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의 밤, 몸 파는 아이들
  • 이철현 기자 (leosisapress.comkr)
  • 승인 1999.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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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해방구’ 신촌, 청소년 매춘 밀착 취재/유흥업소 주변 원조 교제 성행
향락과 소비의 거리 서울 신촌. 행정 구역으로는 서대문구 창천동·대현동과 마포구 노고산동·신수동·창전동이 잇닿은 신촌 5거리 주변 지역을 일컫는다. 이 곳의 하루 유동 인구는 60여 만명. 단란주점·음식점·디스코테크가 6천여 곳이고 비디오방·노래방·게임방이 천여 곳이나 된다.

갖가지 유흥 시설이 넘치다 보니 신촌의 밤은‘한번 놀고 싶은’사람들로 흥청거린다. 그들은 술 마시고 음악에 젖어 몸을 흔들어 대며 가슴 속에 가득찬 공허감을 잠시 잊는다. 겨울 들어 일찍 찾아온 어둠은 업소 간판에 달린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에 후미진 골목으로 쫓겨간다. 불야성을 이룬 거리에는 남녀가 무리 지어 비틀거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자정이 가까워지면 회사원들이 도로에까지 나와 택시를 잡는다. 오전 2시가 되면 술집 접대부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향락의 수요자와 공급자인 손님과 접대부가 빠져나간 신촌 거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청소년이다. 집에서 나와 신촌 근처 대흥동이나 노고산동 주위에서 자취하는 10대는 잠들지 않는 거리에서 향락의 끝을 이어 간다.

향락을 즐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뚜렷한 소득원이 없는 청소년들은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향락의 제물로 전락한다. 제527호 커버 스토리에서 10대 매춘 실태를 고발한 <시사저널>은 그 후속으로 잠들지 않는 거리 신촌에서 흔들리는 10대 청소년들의 일상을 추적했다.

지난 12월2일 오전 2시35분. 신촌 현대백화점 맞은편 ㅌ커피숍에서 10대 미성년자로 보이는 여자 1명이 걸어 나왔다. 이 여성은 오후 11시부터 커피숍에 앉아 친구 5명과 어울려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러다가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커피숍을 나선 것이다. 커피숍에서 신촌 5거리 쪽으로 가던 이 여성은 점퍼와 ‘기지’바지 차림에 검은색 서류 가방을 든 30대 초반 남자에게 다가가 팔짱을 꼈다. 연인이라기에는 나이 차가 많고 아버지와 딸로 보기에는 나이 차가 너무 적었다. 이 둘은 곧바로 다주종합상가 뒤편에 있는 여관 골목으로 사라졌다.

한 시간이 지난 3시30분 쯤 이 여성은 다시 ㅌ커피숍으로 돌아왔다. 기자 한 사람이 커피숍으로 올라가‘함께 놀자’고 제의했다. 친구와 어울려 있던 이 여성은 “친구가 더 와야 한다”라고 말하며 ‘박진희’라는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었다. 1시간을 기다린 후 전화를 걸어 다시 만나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진희는 집에 가야 한다고 거절했다. 할 수 없이 “현금 서비스를 받아 40만원을 찾아 왔다. 친구와 함께 오면 20만원씩 주겠다”라고 제의하자 흔쾌히 허락했다.

약속 장소인 다주종합상가 앞으로 나온 이는 3명이었다. 1명은 돈을 받아 집에 가고 2명은 처음 만난 남자들을 따라가려는 것이었다. 취재진은 3명을 가까운 커피숍으로 데려가 신원을 밝혔다. 범죄 현장을 들킨 현행범처럼 진희 일행은 겁을 먹었다. 취재 의도를 밝히고 신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후 30분 가량 설득한 끝에 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원조 교제로 받은 화대, 대부분 유흥비로 탕진

진희는 본명이 아니었다. 진희라고 자기 신원을 밝힌 이 여성은 올해 3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미성년자였다. 그는 부모에게 백화점 점원으로 일한다고 속이고 신촌 근처에서 친구와 자취하고 있었다. 진희는 원조 교제를 하며 생활비와 유흥비를 번다. 방세 22만원을 내고 친구와 만나 술 마시고 놀다 보면 한달에 70만원은 쓰게 된다.

올해 초 집을 나온 뒤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호프집과 커피숍에서 음료수를 나르는 일이었다. 일은 고되고 유흥비로 나가는 돈이 많아지자 진희는 친구와 함께 다른 수입원을 찾았다. 그러다가 올해 11월부터 원조 교제에 나선 것이다. “기분은 찝찝하지만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어 (원조 교제를) 몇번 했다. 눈 감고 여관에 들어가 30분만 견디면 10만원이 들어왔다.”

진희와 함께 원조 교제에 나선 친구는 이현미양(가명·19). 진희와 학교 동창이다. 현미는 꺼칠한 얼굴을 두터운 화장으로 숨기고 있었다. 그는 친구 6명과 함께 부천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있을 때마다 신촌에 있는 진희 집에 들러 원조 교제에 따라 나선다. 현미가 원조 교제에 나선 것은 지난해부터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호기심이 생겨 친구와 함께 시작한 것이 이제는 주요 수입원이 되었다.

이 두 미성년자는 ㅌ커피숍에 앉아 길 건너편에 있는 전화방에 전화해 원조 교제 대상을 찾는다. 화대 10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한 30대 초·중반 회사원과 다주종합상가 앞이나 현대백화점 옆 공중 전화 부스에서 만난다. 주로 가는 곳은 다주종합상가 뒤쪽에 있는 여관 골목. ㅅ여관이나 ㅂ모텔에 들러 30분∼1시간 가량 머무르다가 나온다. 두 곳을 자주 들리지만 한번도 주민등록증을 보자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

신촌 주변에는 이름난 여관 골목이 산재해 있다. 서산파출소 맞은편 노고산동 여관 골목에는 새벽 4시까지 들고나는 손님이 넘친다. 신촌파출소 뒤쪽과 이화여대 정문을 등지고 왼쪽으로 가면 여관이 밀집한 골목이 나온다. 미성년자들은 인근 전화방에서 나온 원조 교제 상대자들과 만나 이 곳으로 들어간다. 여관 골목 주변 커피숍이나 PC방·만화방에 가출 청소년이 몰려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진희와 현미는 원조 교제를 통해 적지 않은 돈을 벌지만 저축한 것은 전혀 없다. 버는 즉시 신촌에서 다 쓰고 만다. 신촌에서 돈을 벌어 신촌에서 쓰는 것이다. 단순하게 보자면 진희와 현미는 신촌에서 돈을 쓰기 위해 몸을 판다. 원조 교제까지 하면서 돈을 벌려는 이유를 묻자 현미는 “아직까지는 놀고 싶다. 공장이나 회사에 취직하면 돈을 벌겠지만 놀 시간이 부족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청소년에게 큰 돈처럼 보이는‘화대’는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거나 디스코테크에서 몸 한번 흔들고 나면 사라진다. 진희와 현미는 돈이 늘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술집에 나가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술집 손님과 2차를 나갔다 오면 25만원 가량 벌지만,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데다 아직까지는 술집 여자로 전락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몸 파는 미성년자의 거점인 ㅌ커피숍에는 시간에 상관없이 술에 절었거나 옷을 튀게 차려 입은 미성년자가 모여든다. 진희가 여관에 들어간 이후에도 투피스를 입고 하늘색 비닐 가방을 든 미성년자가‘일’을 마치고 ㅌ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새벽 4시에 문을 닫기까지 ㅌ커피숍은 진희처럼 몸을 팔거나 갈 데 없는 미성년자로 붐빈다. 24시간 커피숍·PC방 등 전전

ㅌ커피숍에서 서교동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면 ㅅPC방이 있다. 이 곳에도 새벽 내내 미성년자가 들고 난다. PC방에 들어가는 미성년자는 커피숍파보다 나이가 어려 보인다. 이들은 하늘사랑이나 천리안 같은 통신망의 채팅방에 들어가 원조 교제 대상을 물색한다. 원조 교제 대상을 찾지 못하면 그냥 그 곳에서 밤을 새우기도 한다. 향락 시설이 6천여 개나 밀집한 창천동과 대현동 일대 PC방에서는 새벽녘까지 원조 교제 대상을 찾는 10대 청소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새벽 4시가 넘으면 이들은 신촌 주변에 있는 자취방으로 들어간다. 가출 청소년이 대부분인 이들은 마포구 대흥동이나 노고산동처럼 방세가 싼 곳에 2∼5명씩 집단 거주하고 있다. 부천에 사는 현미도 지난 7월쯤 이 곳에 자취방을 구하려다 실패했다. “방세가 싼 대흥동이나 창천초등학교 주변 자취방에는 10대 청소년이 가득차 있어 방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신촌 주변에 사는 미성년자는 보통 오후 5시까지 자취방에서 잠을 잔다. 5시 이후에는 화장하고 동대문시장에서 산 옷을 입는다. 다시 환락의 거리로 들어서기 위해 채비하는 것이다. 단란주점이나 디스코테크에서 ‘삐끼’로 일하는 남자들은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즐기거나 비디오를 보다가 저녁 8시쯤 되면 호객을 하려고 창천동 근처를 헤맨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가출한 김동석군(가명·18)은 “신촌에는 놀 곳이 많다. 돈만 있으면 어른 눈치 보지 않고 얼마든지 술 마시고 즐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동석은 신촌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일하는 곳은 동대문시장 근처 커피숍이지만 자취방은 마포구 노고산동에 있다. 동석은 이서영양(가명·18)과 이곳에서 동거할 계획이다. “서영이가 아직 부모 허락을 받지 못하고 있다. 끝내 허락하지 않으면 서영은 집을 나오겠다고 한다.”

동석과 서영은 새벽 4시까지 신촌 주변을 서성인다. 서영과 친한 커피숍 주인을 도우면서 2∼3시까지 커피숍에서 지내고 그곳이 문을 닫으면 노래방이나 PC방에 가서 새벽녘까지 논다. 서영 옆에는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 여동생 서은(가명·13)이 따라다닌다. 서은이는 긴 부츠에 짧은 스커트를 입고, 앳된 얼굴은 화장으로 숨겼다. 원조 교제를 하거나 남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신촌에 나온 것은 아니다. 서은은 단지 신촌의 밤을 즐기기 위해 나선 것이다. “새벽녘까지 놀다가 언니와 함께 집에 들어간다.” 서은은 신촌이 지저분한 곳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루고 길거리에 사람이 넘치는 신촌이 서은에게는‘네버랜드’(동화 <피터팬>에 나오는 모험과 신비로 가득찬 곳)처럼 보인다. 가출 청소년, 잠자리 얻기 위해 몸 팔기도

삐끼 생활과 커피숍에서 음료수를 나르면서 돈을 모은 동석과 달리, 이제 막 가출한 청소년들은 방을 구할 돈이 없다. 아무리 초라한 방이라고 해도 보증금 백만원에 한달 방세 30만원은 내야 한다. 잘 곳이 없는 미성년자는 24시간 영업하는 커피숍이나 만화방·PC방에서 잠을 청한다. 신촌 주변 단란주점에서 일하는 한 종업원은 “24시간 커피숍이나 만화방에 가면 엎어져 잠든 가출 청소년을 많이 볼 수 있다. 휴대폰을 하나씩 들고 다니는 이들은 어딘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나갔다가 30분이 지나면 다시 들어온다”라고 말했다.

24시간 영업하는 곳에서도 잘 곳을 찾지 못한 가출 미성년자 가운데 일부는 주변 여관에서 잠을 잔다. 돈이 없으니 여관에서 자려면 여관 주인이 부탁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한다. 낮에 여관을 찾는 인근 업소 주인이나 종업원에게 몸을 팔아야 하는 것이다. 신촌 지역 여관 주인 가운데 일부는 갈 곳 없는 미성년자의 처지를 이용해 한몫 챙긴다.

신수동 ㅇ여인숙이 대표 사례이다. 이 곳에는 오전 8시쯤이면 가출한 여학생이 모여든다. 밤새 PC방이나 카페에서 놀던 미성년자들이 잠을 자려고 들어오는 것이다. 여인숙 주인은 미성년자에게 숙박비를 받지 않는다. 대신 주인이 아는 이를 상대로 몸을 팔게 한 후 화대로 받은 5만원 가운데 3만원을 챙긴다. 이 곳을 자주 찾는 한 주민은 “가출 청소년이 여인숙에서 코크(본드)를 들이마신 후 몸을 팔고 있다”라고 증언했다. 여인숙 주인은 소문이 날 것을 우려해 자기가 아는 인근 업소 주인이나 종업원만을 손님으로 받는다.

취재진은 그곳 주민에게 부탁해 문제의 여인숙을 찾았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여인숙 현관을 열고 들어서자 내의 바람에 배가 나온 50대 중반 남자가 맞았다. “애들 있어요?”라는 질문에 그 주인은 “지금 없어. 나중에 와”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단속이 심한 데다 가출 청소년 부모가 찾아와 끌고 가는 바람에 여인숙에 들어오는 미성년자가 줄었다고 덧붙인다. 그렇다고 이 여인숙에 가출 청소년의 발길이 아주 끊기지는 않은 듯하다. 지금도 갈 곳 없는 청소년이 신촌 거리를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청소년특별보호대책을 발표하고 지난 11월29일부터 신촌 지역 일대 청소년 유해 업소를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44쪽 딸린 기사 참조). 그래서 지금은 신촌에 미성년자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기자의 취재 결과, 단속의 눈길이 가지 않는 후미진 곳에서는 여전히 미성년자들이 유흥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팔고, 그렇게 번 돈으로 술집을 전전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당국의 단속은 건성이다.

신촌은 욕망의 배설물이 쌓이는 곳이다. 신촌으로 몰려든 가출 청소년들은 그 배설물을 뒤집어쓰고 있다. 미성년자들은 돈이 필요하거나 향락을 즐기기 위해 신촌에 모여들지만 해소되지 않는 욕망의 해방구에서 난민으로 전락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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