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커지면 줄어들지 않는" 복마전 정력제 시장
  • 나권일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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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정력제 시장 ‘복마전’…불법 거래 판치고 약효도 대부분 의심스러워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판매할 수 있는 발기부전 치료제가 시장에서 버젓이 거래되고 있다. 지난 9월18일, 서울 남대문상가 C·D·E동 지하층의 수입품 코너. 수입 식품과 화장품·의약품 매장은 수입 비타민제와 칼슘제로 가득했다. 미국산 정력제도 눈에 띄었다. 기자가 매장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30대 후반인 남자 주인이 주위를 살폈다. “비아그라 찾으세요? 낱개로도 팔아요. 100mg짜리 1개에 1만5천원 주세요. 약국에서는 50mg짜리가 1만5천원이니까 우리가 더 싸요. 미국 다녀온 사람들한테 산 거니까 믿을 만해요. 중국산은 1만원인데. 요즘은 잘 안써요. 미제가 좋아요.”

발기부전 치료제로 새로 시판될 ‘시알리스(cialis)’가 암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또 다른 수입 식품 매장을 찾았다. 그곳의 주인은 “시알리스 찾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빨라야 9월 말에 시판한다는데 여기까지 오려면 한두 달 걸려요. 효과는 비아그라와 비슷하다고 하던데…”라고 전했다. 수입 약품이 거래되는 서울 종로 4가의 ‘광장시장’ 2층 수입품 매장도 사정은 비슷했다. 매장 입구에서 수입 식품·과자를 파는 30대 초반 노점상 배 아무개씨는 “노인분들이나 장애인들이 비아그라를 자주 사간다. 젊은 사람은 전화로 자주 주문하는데, 택배로 보내주고 있다”라며 명함까지 건넸다.

의사 처방 따른 ‘정상 구입’ 43% 불과

제약회사인 바이엘코리아(주)가 최근 국내 발기부전 환자 100여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의사 처방 뒤 약국에서 사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비아그라를 구입한 응답자는 43%에 그쳤다. 환자들은 주로 아는 사람을 통하거나(34%) 수입상가·시장에서 구입(28%)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기부전 치료제 판매량의 절반 이상이 의사의 처방전 없이 불법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의약품 불법 거래를 단속하는 식약청 의약품관리과 곽병태 사무관은 “남대문 시장 수입상가에서 부정기적으로 적발해 경찰에 고발하지만 이제는 시장 상인들에게 얼굴이 알려져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정력제를 빙자한 건강보조식품의 허위 과장 광고도 판을 치고 있다. 텔레비전 홈쇼핑 히트 상품으로 알려진 ‘천보 204’라는 국내산 정력제(판매가 19만8천원)는 이미 식약청이 허위 과장 광고로 올해 4월과 6월 두 차례나 고발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히트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인터넷은 아예 정력제 식품과 약품이 거래되는 사이버 시장으로 변질되었다.

“한 달 먹었는데도 확실히 힘이 많이 좋아진 걸 느꼈습니다. 매번 사먹긴 좀 비싼데 안먹으면 커졌던 게 다시 줄어드는 거 아닙니까?”(김 아무개씨)
‘3∼4개월 꾸준히 드십시오. 한번 커지면 다시 줄어들지 않습니다.’(000 마트) 한 병에 27만6천원이나 하는 정력제 ‘바이탈ㅇㅇ’를 구매했다는 김 아무개씨가 인터넷 게시판에 실제 올린 글이다. 바이탈ㅇㅇ는 남성의 길이와 두께를 늘려 준다고 선전되지만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식품이다. 약품의 출처가 의심스러운 수십 가지 정력제를 판매하는 이 인터넷 사이트는 고객이 주문하면 우편으로 배달해 준다. 매출이 하루 수백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중국과 미국에 주소를 두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들은 국내산도 모자라 북한산과 중국산 정력제를 판매하고 있다. 북한산 경옥고와 금당· 장명·양게론 등 북한에서 제조했다는 건강보조식품이 그것이다. 북한산 경옥고는 인삼·녹용·호랑이뼈와 홍화씨를 넣어 정력제로 만들었다고 자랑한다. 고 김일성 주석의 80회 생일 진상품이었다는 양게론도 금강산에서 나는 산삼에다 영지버섯·지황·백두산 덩굴초 등을 넣었다며 정력제로 팔리고 있다. 황소의 음경과 녹용·인삼을 섞어 만들었다는 건보정력농축액을 비롯해, 중국인의 성기능 향상제인 ‘중국 비아그라’도 제품의 출처나 성분이 불분명한 인터넷 판매용품이다.

이들 가운데 대다수 제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수입 허가를 받았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소비자를 현혹하는 허위 광고이다. 식약청 식품관리과의 관계자는 “식약청은 특정한 건강보조식품에 대해 수입을 허가하지 않는다”라며, 식약청의 허가를 받았다는 말은 모두 거짓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사법기관에 고발되더라도 벌금 100만∼3백만 원 처벌에 불과해 허위 광고를 근절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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