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교회 목사가 방화범 된 까닭
  • 권은중 기자 (junsisapress.com.kr)
  • 승인 2000.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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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연쇄 방화 사건 입체 추적/‘한 집 건너 교회’제살깎기 경쟁이 구조적 요인
‘잡은 고기 없는 그물질, 손님 없는 잔치, 응답 없는 말씀의 잔치, 거두지 못한 익은 곡식.’

성경에 나온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들이다. 목회자들은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모든 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교회를 만들고,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명감으로 ‘손님 많은 잔치’를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얼마 전 부천에서는 교회 성장에 골몰하던 개척 교회 목사가 좌절한 끝에 교회와 주택에 마구 불을 질러 교회 성장의 참된 의미를 무색케 했다. 특히 이 목사는 모두들 꺼리는 농어촌 개척 교회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서 상대적으로 ‘쉽다’는 도시에서 개척 교회를 시작했다가 실패해 관심을 끈다.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 ㅇ교회 최 아무개 목사(38)는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석 달 동안 교회와 주택에 100여 차례 방화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경찰에서 최목사는 “교회 신도 수가 너무 적어 홧김에 방화를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그의 교회 신도는 성인 3~4명, 어린이 30명이 전부였다. 그나마 성인 신도는 그의 처제 등 모두 친척이었다.

그는 1993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ㅎ교단으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고 포항 구룡포에서 ㅇ교회를 열었다. 고향이 강원도 주문진이고, 수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광어 양식장에서 일했던 경험이 그를 바다가 보이는 곳에 개척 교회를 열게 했다. 개척 교회에서 최목사와 함께 일했던 한 장로는 “최목사는 성실한 분이었고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특히 소년·소녀 가장을 돕는 일에 아주 적극적이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구룡포에서 목회하면서 영적 체험을 많이 했고, 이 체험을 토대로 수도권인 부천에서 개척 교회를 연 것으로 보인다.

한 동네에 너무 많은 교회

신도들의 요구로 한 마을에 있던 두 교회가 통합된 뒤 서울로 올라온 최목사는 하계동 ㅂ교회에서 부목사를 하다가 지난해 7월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에 ㅇ교회를 열었다. ㅂ교회 박 아무개 목사는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은 아닌데, 개척에 대한 의지가 강해 성급하게 교회를 열었던 것이 화근이 아닌가 생각한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최목사가 자신의 두 번째 개척 교회를 연 부천시 고강동에는 <기네스 북>에 올라야 할 정도로 교회가 많다. 고강본동과 고강1동을 걸어 보면 골목마다 교회가 하나씩 있어 그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랑교회·소망교회·영생교회·주님의 교회 등 교회 이름 전시장을 방불케 하리만큼 수많은 교회가 상가 건물마다 첨탑을 하나씩 머리에 이고 있다.

고강동 동사무소 통계담당자에 따르면, 인구 3만명인 고강본동에는 교회가 약 50개 있고, 고강시장을 끼고 있는 인구 1만 5천명의 고강 1동도 교회 수가 비슷하다고 한다. 주민들은 1년에 20여개의 교회가 문을 닫고 새로 연다고 말했다.

고강동 일대는 원래 논밭이었으나 1990년대 들어 도시로 개발되었다. 고강동은 서울 강서구 신정동과 맞붙어 있어 서울로 출퇴근하기 쉬운데도 김포공항 바로 옆이어서 소음이 심해 땅값이 싸다. 따라서 신도시인 고강동은 다세대 주택이 많아 신도를 확보하기가 수월하고 신축 건물이 많아 교회를 개척하기에 매우 유리하다.고강동에서 7년째 목회 활동을 해온 ㄱ교회 손 아무개 목사는 “서울에선 최소 5천만원이 들지만 이 동네에서는 3천만원만 있으면 교회를 열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목사는 그보다 훨씬 적은 돈을 가지고 목회를 시작했다. 최목사는 보증금 3백만원, 월세 34만원에 지하 20평 공간을 세내 교회를 열었다. 건물주인 이송자씨는 “최목사가 보증금 5백만원을 낼 형편이 못된다고 해서 3백만원으로 깎아주었다”라고 말했다. 최목사는 이 20평에 방 두 칸을 내 살림을 하면서 목회 활동을 했다. 그러나 신도가 적어 교단이 매달 주는 선교 지원금 몇십만 원으로 근근히 버텼다고 한다.

최목사는 교회 설립후 매일 새벽 기도를 드리고 구룡포에서 한 것처럼 풍선을 불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며 선교했다. 이웃들은 아이들이 풍선을 버리면 주워다 씻어서 다시 사용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교회가 지하인 데다 위층에 가방 공장이 있어 입구부터 어수선했다. 최목사는 원체 부지런하고 깔끔한 성격이어서 주변을 늘 쓸고 정리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아침마다 교회 앞에 쓰레기를 몰래 버리자 최목사는 매우 화를 냈다고 한다. 최목사는 그 쓰레기를 모아서 버렸지만 이런 일이 계속되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거기다 방화를 시작하기 얼마 전에 신앙 상담을 온 여자가 ‘교회가 너무 초라해서 못 다니겠다’며 동네의 큰 교회로 가버리자 충격을 받았다. 구룡포의 개척 교회에서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수모였다.

최목사가 처음 방화한 대상도 동네에 쌓여 있던 쓰레기더미였다. 그러나 그는 근처 쓰레기를 ‘응징’하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오정구 일대를 차를 몰고 돌면서 폐지·폐타이어 등 쓰레기더미만 보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불을 질렀다. 나중에는 쓰레기를 찾아서 교회와 주택 안으로 들어가서 방화할 정도로 쓰레기를 태우는 행위 자체에 빠져들었다. 검찰 관계자는 “최목사가 단지 교회 신도가 적은 데 불만을 품고 교회에 방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오히려 쓰레기에 대한 강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

최목사는 방화후 기도를 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쳤지만 아침이면 쓰레기를 찾아 거리를 헤매며 방화하는 일을 석 달 동안 반복했다. 그가 방화하지 않은 날은 주일인 일요일뿐이었다. 특이한 것은 최목사는 보통 방화범과 달리 밤이 아니라 대낮에만 방화를 했다는 점이다.

쓰레기만 찾아다니며 방화

부천시 오정구청과 중부경찰서는 매일 화재가 일어나자 방화범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으나 허사였다. 사실 최목사는 절반은 자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골목을 지키고 있는 형사가 라이터를 들고 길을 가는 최목사를 수상히 여겨 불심 검문을 했는데, 그동안 고민이 많았는지 최목사는 바로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고 한다. 최목사가 목사임을 밝히고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다면 쉽사리 잡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회 질서의 근본을 위협하는 방화범인 데다 100여 회나 불을 질러, 최목사는 이 사건으로 중형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최목사도 이를 예상하고 있고 “차라리 오랫동안 감옥에 있는 편이 낫겠다”라고 말했다 한다. 신도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목사로서 엄청난 죄를 범했다며 몹시 자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 교회 목사들은 최목사의 이런 행동을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잘라 말한다. 생활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목회자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웃 ㅅ교회 목사는 “개척 교회 운영은 일반인의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 그러나 신도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을 영적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목회자의 도리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교회 개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 일을 단순히 한 성직자의 성격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교단의 구조적인 문제도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 교회는 교단이 너무 많다. 개신교 가운데 가장 많은 교회와 신도를 가지고 있는 장로교만 해도 교단이 3백여 개가 있고, 각 교단 신학교에서 목사를 배출하고 있다(한 목사는 150개로 추정했으나, 확실치 않다). 또 장로교 감리교 등 대형 교파를 제외한 군소 교파는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자기 신학교에서 목사를 키워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교파는 통신 교육만으로 목사 자격증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부가 학위를 인정하는 신학대학은 40여 곳밖에 되지 않는다. 교육부 관계자는 “신학교 설립과 운영은 교단 문제여서, 정부가 개입할 성질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교육부는 단지 무인가 신학교에 대한 제보가 있을 때 위법 사항이 적발되면 검찰에 고발하는 정도라고 밝혔다.자정 능력 상실한 교회 조직

일부 교단은 이처럼 난립하는 신학교와 차별을 두기 위해 목회자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장로교·침례교·감리교·성결교회 등 대표적인 교파는 신도가 원하는 목회자를 배출하기 위해 목사 임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예전과 달리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학대학원을 나와야 하며, 2년간 전도사 생활을 해야 한다. 그 이후 각 교파의 목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일정 요건이 되면 안수를 받아 목사가 될 수 있다. 군대까지 포함하면 목사가 되는 데 10년이 넘게 걸린다.

신학대학원 졸업생은 전도사·강도사·부목사 생활을 하다가 신도들의 초빙을 받아 목사로 가거나 자신감이 생기면 개척 교회를 연다. 각 교파는 지역 교회 연합회인 노회를 통해 1동 1교회 원칙을 세우거나 직선 거리로 몇백 m 이내 교회 설립을 금지한다는 규칙을 두어 교회 난립을 통제한다. 하지만 교단이 너무 많다 보니 부천 고강동처럼 한 골목에 하나씩 교회가 난립하는 것이다. 교회 난립은 최목사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회의 질적 수준을 위협하고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어 신도 수가 줄고 있는 개신교의 큰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위 상자 기사 참조).

지역마다 다르지만 전문가들은 지역 인구 수의 40~50%가 선교 한계선이라고 한다. 이 한계치를 넘은 곳에서 개척 교회를 열면 교회끼리 제살 깎기가 불가피해진다. 그러나 교계는 이를 통제하거나 충고할 힘이 없다.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한 교회 조직은 단지 이를 지켜볼 따름이다.

이런 안팎의 문제에 직면한 개신교는 교파와 교단을 초월한 인적 물적 교류와 신학교 정비 등 내부 개혁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한국 최대 교파인 장로교는 이런 문제 의식을 갖고 올 9월 ‘모든 장로교는 한 형제자매’라는 모토로 장로교대회를 갖고 상호 교류를 시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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