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 폐광촌 카지노를 가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0.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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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내국인 출입 ‘강원 카지노’ 현지 르포/주민들, 조폭·윤락업자 등 경계
강원도 정선군 사북초등학교에 다니는 김준형군(8)은 요즘 신이 났다. 새로운 친구가 전학해 왔기 때문이다. 전학 간 친구들의 빈 자리가 하나 둘 늘 때마다 마음이 쓸쓸했는데 이제 그 빈 자리가 다시 채워지고 있다. 2학년 황서연양(10)도 새 친구 2명을 맞았다. 사북초등학교는 이처럼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어떠한 희망도 없었던 탄광촌에서 작지만 큰 변화이다.

1989년부터 시행된 석탄산업합리화 조처로 인해 폐광이 많아지면서 사북·고한 지역에는 인구 공동화 현상이 심하게 일어났다. 몇 푼 안되는 이주대책비를 챙긴 사람들은 밀물처럼 빠져나갔고 읍내는 황량해졌다. 잿빛 슬레이트 지붕에는 짙은 우울이 내려앉았다. 떠나지 못한 사람은 병든 환자이거나 갈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사북연세병원·정선의료원·태백중앙병원·동해병원에는 작게는 100명, 많게는 3백명 정도 중증 진폐증 환자들이 입원하고 있다.

폐광으로 사람만 멍든 것이 아니다. 이곳의 자연도 골병이 들어 신음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강원도 여느 지역과 다르게 이곳에서는 맑은 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탄좌에서 흘러 내려오는 시커먼 물, 폐광 침출수에 오염된 시뻘건 물, 백화현상으로 뿌옇게 된 물은 자기 치유 능력을 잃은 지 오래이다.

그런 사북·고한 폐광 지역에 요즘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고 있다. 오염된 계곡 물을 옆에 끼고 석탄 야적장을 따라 고갯길을 한참 올라가면 도깨비 모양을 한 건물을 볼 수 있다. ‘돈 나와라 뚝딱’ 돈벼락을 맞으라며 도깨비 형상을 한 그 건물은 바로 강원랜드 스몰카지노. 이 낯선 건물이 바로 희망의 근원지이다.
해발 1100m 백운산 중턱에 건설된 스몰카지노는 이름과 달리 그 규모가 상당하다. 영업장 면적이 1천5백64평으로 워커힐호텔 카지노보다 넓으며, 슬롯머신 수도 5백대로 전국 최대 규모이다. 스몰카지노라는 이름은 2002년 본 카지노가 개장하기 전에 한시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일 뿐이다.

사실 폐광촌과 카지노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음침한 폐광촌과 화려한 카지노 사이에는 조화를 이루어낼 어떠한 연관성도 없다. 그러나 카지노가 아니면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 수가 없다는 폐광촌의 절박한 사정은 이 어울리지 않는 조화를 가능하게 했다. 정부는 1995년 ‘폐광 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이곳에 전국에서 유일한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허가해 주었다.

삼척탄좌에서 탄차를 운전하는 장헌기씨(53)의 아들 장 욱씨(30)는 스몰카지노에서 딜러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컴퓨터 설계 일을 하던 그는 IMF로 일자리를 잃었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던 그는 카지노에서 안정을 되찾았다. 장씨의 초등학교 동창 김성욱씨(30)도 카지노에서 딜러를 하고 있다.

아직 본 카지노가 들어서지 않았지만 스몰카지노만으로도 고용 효과가 상당하다. 카지노와 호텔에 직접 고용된 지역 주민이 1백30여명, 부대 사업을 떠맡은 강원남부주민주식회사에서 일하는 주민이 1백40여명, 이와 관련된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주민이 30여명. 합치면 얼추 3백명이 넘는다. 3백이란 사북·고한 같은 작은 지역에서는 적은 숫자가 아니다. 한 집 건너 한 집씩은 이래저래 카지노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카지노의 혜택이 폐광촌 주민 모두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여관·음식점·유흥업소 등 카지노와 연관이 있는 업소들만 카지노 특수를 누리고 있다. 마치 색깔이 일치해야 상금을 받는 룰렛 게임처럼 카지노 사업과 관련이 있는 부분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다.

화려한 간판을 단 여관·음식점·유흥업소와 달리 잿빛 슬레이트 지붕 밑의 보통 주민에게 카지노는 철저하게 남의 잔치일 뿐이다. 지역 주민 중에는 ‘우리한테 돌아올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냉소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 없지 않다. 카지노 경기에도 아랫목과 윗목이 따로 있는 것이다.
카지노 게임 중 바카라는 단순하지만 승부가 빨리 나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 승부가 빨리 갈리는 바카라 게임처럼 정부가 대체 산업으로 카지노 사업을 허가한 것에 대한 결과도 금방 나타날 것이다.
걱정되는 점은 카지노의 혜택만큼 지역 주민의 피해도 만만치 않으리라는 점이다. 경마장이 들어섰던 제주도나, 인디언들을 위해 카지노를 허가했던 미국 네바다 주에서도 현지 주민이 큰 피해를 보았다. 이전부터 도박이 성행했던 탄광촌의 특성상 도박 피해자가 많이 나올 수 있다.

카지노가 생기면 당연히 윤락·사채 업자와 조직폭력배도 몰려올 것이다. 벌써 시내에는 여기저기 술집 간판이 늘고 있고, 머리를 짧게 깎은 ‘어깨’들도 눈에 띄고 있다. 이 반갑지 않은 손님을 처리하는 것도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지역살리기공동추진위원회 윤영근 사무국장은 “지역에서 피해자가 나오더라도 우리가 안고 가야 할 원죄로 생각하고 감당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감당해야 할 폐해가 어느 정도일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으로 카지노를 선택한 사북·고한 주민은 요즘 새로운 시험을 하고 있다. 이전과는 달리 자기 목소리를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21을 넘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블랙잭 게임처럼 카지노 사업에는 적절한 제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밀어붙이기식 투쟁에 익숙한 탄광촌 주민에게 사실 이런 일은 익숙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들은 욕심을 자제하고 여러 가지를 양보했다. 카지노 수익금의 75%를 지역발전 기금으로 받기로 했던 것을 투자자들을 위해 10%로 대폭 낮추었다. 사업 주체인 강원랜드에도 불만이 많지만 말을 아끼고 있다(상자 기사 참조).

이밖에도 카지노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주민들이 기울이는 노력은 눈물겹다. 주민협의회 송재범 위원장은 카지노와 관련한 이권을 얻기 위해 이 지역을 찾은 조직폭력배들과 담판하기도 했다. 1995년 폐광지역 지원 특별법 초안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관여했던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원기준 목사는 바람직한 카지노의 모델을 찾기 위해 도박꾼보다 더 많이 외국의 카지노를 찾아다니며 연구했다.

그러나 카지노는 아무리 건전해도 카지노일 뿐이다. 카지노는 반드시 누군가의 눈물 위에서 피어날 수밖에 없다. 높은 금액일수록 어두운 색을 띠고 있는 카지노 칩은 카지노가 가진 잔인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주민들도 이것을 알고 있다. 주민들의 바람은 카지노를 통해 도박 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카지노를 통해 사람들이 다시 찾는 곳으로 만들어 장기적으로 탄광촌을 종합관광 휴양지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강원 카지노가 과연 성공을 거둘지, 성공한다면 그 그늘에서 누가 눈물을 흘릴지, 아직은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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