업 장학 내용뿐이다. 현지 조사를 한 민주당 교육위 진상조사단은 이에 대해 “예산 관내 초·중등학교 37개교 가운데 특정한 교사 한 사람을 두고 거의 매일 장학을 실시한 경우는 한 번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충남지역 시민·사회 단체는 장학록의 신뢰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전교조 충남지부 배영현 정책실장은 “홍교감이 매일 장학록을 썼다면 이렇게 틀릴 이유가 없다. 책임 회피용으로, 사후에 일괄 작성하면서 조작 또는 은폐된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관할 교육청도 사유서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지난 4월14일, 충남도교육청은 국회 교육위에 보성초등학교 사건에 대해 보고했다. 이 날 도교육청은 진교사의 진정을 받고 예산교육청이 현지 사실 조사와 조처를 한 것은 3월25일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는 중요한 사실이 누락되어 있다. 바로 3월20일 예산교육청이 실시한 첫 번째 사실 조사이다. 3월20일, 예산교육청 이 아무개 장학사는 서교장·홍교감·교무부장을 면담하고 사실 조사서를 작성했다. 이 사실 조사에서 교감은 ‘아침에 출근하면 교장선생님께 인사도 없어, 인사도 드릴 겸 차를 대접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의사 타진을 한 적이 있음. 그 당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고맙게 생각하였음. 다음날 그것이 곤란하다고 하여 그만두라고 하였음’이라고 밝혔다. 차 시중을 요구한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예산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도교육청에도 공문으로 보고를 했는데, 도교육청에서 국회에 보고하면서 왜 3월20일자 조사에 대해서 언급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도교육청의 국회 보고서는 논란이 되었던 서교장의 사유서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3월21일자로 작성된 사유서에 서교장은 ‘과도한 업무 분장과 상호간의 공감대를 갖지 못한 교내 장학으로 학교 경영에 물의를 빚어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썼다.

그러나 이 사유서는 4월22일, 전교조의 요구로 뒤늦게 공개되었다. 그 전까지 도교육청은 사유서의 존재를 부인했다. 바로 이 때문에 교육청이 사유서와 최초 사실 조사서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여러 의혹에 대해 홍교감은 “장학록은 매일 썼고, 한번에 몰아서 쓴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다(위 상자 기사 참조).

예산교육청은 “4월14일에 있던 국회 보고에서 사유서가 누락된 것은, 보고서를 초등교육과가 작성할 당시 사유서가 민원 처리 부서인 감사담당관실에 있었기 때문에 초등교육과는 사유서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의도적으로 누락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진교사와 전교조 충남지부 집행부는 서교장 유가족들로부터 명예 훼손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이다. 조만간 대질 신문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진교사는 “대질 신문에서 분명히 진실을 밝히겠다”라고 말한다(위 상자 기사 참조). 보성초등학교 사태의 진실은 아직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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