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품 수수·난투극…뿌리째 썩는 풀뿌리 민주주의
  • 부산/박병출 (pbc@sisapress.com)
  • 승인 2000.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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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지역 지방의회, 금품 수수·폭력 난무로 ‘잡음’… 공무원들 직접 감시 나서
부산의 지방의회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평소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잡음이 끊이지 않은 데다, 일부 지역 의장단 선거에서 뭉칫돈이 오가고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 7월 부산 사하구의회는 의장 선거 직후 전체 의원 17명 중 반대파 7명이 불참한 상태에서 신임 의장파가 상임위원장을 나누어먹기 식으로 싹쓸이하자, 반대파가 본회의장에 오물을 퍼붓는 사건이 일어났다. 며칠 후인 7월20일 김형오 한나라당 부산시지부장 초청 시의회 상임위원장·의장단 만찬에서는, 부의장과 운영위원장이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삿대질을 주고받았다. 부산진구의회에서는 상임위원장 선임 과정에서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중구의회에서도 일부 의원이 제출한 의장 불신임안 상정을 둘러싸고 몸싸움을 벌여 한 의원이 다리를 다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오픈 게임’. 시간이 갈수록 ‘격투기’를 방불케 하는 폭력 사태가 꼬리를 물고 있다.

경남 산청군의회는 집행부의 사업비 과다 지출에 대한 출장조사 문제로 대립해 민 아무개 의원(55)이 이 아무개 의원(60)에게 대형 옷걸이를 휘둘렀다. 날벼락은 싸움을 말리던 군청 공무원 권 아무개 과장(57)에게 떨어져, 눈밑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민의원은 지난 6월에도 조례안 심의중 휴대 전화를 받다가 송 아무개 전문위원(56)이 “원만한 진행을 위해 잠시 꺼 달라”고 말하자 재떨이를 집어던진 전력이 있다.

경우는 다르지만, 산청군 사태에 앞서 지난 6월21일, 울산지법은 울산 중구의회 전 아무개 의원(40)과 차 아무개 의원(52)을 법정 구속했다. 전의원은 회의 도중 공무원에게 재떨이를 던져 상처를 입혔고, 차의원은 노래방에 동행한 공무원을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었다. 재판부는 “죄질이 나쁘고, 의원 직분을 망각한 폭력을 휘둘러 물의를 일으킨 이들에게 다시 봉사 활동(의원 활동) 기회를 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공무원을 ‘샌드백’ 정도로 여기는 의원들은, 동료 의원이라고 해서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지난 8월 진해시의회 야유회는 피로 얼룩졌다. 관광 버스 안에서 활극을 벌여 변 아무개 의원(42)이 이 아무개 의원(46)의 코뼈를 부러뜨렸다. 그러자 정 아무개 의원(42)은 변의원과 가까운 박 아무개 의원(54)의 멱살을 잡고 주먹다짐을 벌였다. 옆에 있으면서도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의장 선거 때 쌓였던 서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의원 부인까지 동반한 이 날 야유회 경비는 시 예산에서 지출되었다. 주민 세금으로 마련한 야외 술자리를 ‘혈투’로 마무리한 것이다. 끊임없이 비판을 받으면서도, 의원들은 국내외 나들이를 즐기며 예산을 물 쓰듯 한다. 지난 9월에만 해도 경남 도내에서는 11개 시·군 의회 의원이 금강산 유람을 다녀왔다. 이들이 떠난 9월17일은 농민이 태풍 ‘사오마이’의 피해를 복구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던 때였다.

선거와 관련한 ‘돈 추태’는 점입가경이다. 지난 8월 말 검찰은 경남 지역의 전·현직 의장 2명을 3일 간격으로 구속했다. 8월27일 창원지검 진주지청에 구속된 박 아무개 진주시의회 의장(50)과 8월30일 창원지검에 구속된 남 아무개 전 경남도의회 의장(67)은 모두 지난 7월 의장 선거 때 돈을 뿌린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박씨는 소문이 확산되자 천만원짜리 자기앞 수표 석 장과 1억원짜리 어음 석 장 등 거금을 보내 낙선자 쪽의 입을 막으려다 심부름을 맡은 사람이 양심선언을 하는 바람에 쇠고랑을 찼다.

남씨에 대한 수사는 선거 직후 이미 시작되었는데, 그는 종적을 감춘 채 중앙 정가에 줄을 대며 구명운동을 폈다. 경찰에도 ‘자진 출두할 테니 먼저 불구속 수사를 약속해 달라’고 흥정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20일 이상 시간을 끄는 바람에, 이미 ‘입’을 맞추었을 금품 수수 의원들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질지는 의문이다. ‘준 사람만 있고 받은 사람은 없는’ 사건으로 귀결되어 그가 면죄부를 받을 것을 우려한 시민단체들이 지난 8월28일 경남도의회 앞에서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의회의 각종 비리 의혹이 꼬리를 물어 시민단체가 개입하는 경우가 잦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후유증도 생겼다. 지난 9월에는 한 시민단체 간부가 자신이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사퇴를 요구해온 의회 의원으로부터 술 접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경남도의회 앞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던 이 시민단체는, 9월16일 마산시의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한 아무개 의원(53)의 의회 청사 신축공사 하도급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는 글을 올렸다가 이틀 만에 삭제했다. 그 몇 시간 후 시의회 부의장과 한의원, 글을 올린 당사자인 시민단체 간부가 단란주점에서 술판을 벌인 것이다.

이처럼 의회에 대한 불신에, 이제는 시민단체에 대한 불신까지 싹트자 보다 못한 공무원들이 ‘의회 바로 세우기’ 운동을 선언하고 나섰다. ‘공직사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부산공무원 연구모임’(부공연·대표 한석우 부산시청 공무원직장협의회장)과 포항시청 공무원 직장협의회(회장 권태주·6급)는 최근 “지방 의회 의원들의 직위를 이용한 각종 부조리 행위를 수집해 고발하고 지속적으로 감시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지방의회측은 ‘공무원 직장협의회(공직협)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과 정면 배치되고 지방 자치의 근본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좌시하지 않겠다는 반응이다. 시민들은 의원들의 청탁이나 압력 대상인 공무원들이 역으로 가장 적합한 감시자가 될 수 있다고 기대를 걸면서도, 실제 효과를 거둘지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6급 이하 하위직으로 구성된 공직협이 ‘막강한’ 의회를 상대하기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9월 포항시 홈페이지에 ‘의회 바로 세우기’ 운동의 취지를 밝히고 협조를 당부했던 권태주 포항시청 공직협 회장은 “지금 그 문제라면 더 할 말이 없다”라며 언급을 피하고 있다.

감시운동을 시작한 지 2개월이 지난 부산 역시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한석우 부공연 대표는 “인터넷 홈페이지(http://capo.pusan. kr)에 신고 난을 만들었으나 구체적인 사례가 접수되지 않아 현재 1개 구(區)를 시범 선정해 비공개로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조만간 회의를 통해 운동의 좌표를 재점검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대표는 의회 감시를 선언한 이후 업무와 관련한 의원들의 부당한 요구는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 일선 공무원들의 의견이라며, 선언적 의미의 효과가 크다고 평가했다.

시민단체들은 “시민 모두가 행정과 의정의 감시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의회의 견제와 감시를 받아야 할 공무원까지 의정 감시를 선언할 정도가 된 것은 의원의 책임이다. 의원 스스로가 ‘안으로부터의 운동’으로 의회 바로 세우기에 나서지 않으면 지방자치제가 쓰러지는 사태가 올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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