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생의 '엽기 성추행' 진상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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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생, 성폭행 방법 끔찍…엘리트답게 증거 안 남겨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배경은 어두컴컴한 여관 방 안. 그 안에서 피해 여성은 마치 사디즘(가학적) 포르노에서나 등장할 만한 굴욕적인 자세를 하고 있었다. 도구를 동원해 피해자의 신체를 학대하는 장면도 보였다. 모두 가해자가 협박해서 강제로 찍은 사진들이다. 사진이나 녹음 테이프를 동원해 여성을 스토킹하는 사건은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범인이 사법연수생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용의자 임 아무개씨(31)는 5년 동안 피해 여성을 협박하면서 성폭행하고 2천8백여만원을 뜯는 등 성과 돈을 착취한 혐의로 8월 초 경찰에 체포되었다.

도대체 임씨는 어떤 인물일까? 임씨가 사법 고시의 길로 들어선 것은 2000년. 당시 서울대 공대 ㄱ과 3학년이던 그는 돌연 휴학계를 냈다. 진로를 이공계에서 문과 계열로 전환하기 위해서였는데, 그는 머리가 좋았는지 2002년 사법고시 최종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34기 사법연수생(1년차)이 되어 경기도 일산 자취방에서 연수원에 다녔다. 만약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았다면 그는 판사나 검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법연수원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모범생으로서 성적도 매우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임씨의 음란 행각은 1995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여성과 폰섹스(전화로 음란한 대화를 나누는 것)를 시도했는데 피해자가 그의 장난에 응한 것이 화근이었다. 1998년 12월 임씨는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 인터넷에 공개하겠다”라며 상대 여성을 협박했다. 중산층 집안에서 엄격히 자란 피해자는 폰섹스에 응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숨기려 했다.

피해자는 유학을 떠났다고 속이며 집 전화 번호를 세 번, 핸드폰 전화번호를 네 번이나 바꾸었지만 소용없었다. 집요하고 지능적인 임씨는 동창회 사이트와 포털 사이트의 동창찾기 서비스를 통해 2001년 12월 피해자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2002년 1월 피해자는 결국 협박에 못이겨 임씨를 만났다. 말재주가 뛰어난 임씨는 이 날 피해자를 성추행하고 6백만원을 뜯었다. 이후에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등 교묘한 속임수로 피해자를 꼬드겨서 여섯 차례나 더 만났다. 임씨가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알몸 사진을 찍은 것은 이런 정황에서 가능했다.

지능적인 임씨는 완전 범죄를 꿈꾸었다. 그는 피해자에게 e메일 외에는 어떤 정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나마 e메일도 다른 여성 이 아무개씨 주소를 도용했다.

임씨는 경찰 조사에서 “여자가 결혼한 후에 문자를 보낸 것은 잘못했다. 하지만 결혼 전에 사진을 찍은 것은 좋아서 찍은 것이다”라며 사진 속 여성이 웃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 미소는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피해 여성은 “임씨가 억지로 웃음을 짓게 요구했다. 웃지 않으면 사진을 찍지 않았다”라고 진술했다. 캠코더가 아니라 구식인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촬영한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사진 속 장면은 상식적으로 웃으며 찍을 포즈가 아니었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은 “사법연수원생답게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조사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임씨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을 때 관할 검찰청의 한 검사가 찾아와 ‘임씨의 친구’라면서 임씨의 신원이 언론에 드러나지 않도록 당부하기도 했다.

지난 6월 일본 명문 와세다 대학 학생들이 여성들에게 술을 먹이고 집단으로 강간한 사건이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엘리트들은 부패뿐만이 아니라 엽기 행각도 닮아가는 것 같다. 이번 사건은 인성이 메마른 교육 풍토에서 입시 경쟁과 고시 경쟁을 뚫은 사람들이 도덕적·지적으로 피폐해진 상황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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