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신세 놀이터로 전락한 태릉골프장 탈 · 불법 현장
  • 정희상 ()
  • 승인 2000.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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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산하 태릉골프장 탈·불법 현장 취재/노태우씨 전용 호화 욕조·침실 돌아가며 이용
서울시 노원구와 구리시의 경계를 이루는 태릉 녹지 지역에는 34년 역사를 가진 골프장이 하나 있다. 이 일대 25만평의 그린벨트를 차지하고 들어선 골프장 이름은 국방부 산하 태릉골프장이다. 당초 현역 군 장교들과 예비역 장성들의 체력 단련 용도로 만들어진 태릉골프장은,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마치 권력의 전리품처럼 취급되어 왔다.

정부의 고위 공직자 및 국회의원, 그리고 역대 정권에서 내로라 하는 실세들이 주말마다 부킹을 독점하다시피 하며 마음대로 이용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치외법권 지대나 다름없다. 골프장 내부 상당수 시설물은 온갖 탈법과 편법의 산물이지만 관할 관청으로부터 별다른 제재나 감독을 받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이틀에 걸쳐 태릉골프장 구석구석을 누비고, 관할 감독 관청과 세무서, 건교부 등에 법적 자문을 해 태릉골프장 시설의 탈법·불법 실태를 낱낱이 확인했다. 우선 군사시설로 등재된 태릉골프장은 온전한 군사시설이 아니다. 비회원을 상대로 골프장 개방은 물론 영업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이용하는 이들은 주로 국회의원과 정부 각 부처 장관, 청와대 직원 들이다. 전직 대통령인 노태우씨도 즐겨 찾고 있다.
올 들어 거의 매주 드나들고 있는 노태우씨에게 이곳 시설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는 1991년 퇴임을 앞두고 태릉골프장 내에 대통령 전용 시설을 지었다. 자기가 퇴임하면 사용하기 위해 외국에서 수입한 호화 욕조와 값비싼 변기 등을 설치하도록 한 것이다.

취재진이 골프장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직접 들어가 확인한 노태우 전 대통령 전용 시설은 약 15여평의 고급 목욕 시설과 침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품욕이 가능한 고급 욕조에는 금붙이 장식물이 6개 붙어 있었다. 시공자에게 확인한 결과 18K짜리 금장물이라고 했다. 5평 크기 목욕실에 달린 문을 열어보니 국내 최고급 호텔 수준으로 보이는 침실이 자리잡고 있었다. 매주 이곳을 찾는 노씨 부부가 주로 쉬었다가 가는 방이다. 당시 노대통령 전용 시설을 설치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퇴임 1년을 앞두고 청와대에서 지시가 내려와 내가 시공했다. 당시 국내 최고급 수준으로 시설물을 들여왔는데, 욕조는 1천2백만원짜리 수입품이었고, 비데는 6백만원짜리 국산이었다. 이 시설은 지금도 주로 노태우씨만 이용하고 있다.”
노씨는 주말마다 이곳을 찾으면서 고급 승용차인 체어맨 리무진을 타고 수행원들을 대동한다. 대통령 재임중 거액을 챙긴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국가에 추징금을 물어야 하는 노씨이지만 이곳에서는 칙사 대접을 받는다. 아무도 모르게 자기가 재임중 설치한 호화 시설을 이용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코 초호화판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 주겠다며 기자에게 노씨 전용 시설을 개방한 태릉골프장 김창기 사장(예비역 준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 시설은 김영삼 정부 때 호화 시설이라고 폐쇄했던 것을 지난해 내가 국방부장관께 건의해서 다시 오픈했다. 경호원들이 같이 오기 때문에 일반 욕실을 이용하면 다른 내방객이 불편해 할까 봐 노씨와 총리급 이상을 지낸 분들에게 이용하게 한다. 시설비도 기자가 알고 있는 1천8백만원이 아니라 9백만원이다.” 그러나 김사장은 현정부 들어 취임했다는 점에서 1991년에 시공한 관계자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김사장은 이곳 시설이 노씨 전용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이한동 총리가 그동안 세번 사용했고, 현정부 실세인 권노갑 민주당 최고위원에게도 개방한 적이 있다고 한다. 권노갑 최고위원에게 개방한 이유에 대해 골프장측은 “그분이 결벽증이 많아 대중탕에 안 들어가는 성격이 있어서 비 오는 여름날 딱 한번 이용하도록 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종필 전 총리는 재임 때 이 시설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김총리에게는 호화 목욕실 근처 화장실에 간이 샤워기를 만들어두고 사용하도록 했다. 태릉골프장 김사장도 노씨가 자주 오기 때문에 이 시설은 대부분 노씨가 사용한다고 시인했다.

노씨에게 특혜성 전용 나들이 시설을 제공하는 외에도 태릉골프장은 구석구석이 탈법·불법 투성이다. 가장 눈에 띄는 불법 행위는 골프장측이 그린벨트를 무단으로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태릉골프장 후문 근처에 8백여평의 주차장과 3백여평의 직원 주차장을 설치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이런 불법을 감시 감독해야 할 구리시청은 그동안 눈 감아 왔다. 이에 대해 구리시청 녹지과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 우리가 항공 촬영한 사진을 근거로 태릉골프장의 그린벨트 무단 훼손을 적발했다. 최근 골프장측에 원상회복하라고 1차 계고장을 보냈는데, 골프장이 육군사관학교 부지를 포함해 군사시설이라고 우기고 있어서 불법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할 자료를 내놓으라고 맞서고 있다.”

군사시설이라며 각종 특혜를 누리는 태릉골프장은 민간인을 상대로 한 영업 활동도 마음대로 벌이고 있다. 클럽하우스에 룸을 만들어 민간인 내방객에게 술과 음식을 팔고 있는 것이다. 클럽하우스 2층에는 10평 크기 밀실이 10여개 있다. 그 안에는 고급 의자와 탁자가 놓이고 병풍이 둘러쳐져 있고, 각종 도자기와 수석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건축물 대장에는 이 룸이 사무실로 등재되어 있다. 그런데도 사업자 등록증도 없이 위생검사도 받지 않고 민간인을 상대로 편법 영업을 버젓이 행하고 있다.

직원 식당 역시 관할 노원구청에는 군사시설로 등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은 민간인에게 임대해 무허가 영업을 하고 있다. 직원과 캐디, 골프장을 찾는 민간인들이 그 대상이다. 세무서에 확인한 결과 민간인이 운영하는 이 식당은 무허가이고 세금도 내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식당은 관할 구청으로부터 위생 검사 한번 받지 않았다. 직원들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집단 식중독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불법 영업에 대해 골프장측은 “국방부가 운영하는 시설이어서 수입이 바로 국가에 귀속되므로 세부 절차를 밟지도 않았고, 세금도 낼 필요가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관할 도봉세무서의 해석은 달랐다. 군인공제회가 국방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식당과 유흥시설은 국가가 직접 운용하는 자산이 아니므로 과세 대상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민간인에게 불하해 무허가로 운영하는 식당이라면 명백히 불법에 해당한다는 답변이었다.
불법과 편법은 그린벨트 1천5백여평을 파헤친 후 ‘잔디 묘포장’을 조성한 데서 절정을 이룬다. 태릉골프장은 1998년 관할 관청에 육사 교정에 심을 잔디밭을 조성하겠다고 신청해 땅 개간을 허락받았다. 개간에는 주로 인근 ○○사단과 육군사관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군 중장비가 동원되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잔디밭 대신 작물밭이 들어서 있다. 깻단을 쌓아둔 밭과 인근 도로 등 2천여평 부지에는 훼손된 뒤 빗물에 쓸려내려가 흉물스럽게 갈라진 땅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육군사관학교에 문의한 결과 이곳에서 잔디를 가져다 육사 교정에 심은 일은 없었다고 한다. 결국 골프장은 군사시설로 개간 허가를 얻은 뒤 작물을 재배해 골프장을 찾는 민간인에게 팔아온 것이다. 직원들에 따르면, 주로 호박을 심어 호박죽을 가공해 팔았다고 한다.

그러면 태릉골프장이 수도 서울의 한 귀퉁이에서 이처럼 버젓이 ‘간 큰’ 영업을 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이곳이 ‘성역’으로 자리 잡게 된 역사와, 요즘도 이곳을 찾는 주요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태릉골프장은 1966년 11월5일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군인과 군출신 예비역을 위한 골프장으로 만들어졌다. 박대통령은 생전에 육사를 다니던 아들 지만씨를 이곳에서 만나고, 각종 시설물도 최고급 외제로 설치해 연회를 베푸는 등 대통령 전용 시설로 활용했다. 이때부터 태릉골프장은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로 초법적인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어서 1984년 전두환 대통령은 육사 교장이 맡고 있던 관리권을 국방부로 이관하고 국유재산으로 등재한 뒤 군인공제회에 위탁 관리하도록 했다. 군인복지기금법에 의해 군인공제회가 지금까지 위탁 운영하고 있는 태릉골프장은 법적으로는 골프장이 아니다. 1994년 건설부·행정자치부·국방부 실무진이 모여 골프장 허가권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였으나 끝내 군사시설로 등재했던 것이다.

이런 법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태릉골프장은 엄연히 사단법인 한국골프장사업협회에 회원사로 등록되어 있다. 국가기관을 민간단체에 등록해 운영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군사시설로 등재한 건물에서 사업자 등록증도 없이 민간인을 상대로 음식과 유흥을 제공하고 수익을 올리는 편법을 저지르고 있다.

역대 정권이 골프장을 전리품처럼 사용했다는 점도 이곳에서 각종 불법 행위가 버젓이 이루어지게 만든 요소였다. 군인 출신 대통령이었던 전두환·노태우 씨는 물론이고 김영삼 정부 때도 이른바 상도동계 핵심 실세들이 이곳을 즐겨 이용했다.

현정부 들어서도 이런 현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부 동교동계 권력 실세는 물론 국회의원과 정부기관 수장들이 저마다 주말 부킹을 선점함으로써 정작 회원들이 주말에 이곳에서 골프를 치기는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기자가 규정과 달리 권력 실세와 고위 공직자 들이 독차지하는 주말 부킹 실태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김창기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곳의 회원 개념을 일반 골프장과는 다르게 본다. 회원 외에도 국가 중요 공직자들에게 골프 부킹을 해주는 것을 내 임무라고 믿고 있다.” 이런 실정이기 때문에 주말 부킹 예약 시간이면 사장 비서실 전화는 불통이다. 아예 수화기를 내려놓기 때문이다. 한번은 한국통신이 매주 장시간 비서실 수화기를 내려놓는다고 항의한 일조차 있었다.

골프장 시설의 불법·탈법 현장들을 취재 중이던 11월8일 태릉골프장 관리사무소에는 정부 고위직으로부터 부킹 청탁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취재진과 태릉골프장 시설물들의 불법 실태를 놓고 설전을 벌이던 남철우 총무부장 앞으로 걸려온 전화였다.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실에서 11월19일 부킹을 잡아달라는 청탁이었다. 청와대 공직자들과 함께 갈 테니 당장 부킹을 확답해 달라고 다그치는 모양이었다. 진땀을 빼던 남철우 부장은 사장 비서실로 직접 전화하면 어렵지 않게 부킹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기도 예약을 잡아주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편법과 불공정을 감독하고 바로잡아야 할 정부기관 수장들마저 이런 식이라면, 태릉골프장의 불법·탈법과 특혜 시비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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