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실실 수사로 산더미 의혹 캔다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3.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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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송금’ 특검팀, 처벌 수위 등 미묘한 대목 많아 고심
지난 4월18일 오전 9시, 송두환 특별검사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해암빌딩 현관에 들어서자 1시간 전부터 진을 치고 있던 기자 20여 명이 송특검을 바짝 따라붙었다. 수사팀이 2000년 6월 현대상선에 4천억원을 대출해주는 과정에 개입한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 자택을 17일 오후에 예고 없이 압수 수색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기자들의 목소리는 흥분되었다. 송특검은 기자들의 질문에 “(압수 수색 보도는) 신문이 너무 앞서가고 있다” “추가 출국금지 조처에 대해서는 특별히 입장을 정한 게 없다”라는 말만 하고는 14층 특검사무소로 황급히 들어가버렸다 송특검에 앞서 8시20분에 출근한 김종훈 특검보는 현관 입구에서부터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오늘은 누구를 소환하느냐’는 질문 공세를 받았다. 특검팀의 언론 창구를 맡은 김특검보는 “아침 브리핑 때 보자”라며 입을 다물었지만 기자들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특검사무소 입구까지 따라가 끈질기게 질문했다.

대북 비밀 송금 의혹을 수사하는 송두환 특검팀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으로부터 집중 조명되고 있다. 국내 주요 신문·방송사 들은 특검팀이 입주한 건물에 사무실을 임차해 임시 기자실까지 마련해 밀착 취재하고 있지만, 수사 비밀 누설에 따른 처벌을 우려한 특검팀 관계자들이 입을 다무는 바람에 매일 숨바꼭질이 벌어지고 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언론이 송두환 특검팀에 큰 관심을 갖는 것은 특검이 맡은 임무가 막중하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 관련 대북 비밀 송금 의혹 사건 등의 진상 규명’ 역할을 맡은 송두환 특검팀은 산업은행과 현대상선 관계자뿐만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 핵심 인사들을 수사 대상으로 겨냥해 놓았다.

4개월(최장 1백20일)로 한정된 특검 수사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검팀은 업무 첫날인 4월17일 이전부터 현대상선과 현대건설 계좌 추적 작업에 들어갔다. 현대전자 및 외환은행 관계자 등 15명을 추가로 출국 금지해 출금자는 모두 39명으로 늘었다. 수사팀은 또 4월17일부터 감사원과 산업은행 실무자들을 불러 사건 경위를 파악했고, 휴일에도 정상 출근해 사건 기록을 정밀 검토했다.

송두환 특검팀은 최근 핵심 간부 인선을 마무리지었다. 특검팀을 이끄는 송두환 특검(54·사시 22회)은 판사 출신으로서 소탈한 성격에 합리적이고 온화해 소장 변호사들 사이에 신망이 두텁다. 묵직하고 신중한 처신이 돋보이는 충청도 양반 성품이어서 특검을 대과 없이 잘 끌고 가리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특검보들 역시 만만치 않은 경력자들이다. 박광빈 특검보(47·사시 22회)는 광주지검·대구지검 강력부장·대검 과학수사과장·대검 마약과장을 지낸 검찰 강력부 출신 변호사이다. 김종훈 특검보(46·사시 23회)는 민변에서 활동해온 변호사로 강금실 법무부장관, 1999년 옷로비 특검보로 이름을 날렸던 양인석 청와대 사정비서관, 황덕남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코드가 맞는’ 개혁 인사이다. 법조계에서는 송특검이 수사는 박광빈 특검보에게 맡기고, ‘기획’이나 ‘판단’은 김종훈 특검보와 협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특검팀의 수사는 강력부 출신인 박충근 부장검사(47·사시 27회)와 30대 후반의 젊은 검사들인 박진만·이병석 파견 검사가 맡고 있다. 송두환 특검과 박광빈 특검보가 경기고·서울법대 선후배이고, 송두환 특검과 박광빈·김종훈 특검보, 박진만·이병석 검사 등 핵심 수사 인력이 모두 서울대 법대 선후배로 끈끈한 유대관계에 노·장·청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특검팀 구성원들의 코드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송두환 특검은 민변 회장으로 재임하던 2001년 3월, 대한변협이 변호사대회를 열어 언론사 세무 조사를 비판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자 자기가 겸직하던 대한변협 윤리위원장 직을 내놓았다. 그러나 같은 민변 출신 김종훈 변호사는 2001년 8월 언론사 탈세 고발 사건과 관련해 이종왕 변호사와 함께 <동아일보> 변론단을 맡았었다.

특검팀 일부 인사의 도덕성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박충근 부장검사는 서울지검 동부지청 검사로 재직하던 1999년 5월, 서울동부경찰서를 출입하던 <대한매일> 기자 ㄱ씨를 성추행했다는 시비에 휘말려 전주지검으로 좌천되고 법무부로부터 ‘근신’ 징계를 받았다. 박검사는 그 해 전북여성단체연합으로부터 ‘걸림돌’로 선정당하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송두환 특검팀을 바라보는 법조계의 시각은 여러 갈래다. 송두환 변호사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추천한 박재승 대한변협 회장은 송특검이 인권 변호사로서 인품과 자질이 뛰어나다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검찰 출신 변호사들 가운데 ‘인물 구성이 아니라 수사력이 문제’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우선 송두환 특검은 대북 송금 사건 수사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던 민변 회장 출신이고, 판사 출신이어서 수사 경험이 전혀 없다. 특검에서 활동하는 박광빈 특검보·박충근 부장검사·박진만 검사는 강력부 출신이어서 대북 문제에 식견이 있는 공안부 검찰 경력이 없고, 금융 사건을 수사한 경험도 적다. 그러나 송두환 특검은 특검 사무실 개소식 뒤 기자들과 가진 오찬 자리에서 “박광빈·김종훈 특검보와 수사를 맡은 파견 검사 3명에게 100% 만족한다”라며, 특검팀이 주위의 우려와 달리 질 높은 수사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송두환 특검팀이 그동안 있었던 세 차례 특검과 성격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점도 특검의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1999년 옷로비·파업유도 사건 특검과 2002년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개인 비리 수사였고, 검찰이 수사한 것을 재수사했다. 하지만 송특검은 대북 송금 사건을 백지 상태에서 수사해야 한다. 지난해 대북 송금 사건을 맡았던 서울지검 형사9부(현 금융조사부)는 이 사건 수사를 맡아 겨우 열흘 정도 검토한 뒤 수사를 유보해 특검팀이 참고할 만한 내용을 거의 전해줄 수 없는 형편이다.

특검팀을 가장 고민스럽게 하는 점은, 특검이 국민적인 의혹을 수사하고 있지만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민 여론은 특검 출범 이전부터 ‘남북 화해 협력과 국익을 위해 수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과 ‘국민적 의혹을 철저히 수사해 사건의 실체와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에 대해 송두환 특검은 지난 4월16일 국민에게 발표한 ‘특별검사의 입장’을 통해 “상반된 두 가지 요청을 모두 충족시키기가 어렵다. 먼저 사안의 진상을 규명한 후에 국익과 국민의 뜻을 헤아려 적정한 해법을 모색하겠다”라고 밝혔다. 사건의 실체는 엄정하게 수사하겠지만 처리(형사 처벌)나 수사 결과 공개는 제한적으로 하겠다는 복안이다.

지난해 12월20일 송두환 변호사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자축하는 민변 송년회 자리에서 “현직 대통령이 민변 회원이지만 만약 기대에 어긋나면 민변 차원에서 항의 서한을 보내고 징계·경고를 하자”라고 말해 참석했던 사람들로부터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나 민변 회장을 지낸 간부로서가 아니라 대북 송금 특검을 맡은 송두환 변호사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가고 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넌다는 송두환 특검의 ‘허허실실’수사가 어떻게 전개될지 법조계는 물론 전국민이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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