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양민 학살 진실 밝혀질까
  • 경북 문경·丁喜相 기자 ()
  • 승인 2000.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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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양민 학살 유족들, 헌법 소원 내기로…정부, 50년 동안 외면
한국전쟁 때 미군이 저지른 양민 학살의 진상이 미국 언론에 의해 잇달아 드러나는 가운데, 한국군이 저지른 양민 학살 진상 규명 역시 외면할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다. 이미 한·미 양국 정부가 공식으로 진상 규명 활동에 착수한 충북 영동군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에 이어, 최근에는 충북 단양 지역에서도 피난민을 집단 학살했다는 미국 AP 통신의 확인 보도가 나왔다.

이런 새로운 사실이 한국 언론을 장식하던 지난해 12월24일 경북 문경군에 있는 한 산간 마을에서는 서설이 내리는 가운데 `‘문경 양민 학살 50주기 위령제’가 열렸다. 50년 전 끔찍한 학살이 자행된 장소에서 열린 이 날 위령제는 올해로 여덟 번째. 그러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 <시사저널>이 잇달아 이 사건 관련 미군 기밀 문서를 입수해 보도함으로써 `‘이만하면 진상은 드러났다’고 판단한 탓인지 예년과 달리 위령제에 이 지역 출신 정치인은 물론 경상북도 주요 기관장까지 대거 참석해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에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경상북도의회는 ‘양민 학살 진상 규명 특별위원회’(위원장 주기돈 의원)를 결성해 5월까지 조사 작업을 마치고 정부에 명예 회복과 피해 보상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1949년 12월, 86명 학살당해

문경 양민 학살 사건은 1949년 12월24일 이 일대를 정찰하던 국군 3사단 25연대 3대대 7중대 2소대와 3소대 병력에 의해 문경군 산북면 석봉리 석달마을 주민이 전멸된 것을 일컫는다. 군대의 무차별 학살로 희생된 사람은 젖먹이에서부터 팔순 노인에 이르기까지 이 마을 주민 86명이었다. 사건 직후 정부는 군대의 만행을 알아챘지만 그 결과를 은폐했다. 대신 이승만 정부는 이 사건을 공비의 소행으로 몰아버렸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사망자의 호적에는 공비에게 총살된 것으로 적혀 있다.

사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부상자와 사망자 유족은 그동안 역대 정부의 감시 탓에 입도 벙긋 못한 채 한 맺힌 세월을 살아왔다. 그러다 비로소 사건 진상을 담은 미군 기밀 문서와 한국 경찰의 조사 기록이 50년 만에 빛을 보자, 국민의 정부가 해결해 주리라는 강한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유족들은 50주기 위령제를 지내기 전에 미군 기밀 문서와 한국 경찰의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를 첨부해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 앞으로 조속히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는 탄원서를 다시 제출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문경 양민 학살에 관련된 명백한 증거가 드러났는데도 정부가 해결하는 데 소극적 자세를 보이자 최근에는 민간 인권단체들도 이 문제를 인권 운동 의제로 삼기 시작했다. 인권 변호사들이 주축이 된 한국인권재단은 오는 2월25일부터 4일간 개최하는 `‘인권 학술 회의’에 주요 의제로 한국군에 의한 양민 학살을 다룬다고 밝혔다.

문경 양민 학살 사건 유족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정부가 이 사건의 진실을 은폐한 채 진상 규명을 외면하는 데 대해 1월 중으로 헌법 소원을 내기로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조용환 변호사가 추진하고 있는 이 헌법 소원은 건국 후 양민 학살 사건이 사법적 판단으로 옮아가는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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