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반대말이 교장입니까”
  •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3.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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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갈등, 정면 충돌 위기로 치달아…교장선출보직제 둘러싸고도 팽팽한 대립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전국초·중·고 교장단이 정면 충돌할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4월4일 발생한 충남 보성초등학교 서승목 교장 자살 사건이 도화선이었다. 교장단은 지난 4월21일, 5월11일에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전국의 교장 1만3천명이 모이는 ‘서승목 교장 추모대회’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교장들의 거리 집회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교장단은 서교장의 죽음을 ‘전교조에 맞선 순교’라고 규정하며 “전교조가 정의와 애국심을 모르는 반국가적 집단,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수구적 집단으로 변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전교조도 교장단의 움직임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 교장단을 비롯한 교육계 기득권 세력이 서교장 자살 사건을 계기로 전교조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 중단을 위한 ‘연가 투쟁’, 교장 선출 보직제 추진 등 강공책을 구사하고 나섰다.

이같은 갈등을 지켜보는 서울 한성여중 고춘식 교장(57)의 심정은 남다르다. 그는 ‘전교조 조합원 출신’ 교장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 전교조 분회장이던 그는 2000년 11월, 오랫동안 학내 분규에 시달리던 한성여중에 공개 채용을 통해 교장으로 취임했다. 고춘식 교장은 한성여중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애국 조회를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기획하는 ‘발표 조회’로 바꾸었다. 교장이면서도 아이들을 이해하고, 수업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1주일에 3시간씩 1학년 한문 수업을 직접 한다.
고춘식 교장은 전국 교장단의 성명서와 한 일간지 홈페이지에 실린 전교조 관련 '리플' 4백50개를 일일이 출력해 읽어본 뒤에 전율을 느꼈다. 그는 “전교조를 ‘반국가적 집단’이라고 표현한 교장 선생님에게 묻고 싶다. 자기 학교의 어느 전교조 선생님을 떠올리며 글을 썼는지. 전교조도 자기 학교 식구인데…”라고 말했다. 또한 고교장은 “전교조가 언제 이렇게 많은 증오의 씨앗을 뿌렸는지…”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전교조’의 반대말이 ‘교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라고 했다.

‘교장 선출 보직제와 학교자치 실현 연대’(교선보연대)의 이상선 상임대표(63)는 지난해 정년 퇴임한 전직 초등학교장이다. 그는 전교조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교장선출보직제는 일정한 경력을 갖춘 교사가 교장 후보로 출마하고, 법제화한 교사회와 학부모회 등이 교장을 선출해 학교운영위원회의 결정을 거쳐 시·도 교육청이 임명하는 제도이다. 교장은 임기가 끝나면 다시 평교사로 돌아간다.

교장 출신인 그가 보기에 현행 교원 승진 제도는 ‘교사들을 승진 경쟁의 노예로 만드는 제도’이다. 현재 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교감 자격증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교감이 되기 위해서는 ‘25년’ 교육 경력 평정, 근무 성적 평정, 연수·연구 성적 평정, 가산점 등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 특히 ‘교육 경력 평정’ 기간이 25년이어서 ‘젊은 교장’은 기대하기조차 힘들다.

0.01점 차이로 승진이 좌우되는 경쟁이다 보니, 가산점을 따기 위한 교사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시범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는 부가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교사들은 교육부 지정 시범 학교, 교육청 지정 시범 학교로 지정되기 쉬운 과학고, 사범대학 부속 학교로 전근하기 위해 애쓴다. ‘도서·벽지’ 학교에 근무하면 도서 벽지 가산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승진 경쟁의 막차를 탄 50대 교사들은 산간 벽지 학교를 전전한다.

이상선 대표에 따르면, 승진의 결정적 점수는 교감·교장이 주는 근무 평정이다. 승진을 위해서는 교감 자격 연수를 받기 직전 2년 동안의 근무 평정에서 학교 교사들 가운데 최우수 점수를 받아야 한다. 상위 20%에게 ‘수’를 주는데, 같은 ‘수’라도 급 간에 차이가 있다. 교감 승진이 0.01점 차이를 다투는 경쟁인 점을 감안하면, 학교에서 ‘1등 수’를 받아야 승진할 수 있다. 근무 평정 점수는 비공개이다. 이대표는 “교장의 눈에 드는 ‘1등 교사’가 되기 위해 1년 내내 교장의 자동차 기사 노릇을 한 교사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전남 곡성에 있는 겸면초등학교 이천만 교장도 교장선출보직제를 찬성한다. 전교협 활동을 했었지만 지금은 교총 소속인 이교장이 교장선출보직제에 찬성하는 것은 이 제도가 교육청과 학교 간의 수직 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교장은 교장들이 교육청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교육청에서 보내는 공문서 수발이 학교 수업을 저해하는 제1의 요인이다. 오전 10∼12시 공문서를 수발하기 위해 수업을 제쳐놓는 경우도 생긴다는 것이다.

때로는 교육부 권장 사항도 교육청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교육부는 학교마다 ‘교사 자율 출퇴근제’를 권장하고 있다. 이교장은 ‘9시 출근, 5시 퇴근’을 ‘8시30분 출근, 4시30분 퇴근’으로 조정했다. 이교장은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교육부 권장 공문대로 시간을 조정했는데, 교육청이 교감을 통해 다시 원래 시간으로 환원시키려고 했다. 교육청은 통제권을 쥐고 싶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교장선출보직제는 전교조와 교장단 사이의 갈등을 증폭할 수 있는 ‘뇌관’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교장단은 전교조가 추진하는 교장선출보직제에 대해서는 결사 반대하고 있다. 서울의 한 교장은 교장을 뽑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황석근 교총 대변인은 “교장선출보직제는 일선 학교를 정치판으로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황대변인은 “지금의 교사 평가가 교육적 성과보다 승진만을 위한 평가로 왜곡되는 문제는 근무 평정 항목을 세분화하는 등 운영을 개선하면 대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교총이 내놓은 승진 방안은 ‘수석교사제’이다. 지금의 교직 구조가 교장·교감 등 소수의 관리직으로 진출하지 못하면 무능한 교원으로 취급당하고 있으므로, 관리직이 되지 않아도 수석교사로서 대우를 받게 하자는 것이다. 1급 정교사에서 교감·교장(관리직)으로 승진할 사람과 수석교사로 나뉘어 승진 적체가 해소된다는 주장이다. 교육부는 교장 임용 방식을 다양화할 목적으로 1996년부터 ‘교장 초빙제’를 도입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다. 교장초빙제가 교장자격증 소지자로 대상을 제한하면서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다.

고춘식 교장은 교장선출보직제가 교단에 활력을 불어넣을 민주적 제도라고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부작용을 우려한다. 교총과 교장단의 반대가 워낙 결사적이고 단호해서 몇몇 학교에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갈등을 심하게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다. 고교장은 “학교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실제 도입 과정에서 난리가 나는 학교도 있을 수 있다. 교장선출보직제는 시범적으로 운영해 검증한 다음, 학교 형편에 맞게 점차적으로 확대해 가는 방법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전교조·전교협 출신 전·현직 교장들은 교단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교장단과 전교조가 먼저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천만 교장은 “교육계 선배인 교총이나 교장단이 전교조를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이 참에 전교조를 교단에서 쫓아내려 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고춘식 교장은 “이런 싸움에서 누가 이긴들 의미가 없다. 전교조만 욕을 먹는 게 아니라 자칫 교육 자체에 대한 불신을 낳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상선 대표는 “이번 기회에 교장선출보직제를 포함한 모든 방안을 검토 대상에 포함해 교장 임용 제도 개선을 공론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들의 바람은 ‘상생(相生)의 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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