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역전 드라마’ 펼쳐질 것인가
  • 나권일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3.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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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 혐의’ 검사 옹호하는 현지 여론 만만치 않아
지난 8월13일 저녁 청주시 복대동 ㅊ고등학교 정문 앞. 청주지검 김도훈 검사(38)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지역 언론인 박 아무개씨를 만나고 있었다. ㅊ고 58회 졸업생인 김검사는 유서 깊은 모교의 교정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억울합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겁니까?”

김검사는 이 날 자신이 맡고 있던 청주 키스나이트클럽 소유주 이원호씨(50·구속) 관련 사건 수사 자료를 ‘양길승 몰카’ 수사팀장인 강 아무개 부장검사(40)에게 빼앗기듯이 넘겨주었다. 김검사가 충북경찰청 수사관들과 함께 4개월 넘게 추적하고 보강해온 손때 묻은 자료였다. 박씨에 따르면, 김검사는 의욕에 넘쳤던 평소 모습과 달리 이 날은 몹시 처량해 보였다고 한다. 김검사는 오랫동안 벼르던 이원호씨 사건을 빼앗겼다며 허탈해 했다. 박씨는 밤새 소줏잔을 나누며 김검사를 위로하려고 했지만 ㅊ고 교정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이원호씨가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긴급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김도훈 검사는 연합뉴스 기자에게 청주지검 부장검사가 자신이 맡고 있던 이원호씨 관련 수사를 방해했다고 털어놓았다. 김검사의 주장은 8월14일 ‘검찰 내부에 이원호씨 비호 세력 있다’는 내용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몰카 수사팀장이던 강부장검사는 김검사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진상을 규명하라는 여론이 들끓자 대검찰청은 몰카 수사팀장을 추유엽 청주지검 차장검사에게 맡겼다. 대검은 또 유성수 감찰부장을 청주에 내려보내 직접 감찰 조사를 지휘하는 고강도 특감을 벌였다. 이로써 양길승 몰카 사건은 어느새 검사들의 ‘진실 게임’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옮아갔다.

그로부터 1주일 뒤인 8월21일, 강부장검사와 김검사의 팽팽하던 대결 구도는 김 검사의 완패로 끝났다. 김검사는 검사 직에서 물러났고,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 현직 검사가 담당 사건과 관련해 뇌물수수 혐의로 사법 처리된 일은 검찰 사상 처음이었다. 몰카 전담 수사팀은, 김검사가 몰카 기획과 제작, 방송사 제보까지 주도했고, 40대 여성 박 아무개씨(44·구속)로부터 다른 사건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대가로 2천만원을 받았다고 공개했다(58쪽 상자 기사 참조).

용기 있는 내부 비리 고발자에서 하루아침에 ‘몰카 검사’로 추락한 김검사는 자기가 몰카 제작에 일부 개입한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뇌물수수 사실은 완강하게 부인했다. 검찰 간부가 이원호씨 수사를 방해했다는 주장도 거두지 않았다. 이 날 오후, 대검찰청은 김검사에게 회복할 수 없는 결정타를 날렸다. 유성수 대검 감찰부장은 “부장검사가 이원호씨 수사를 방해하거나 비호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강부장검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김도훈 검사의 패배는 사태 초기부터 예견되었다는 것이 법조계 주변의 시각이다. 검찰 내부 사정에 밝은 한 법조인은 이렇게 말했다. “김검사는 강부장검사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김검사는 이제 검사 생활 4년을 갓 넘겼지만 강부장검사는 연수원 기수로도 11년 위인 청주지검 수석부장이다. 강부장이 서울대 출신으로서 검찰 내부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면, 김검사는 의욕은 넘치지만 힘자랑만 할 줄 아는 풋내기다. 외압이나 비호 세력을 거론했지만 누구나 납득할 만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정황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조직의 상층부가 누구의 주장에 더 귀를 기울일지는 뻔하지 않느냐.” 청주지검에서 김검사와 함께 근무했던 한 간부급 검사는 김검사가 사법 처리된 것을 ‘약육강식’이라는 한마디로 축약했다.

검찰 내부의 ‘김도훈 죽이기’ 분위기는 청주지검 주변에서 쉽게 감지되었다. 8월21일 오전 11시. 몰카 수사팀 수사관들은 이원호씨와 갈등 관계였던 몰카 제작자 홍 아무개씨(43·구속)를 기자들이 몰려 있는 지검 청사 현관을 통해 불러들였다. 다른 피의자들을 기자들 눈을 피해 뒷문으로 빼돌릴 때와는 딴판이었다. 홍씨는 “몰카는 김검사 아이디어다. 나는 피의자였기 때문에 김검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김검사가 몰카의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검사 변호인단은, 몰카 제작을 주도했다는 홍씨 부부의 주장이나 2천만원을 뇌물로 건넸다는 박여인의 진술은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인데도 검찰이 서둘러 김 전 검사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비판했다. 오성균 변호사는 “김검사가 8월17일 추유엽 차장검사를 믿고 몰카 관련 자료를 다 넘겨주었는데 수사팀이 오히려 이 자료를 근거로 김 검사를 몰카 주범으로 옭아맸다”라고 말했다. 김전 검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지인들에게 “홍씨의 부인 장 아무개씨(29)에게 양길승 실장이 6월28일 청주에 내려온다는 사실을 귀띔했고, 장씨가 ‘현장을 찍어놓을까요’고 말해서 ‘찍으면 사진 하나 달라’라고 말한 것이 전부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김 전 검사 사법 처리를 두고 청주 현지에서는 지역 토호들의 비리를 집요하게 파헤쳐온 특수부 검사가 패배한 것으로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김 전 검사는 지난해부터 청주 지역 유력 인사들에게 경계의 대상이었다. 특수 업무를 맡은 그는 2002년 청주지검에 부임한 뒤 주병덕 전 충북도지사를 비롯해 건설업체 대표 윤 아무개씨, ㅈ일보 기자 안 아무개씨 등을 구속했다. 김 전 검사는 고교 선배들인 이들의 비리를 파헤쳐 사법 처리하면서 청주지검 주변에서 ‘독종’으로 불렸다.

ㅊ고 동문들에 따르면, 김 전 검사는 청주지검과 법원 주변의 ㅊ고 출신 개업 변호사들과도 친분이 두텁지 못했다.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는 ㅊ고 출신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김검사는 자존심이 강했고, 고지식했다. 한번은 김검사의 동창인 58회 동기회장 김 아무개씨가 김검사가 맡고 있던 사건과 관련해 전화했는데 ‘너까지 이런 전화를 하느냐. 너는 친구가 아니다’며 망신을 주었다고 한다. 김검사가 거물들을 잡아넣으려는 공명심도 있었지만 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할 줄 아는 검사였다.” 김 전 검사에게 수사 지휘를 받았던 충북경찰청의 한 경찰관도 “능력 있는 검사 한명이 죽었다. 몰카에 개입했다고 해도 젊은 검사의 일 욕심이 빚어낸 실수로 봐야 한다”라며 안타까워했다.

현재 김 전 검사 변호인단은 ‘대검의 감찰 결과는 검찰의 내부 비리 덮기다’라며 검찰내 비호 의혹을 입증할 수사일지 기록을 폭로하는 방법으로 김 전 검사의 명예 회복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대검 감찰 때 이미 파악한 사안이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검찰은 8월22일 단행한 중간 간부급 인사에서 김검사와 갈등을 빚은 강부장검사를 울산지검으로, 김 전 검사가 소속된 2부 부장이던 이 아무개 부장검사도 광주지검으로 발령냈다. 사태 확산을 막겠다는 의미다.

지역 토호 비리를 적발해 사법 처리함으로써 특수부 검사로서 명성을 날리고자 했던 김도훈 전 검사의 야망은 몰카 사건으로 인해 검찰 조직의 손에 의해 한순간에 좌절되었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것이 끝이 아닐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도훈 검사와 함께 일했던 한 현직 검사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아직 재판이 남아 있다. 김 전 검사의 인생이 다시 또 한번 바뀔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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