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형사는 왜 윤락업소 해결사가 되었나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3.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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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달라스 스포츠 마사지’ 여종업원 탈출·감금 사건 전말
계단까지 거리는 약 2m. 마침 망을 보던 남자는 자리를 비웠다. 인천 남구 용현동 퇴폐 윤락업소 ‘달라스 스포츠마사지’ 지하 화장실에 숨어 있던 임 아무개씨(20·여)는 긴장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탈출 작전을 다시 한 번 되뇌었다. ‘무조건 달리는 거다.’ 그녀는 하이힐을 벗어 두 손에 들었다. 그리고 계단을 향해 냅다 뛰어 올라갔다. 지상에 올라오니 문 앞에 남자 친구가 대기해 놓은 승용차가 보였다. 임씨가 차에 타는 순간 지하에서 건장한 남자 종업원이 씩씩대며 올라왔다. 무인 감시 카메라로 임씨가 탈출하는 장면을 본 것이다. 임씨와 남자 친구는 “거기 서!”라며 욕을 퍼붓고 쫓아 오는 종업원을 뒤로 하고 차를 몰아 달아났다. 7월9일 오후 2시, 임씨의 ‘달라스 탈출’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임씨 일행은 쾌재를 불렀지만 탈출은 앞으로 전개될 복잡한 사건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틀 뒤인 7월11일 마사지 업소 사장은 임씨가 숨어있던 문학동 자취방을 찾아내서 임씨를 도로 데려갔다. 문제는 당시 업소 사장이 인천 중부경찰서 형사를 동원해 임씨를 협박했다는 점이다. 결국 임씨의 친구들은 7월14일 112에 신고했고, 사건이 복잡해지자 업주는 임씨를 풀어주었다. 이것이 세간에 ‘경찰이 포주와 함께 탈출 여성을 도로 잡아갔다’며 화제가 된 사건이다. 도대체 어떻게 경찰이 여성 감금에 가담하게 된 것일까. 현장을 찾아 사건을 면밀히 추적해 보았다.

임씨가 달라스 스포츠마사지에 발을 들여놓은 때는 7월8일 밤이었다(8일에 탈출했다는 그간의 신문·방송 보도는 틀렸다). 임씨와 업주 사장 김 아무개씨는 8일 저녁 인근 ㅅ다방에서 업소에서 일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그날 저녁 8시에 업주는 텔레뱅킹으로 임씨의 친구 계좌에 5백만원을 보냈다. 그러나 달라스 스포츠마사지는 평범한 마사지 업소가 아니었다. 여자 종업원들은 나체에 가운 하나만 걸친 채 손님을 맞았다. 대기실에서 ‘언니’들은 음란한 용어를 써가며 어떻게 남자를 흥분시키는지 설명했다. 그 곳은 스포츠 마사지를 가장한 퇴폐 윤락업소였던 것이다. 여자 종업원과 손님들은 ‘샤워실’이라 불리는 곳에서 성관계도 맺고 있었다. 아차 싶은 임씨는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다음날 실행에 옮겼다.



문제의 경찰이 등장한 것은 그 다음부터다. 7월11일 밤 10시. 임씨의 은신처를 찾아간 업주 김사장은 임씨 일행이 문을 열어주지 않자 평소 안면이 있던 박 아무개 경사(40)를 호출했다. 박경사를 조사한 인천 중부경찰서 청문감사관실에 따르면, 그는 집에서 쉬다가 전화를 받고 별 생각 없이 문학동 현장으로 갔다고 한다. 감사관실 관계자는 “박경사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고, 자신이 형사라고 밝히지도 않았다. 업주가 박경사의 신분을 임씨 일행에게 알리자 박경사는 현장을 피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 임씨는 형사가 적극 가담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자기가 형사라고 스스로 밝혔고, 임씨에게 “너희들, 수갑 차고 경찰서 갈래?”라며 협박했다는 것이다. 박경사는 임씨와 임씨 친구 2명의 주민등록번호를 적었다. 임씨는 “형사가 없었다면 업주에게 순순히 문을 열어주지 않았을 것이고, 다시 스포츠마사지 업소로 돌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형사가 윤락업주의 빚을 받아주는 ‘해결사’ 노릇을 한 셈이다. 김사장이 임씨를 데리고 달라스 스포츠마사지로 되돌아갈 때 형사는 그 승용차에 같이 타고 있었다. 이에 대해 중부서 감사과는 “동행한 것이 아니라, 박경사 집이 그 근처에 있어서 차를 빌려 탄 것일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취재 결과 형사의 개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14일, 임씨 친구들은 112에 여자가 감금되어 있다고 신고했다.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은 김사장은 당황해서 박경사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이 신고했다, 어쩌면 좋냐’고 물었다.

그 때 김사장과 박경사의 통화 내용을 들은 임씨는 김사장이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사기단으로 몰면 된다는 거냐, 그렇게 하면 나는 다치지 않냐’라며 박경사의 조언을 되물었다고 기억했다.

임씨의 남자 친구 문 아무개씨(22)는 “112에 신고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런데 파출소와 경찰서에서 조사받으면서 신고한 것을 후회했다. 경찰이 업주는 대충 조사하면서 오히려 우리들을 사기꾼으로 몰았기 때문이다”라고 흥분했다. 임씨와 임씨의 친구들을 조사한 경찰은 박경사와 같은 소속인 인천 중부경찰서 형사들이었다. 임씨는 감금 과정에서 형사가 도왔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은 처음에 그 부분은 손도 대지 않았다. 만약 7월20일 한 지역 신문이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다면 끝내 윤락업주와 경찰의 부적절한 결탁은 밝혀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중부경찰서 형사과의 한 관계자는 “형사를 사칭하는 사람도 많아서 믿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임씨는 신고할 때 형사 이름까지 댔다.


중부서의 한 관계자는 “임씨 일행이 달라스 스포츠마사지 업주를 등쳐먹으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렇게 주장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 11일 밤 임씨와 같은 방에 있었던 ‘언니’ 김씨는 예전에 달라스 스포츠마사지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사장 김씨는 “임씨가 8일 아무 것도 모르고 달라스 스포츠마사지에 찾아갔다는 진술은 거짓말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임씨는 “언니로부터 ‘달라스’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 아마 브끄러워서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감금 분위기는 폭력적이지는 않았다. 임씨는 “첫날은 손님과의 성관계를 강요하기는 했지만 다시 붙잡혀 갔을 때는 강요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결국 윤락 행위나 폭행은 없었다. 임씨 주소지는 화성인데, 현재 가출한 상태다. 임씨 친구들은 업주로부터 받은 돈 5백만원을 단 이틀 만에 다 써버렸다.

친구 정아무개씨가 4백만원, 임씨의 애인 문 아무개씨가 100만원을 썼다. 빚을 갚는 데 썼다지만, 정작 임씨가 만진 돈은 한푼도 없었다.

설사 임씨 일행이 고의로 5백만원을 챙기려고 윤락업소인 달라스 스포츠마사지를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문제의 심각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지난 4월20일 서울 강남경찰서의 한 경찰이 납치에 가담한 일이 있었다. 이번 사건과 그 사건은 무척 유사하다. 강남경찰서 사건의 경우에도 납치에 가담했던 한 아무개 경사(36)는 납치 대상자가 불법적으로 돈을 번 증권 브로커라는 데 양심의 위안을 삼았다. 인천 중부경찰서 박경사도 언론에는 “퇴폐업소를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인 애들 같았다”라고 말했다. 결국 ‘나쁜 놈’은 당해도 싸다는 식의 관념이 문제였다. 인천 중부경찰서는 7월25일 징계위원회를 열고 박경사를 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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