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동대문 에서 ‘노다지’ 캔다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3.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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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분양·관리 용역 맡아 수십 억~수백억원 ‘꿀꺽’…거물 변호사·세무사 도움 받아 ‘안전’
“지금은 자유당 말기와 비슷한 세상입니다. 깡패가 천억원대 재산을 모은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2001년 10·25 재·보궐 선거에서 동대문 을구에 출마한 한나라당 홍준표 후보는 열변을 토했다. 조직폭력배들이 동대문 상가 일대에서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도록 방치한 정부를 비난하는 동시에 ‘모래시계 검사’ 출신인 자신이 조폭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음을 강조한 선거 전략이었다.

홍의원이 폭로한 대로 동대문 조폭들은 상가 분양과 관리 용역 등을 통해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했다. 동아파 김 아무개씨는 동대문 ㅁ상가 분양 사업에 손을 대,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4년 만에 수백억원대 재산가가 되었다. 보량파 송 아무개씨도 동대문에서 ㅇ상가 등을 분양해 거액을 챙겼다. 경찰은 송씨의 재산이 천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조폭과 전략적 제휴 맺어야 사업 가능”

동대문에서 의류 쇼핑몰을 운영하는 박 아무개씨(46)는 “동대문에서 사업하려면 조폭과 검찰을 끼고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폭 없이 사업을 하면 여기저기서 괴롭히는 조폭이 너무 많아, 차라리 ‘야무진 건달들’을 데리고 있는 것이 사업에 보탬이 된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조폭이 일정 지분을 가지고 참여하거나 임원으로 등재되는 등 전략적 제휴가 맺어지기도 한다.

최근 동대문 일대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굿모닝시티 사건의 경우도 조폭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지난해 굿모닝시티 윤창렬 사장(49)은 동대문 조폭의 터주 대감으로 불리는 이 아무개씨에게 5천만원을 주고 공사장 주변 노점상을 정리하도록 했다. 또 분양 관련 폭력 사건이 발생해 전 굿모닝시티 임원 4명이 폭력·공갈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어 처벌받기도 했다. 현재 검찰은 조폭 출신이 굿모닝시티 분양 사업에 개입해 거액을 챙긴 혐의를 잡고 수사하고 있다. 굿모닝시티측이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도 조폭이 개입해 거액을 챙긴 단서가 포착되었다는 것이다.

굿모닝시티 직원들도 조폭과의 연루설을 부인하지 않았다. 굿모닝시티의 한 임원은 “사장님이 사람이 좋아 힘이 있는 정치가나 주먹 들이 주변에 좀 많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사원은 “우리 회사와 관련된 조폭은 사업 과정에서 기본적인 선을 넘지 않았다. 철거할 때도 조폭이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라고 발을 뺐다.

동대문 대형 쇼핑몰 분양은 최근 조폭들 사이에 가장 각광받는 사업 중 하나이다. 규모가 크고 막강한 힘을 가진 조직의 경우, 아예 사업주와 함께 분양에 참여한다. 부지 매입과 철거에서 실력을 행사한 대가로 일부 지분을 보장받은 경우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점포 재임대권을 꿰어차고 있다. 자리가 좋은 이른바 ‘로열 점포’는 실제 전대보증금 외에 수백만∼수천만 원씩 웃돈을 받고 분양한다. 새 입주자는 보증금 수백만원을 내면서도 되돌려받는다는 조항은 없다. 때문에 이 자리는 주인이 자주 바뀐다는 특징이 있다.

동대문 ㄷ상가에서 의류 도매업을 하는 김 아무개씨(37)는 별다른 이유 없이 ‘로열 점포’에서 두 번이나 쫓겨났다. 김씨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되레 협박을 당했다. ‘우리 나라가 이렇게 후진 나라다’라고 생각하며 이를 꽉 물고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상가 운영위원회나 관리 회사를 세워 상가에서 청소·경비·주차 업무를 하는 것도 동대문 일대 조폭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수입원이다. 이들은 입주자들과 직접 접촉하기 때문에 자주 마찰이 발생한다. 하지만 입주자들로부터 이미 서약서와 계약서를 받아 놓은 상태여서 법적으로는 별 무리가 없다.

서약서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규격 봉투를 사용한다. 지각·결석할 때는 벌금을 문다. 홍보비로 매일 만원씩, 운영비로 매달 20만원씩 낸다. 이미테이션 상품을 팔지 않겠다.… 만약 위 사항을 지키지 않을 때는 퇴점 등 회사측이 내리는 결정을 무조건 따르겠다.’지난해 서울지검 강력부에 적발된 나주 동문파 조직폭력배들은 서울 동대문의 대형 패션상가에서 이러한 계약서 하나로 상인들을 상대로 돈을 뜯거나 점포 임차권을 강제로 빼앗았다. ㅁ상가 1층에서 여성복 가게를 운영하다 쫓겨난 적이 있는 안 아무개씨(28)는 “평소에는 사소한 위반 사항을 봐주다 갑자기 서약서를 내밀며 나가라고 했다. 몸집이 소만한 사람 두어 명이 욕을 하고 협박해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동대문의 한 대형 쇼핑몰 관리부장 송 아무개씨(37)는 강남에서는 ㄱ파 행동대장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쇼핑몰 관리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아예 회사 임원으로 적을 두고, 문제될 소지가 있는 업무는 다른 조직에 용역을 준 상태다. 그는 “동대문에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던 초창기에는 폭력과 탈법 행위가 많았지만 지금은 폭력을 쓸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동대문에서 소형 쇼핑몰 분양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송씨는 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수입 30억∼40억 원은 족히 올릴 것으로 내다보았다. 송씨는 “동대문은 실력이 야무진 조폭 10여 명이 대형 점포와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그 주변에 조그만 조직들이 붙어먹고 산다. 동대문 상가를 통해 먹고 사는 조폭 조직원은 수백 명도 넘을 것이다. 예전에 비해 시장 상권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조폭들이 부쩍 늘었다”라고 말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서울지방경찰청 폭력계 조폭 담당 형사는 “동대문에는 조폭이 한 명도 없다. 이미 기업가로 변신했다”라고 말한다. 그 형사는 “조폭들이 회칼을 들고 설치는 것도 아니고 몰려다니지도 않는다. 조폭이라고 구속하면 거물 변호사와 검찰의 비호를 받아 바로 나온다”라고 말했다.

조폭 수사의 대가인 서울고검 조승식 형사부장은 “최근 조폭들은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고문 변호사나 세무사를 두고 법망을 교묘히 넘나들며 기업가 행세를 하고 있다. 이제 조폭 수사를 단순 폭력 사범이 아닌 경제 사범으로 지정하고 특별 수사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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