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상 국민투표의 한계
  • 최재천 (변호사, 법무법인 한강 대표) ()
  • 승인 2003.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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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신임 국민투표가 지닌 헌법상 고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안이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에 해당하느냐이고, 다른 하나는 절차나 정족수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문제이다.
대의제, 즉 간접 민주주의가 일반화한 현실에서 국민투표나 국민발안 및 신임투표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헌정 질서에 도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국민투표나 신임투표는 국회나 정당에 대항하는 하나의 무기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독재 권력을 위한 무서운 도구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0월11일 기자회견에서 “국회는 정책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곳이지 대통령을 길들이는 곳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이 어떤 의도로 신임투표를 제안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이해할 만하다.

굳이 따지자면 헌정사에서 ‘재신임’을 물었던 적이 있다. 유신 시절인 1975년 2월12일, 정치적 위기에 몰린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 헌법에 대한 찬반과 대통령에 대한 신임을 연계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투표 결과는 당연히 ‘찬성’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국민투표를 빙자한 일종의 독재였다. 따라서 헌정사에서 선례로서의 가치는 거의 없다.

1987년 대한변호사협회가 밝힌 ‘국민투표의 요건’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전에서 민정당 노태우 후보는 ‘중간 평가’라는 공약을 내걸었다. 5년 대통령 임기의 중간으로 들어가던 1989년 3월, 정치권은 중간 평가 공약의 헌법적 타당성에 대한 논쟁에 휩싸였다. 그 때 대한변호사협회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국민투표 실시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이 아니라 대통령 자신의 입후보자로서의 선거 공약에 따른 그 정치 윤리를 지키고자 지난날의 성과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받기 위하여 국민투표의 방법을 선택한다고 하니, 이는 분명히 헌법에 위배되는 일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른바 중간 평가가 과거의 정책 평가에 그치든, 또는 국민에게 신임을 묻는 일이든 또 장래를 위한 중요 정책을 내걸든 간에 적어도 그 실체가 지난날의 정치적 성과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받는 일이라면 명목 여하를 막론하고 그 국민투표는 위헌임에는 아무 변함도 없는 것이다.” 중간 평가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힌 당시 대한변협의 입장을 요약하자면 ‘현재의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에 대해서만 국민투표가 허용된다는 것이다. 이런 법 해석은 지금도 유효할 것이다. 우리 헌법이 규정한 국민투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헌법 제72조(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의 정책 국민투표이고, 다른 하나는 헌법 제130조 제2항의 헌법개정 국민투표이다. 이번에 거론되고 있는 재신임 국민투표가 지니는 헌법상 고민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헌법개정권자가 제한적으로 열거할 만큼 신중을 기한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에 해당하느냐 여부이다. 헌법 조문상으로 아무런 정책 제시 없이 오로지 자신의 신임 여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투표는 법 해석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둘째는, 국민투표를 발의할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만 규정했을 뿐 절차나 정족수조차도 규정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심지어 이런 성격의 국민투표에 대한 입법 위임 규정도 없다. 이렇게 볼 때, 이번에 노대통령이 제안한, 재신임을 묻기 위한 헌법상 국민투표에 대한 필자의 결론은 부정적이다. 노대통령의 발언은 정치적 결단을 하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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