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가산점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 金恩男 기자 ()
  • 승인 2000.01.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산점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호봉·수당 등 실질적 권익 향상시켜야
예비역은 용감했다. 7·9급 공무원 채용 시험 때 군필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이 위헌이라고 헌법재판소가 판결한 12월24일 이후 이들은 즉각 행동을 개시했다.

예비역들은 먼저 ‘해킹’이라는 초현대식 무기로 헌법재판소·행정자치부·여성단체 따위 ‘적’의 진영을 초토화했다. 이들의 기습 공격으로 행자부 홈페이지 게시판은 12월27∼28일 세 차례 작동이 멈추었다. 적진의 창공(모니터)에는 한동안 ‘헌재 파괴 사건’이라는 비라만 동동 떠 있었다.

헌법재판소나 여성단체 홈페이지 게시판도 차례로 작동 불능 상태에 빠졌다. 하루 평균 2천∼3천 명씩 인해전술로 밀어닥치는 이들 앞에 전산망은 수시로 다운되었다. 사이버 전선(戰線)에 자생적으로 출현한 지휘관들은 이들 전산망이 복구되는 대로 ‘헌재 게시판 다시 접속 가능, 진격하라!’고 출동 명령을 내렸다.

노른자위 정부 부처 군필자가 싹쓸이

‘재래전’도 여전히 위력을 과시했다. 12월30일 대한민국재향군인회(회장 장태완)는 전쟁기념관(서울시 용산구) 광장에서 ‘제대 군인 가산점 제도 위헌 결정 규탄 궐기대회’를 열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12·24 헌재 판결 이후 불붙은 ‘예비역의 반란’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PC통신이나 인터넷 게시판에는 ‘헌법소원을 제기한 여자들을 정신대에 보내자’처럼 이성을 잃은 듯한 주장도 심심치 않게 오르고 있다.

이번 헌법소원을 맡은 이석연 변호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가 지적한 대로, 법 감정으로 따지자면 예비역들의 항의는 정당하다. ‘누구든지 병역 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제39조 2항)고 헌법은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제대 군인에 대해 여러 가지 사회 정책적·재정적 지원을 강구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제대 군인에 대한 보상이 다른 집단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방식, 다시 말해 헌법이 보장한 ‘기회의 평등’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석연 변호사의 지적이다. 이번에 헌재는 ‘가산점 비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달라’는 헌법소원 제기자의 주장을 수용하는 데서 더 나아가, 가산점 제도 자체를 위헌이라 판결함으로써 이 제도가 부당하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군 복무 가산점 제도가 여성·장애인을 포함한 군 미필자의 취업 기회 자체를 박탈했다는 증거는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산점 3∼5%의 위력은 대단했다. 1998년 6월 철도청 기능직 채용 시험(23명 채용)의 합격선은 100점 만점에 100.50점이었다. 필기 시험 자체가 너무 쉽게 출제된 데다 군 복무 가산점 3∼5점, 자격증 가산점 3∼5점을 받은 군필 남성이 합격선을 만점 이상으로 끌어올린 셈이었다. 그 결과 필기 성적은 우수했으나 군 가산점 혜택을 못 받은 미필 남성이 불합격 처리되었다(여성 응시자는 거의 없었다).

같은 해 실시된 7급 국가공무원 시험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일반 행정직 부문의 경우 최종 합격자는 99명. 이 중 군 복무 가산점을 받은 군필자는 72명으로 전체의 72.7%를 차지했다. 이에 반해 가산점을 전혀 받지 못한 채 합격한 사람은 6명으로, 전체의 6.4%에 지나지 않았다. 검찰 사무직의 경우 합격자 15명 가운데 가산점을 전혀 받지 못한 사람은 단 1명이었다.

이 때문에 여성이나 장애인, 군 미필자 사이에는 ‘7급이나 9급 합격을 꿈꾸느니 차라리 5급 시험을 준비하라’는 말이 정설로 통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오해는 있었다. 5급 공무원의 경우 채용시 군 가산점을 따로 산정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단 부서 배치시 가산점 규정은 엄연히 살아 있었다.

행정·기술 고시 합격자는 6개월간 연수를 마친 뒤 희망 부처를 지원하게 되어 있다. 이때 최종 성적에 따라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데, 문제는 군필자의 경우 최종 성적(고시 2차 성적 100점+연수 성적 100점)에 가산점 2점을 주어 왔다는 사실이다. ‘2점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고시 2차 성적의 경우 합격선인 56.5점과 57.5점 단 1점 사이에 30여 명이 몰려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한 수습 행정관의 말이다.

그 결과 군 가산점이 없는 사람은 성적 순위가 뒤로 밀리면서 ‘노른자위’ 부서를 선택할 기회가 줄어들게 되었다고 국회 여성특별위원회 박숙자 전문위원은 지적했다. 어렵게 행정고시를 통과한 여성이 이른바 ‘청’자 돌림 비인기 부서에 집중 배치되었던 것이 이 때문이라는 말이다. 결국 공직에 진출한 여성은 가산점으로 인해 채용·부서 배치·호봉 산정에서 3중 불이익을 겪은 셈이다.

이같은 현실을 온몸으로 겪어 온 여성·장애인은 헌재 판결을 비난하는 예비역의 반응에 ‘그게 여론이냐, 배설이지’(하이텔 ‘페미니스트의 천국’)라는 식으로, 맞대응을 피하고 있다. 헌재 판결 이후 불붙은 논쟁을 ‘남녀 성(性) 대결’로 묘사한 일부 언론이 무색하리만큼 여성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어둠의 자식들’ 상대적 박탈감 분출

이들의 침묵은 결국 뿌리 깊은 피해 의식을 반영한다. ‘자기들은 시집 가서 아들 안 낳나. 결국은 (군 가산점으로 인한) 혜택을 받을 텐데 왜들 한치 앞만 보고 그래.’ 취업 기회를 박탈한 것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은 폭거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 동료의 이같은 힐난을 듣다 보면 기득권자가 갖는 인식의 한계를 절감한다는 것이 행자부에 근무하는 2년차 여성 공무원의 말이다.

그러나 여성·장애인이 기득권자라고 여기는 ‘신체 건강한 예비역 남성’ 또한 피해 의식을 호소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피해 의식은 군대 생활을 ‘희생’이라고 표현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군필자들은 더 이상 유쾌한 에피소드와 허풍으로 군대 이야기를 덧칠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추억이 아니라 상처이기 때문에 남자의 자존심으로 차마 말하지 못했던 영역(하이텔 아이디 CROSSER)’ 곧 구타·기합·의문사·모욕적 대우로 점철된 군대 생활을 봇물 터진 듯 폭로하고 있다.

문제는 군필자의 피해 의식이 군대 생활 그 자체보다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상대적인 박탈감은 ‘집안 좋은 동창 녀석은 모두 빠진 채 별볼일 없는 친구들만 군대에 끌려가는 순간’부터 작동하기 시작한다. 변심한 여자 친구 때문에 화장실에서 숨 죽여 울고, 여름날 산악 구보 하다 탈진해 죽고, 수류탄 투척 훈련 하다 폭사하고, 월급이 모자라 PX에서 외상을 갖다 썼다가 이를 갚지 못해 죽도록 얻어맞는 것은 대부분 힘 없고 백 없는 ‘어둠의 자식들’이다.

박탈감은 제대 이후까지 이어진다. 깍듯하게 모시던 입사 선배는 알고 보니 ‘같은 학번에 군 미필자’이다. 군필자에게 호봉을 더 계산해 주는 것도 아니다. 호봉과 승급을 결정하는 회사 고위 간부층은 ‘공교롭게도’ 군 미필자이기 일쑤이다.

헌재 판결은 억눌려 있던 이들의 피해 의식에 불을 붙인 셈이다. 그럼에도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군 생활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라 믿는 가산점 제도에 집착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려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기득권 세력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군 가산점 제도는 애초에 병역 기피를 막고 남성 군필자와 미필자 사이에 형평을 기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였다. 그런데 제도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여성이나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가 엉뚱하게도 희생양이 되어 버렸다”라고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오순옥 부장은 지적한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희생을 계속 요구하기보다 군필자의 ‘실질적인’ 권익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제대 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1997년이었다. 단 이 법이 제정된 1997년 이후나 ‘국가 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지원이 이루어졌던 1997년 이전이나, 가산점 제도는 군필자에 대한 거의 유일한 보상책이었다. ‘가산점 제도는 아무런 재정적 뒷받침 없이 제대 군인을 지원하려 한 나머지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희생을 초래했다’라고 헌재가 지적한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이다.

군필자 권익을 보호하는 몇 가지 방법

사실상 가산점 제도로 혜택을 입는 군필자는 극소수이다. 제대 군인 6백만 명(현역 장병 70만 명) 가운데 6급 이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기껏해야 한 해 평균 몇 만 명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자신을 주부라고 밝힌 한 PC통신 이용자(sereneb)는 ‘가장 싸고 손쉬운 방법으로 심리적인 보상만을 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여성과 장애인을 실질적으로 깔아뭉개고 대다수 군필자를 우롱해 온 국가와 기득권층에 대해서 남성의 분노가 왜 작동하지 않는지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군필자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호봉 및 경력 산정시 복무 기간을 인정해 주거나 △정부·민간 기업 채용시 2∼3년 응시 연한을 늘려주거나 △제대 전 일정 기간 동안 사회 복귀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안 따위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연봉제나 성과급제를 도입하고 있어 복무 기간 인정을 꺼리는 민간 기업에 대해서는 △군 복무 기간에 해당하는 수당을 따로 지급하거나 △퇴직시 연금 혜택을 주는 방안을 제시하고, 다양한 인센티브로 이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한국여성개발원 김태홍 박사는 제안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군 구조 개편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군사 평론가 지만원씨는 지적한다. 재래전 개념에서 신체 부적격자로 판정 난 사람도 몸 대신 머리를 써야 하는 현대전에서는 얼마든지 유용하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이들을 적극 활용하면 전체 장병의 복무 기간을 1년 남짓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복무 기간이 단축되면 전력의 질이 떨어진다는 반박도 있지만, 이는 재래전에서나 통하는 개념이라고 지씨는 반박한다). 최근 네티즌 사이에는‘징병제에 반대하는 모임’(http://members.tripod.co.kr/zingbanmo)을 결성하고,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를 부과하자는 서명 운동이 한창이다(상자 기사 참조). 이같은 움직임이 ‘군 개혁’이라는 본질적인 논의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