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밀양·남해 ‘케이블카 전쟁’
  • 부산/박병출 (pbc@sisapress.com)
  • 승인 2000.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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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돈벌이 위해 다투어 설치 추진…시민단체 “환경만 망친다” 극력 반대
1962년 5월, 봄기운이 무르익은 서울 남산에 일대 ‘소란’이 일었다. 줄타기를 하듯 위태로운 형상을 하고도 한 번에 40명 가까운 사람들을 산 위로 실어 나르는 ‘공중 전차’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승강장 앞은 장사진을 이루었고, 구경하려는 인파로 남산이 넘쳐날 지경이었다. 케이블카가 국내에 처음 등장했을 때의 모습이다. 그 후로 30년, 전국에 걸쳐 스무 군데 가까이 케이블카가 설치되었다. 일부는 영업이 부진해 문을 닫았고, 운행하는 곳도 상당수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경남 지방에서는 때아닌 케이블카 논쟁이 뜨겁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투어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자, 환경단체들이 반대운동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각 지역 단위로 활동해 온 환경·시민 단체들은 6월26일 ‘경남도내 케이블카 설치 반대 대책위원회’(대표 김철수 마산·창원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결성해 공동 대응을 시작했다.

현재 경상남도에서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는 곳은 통영·밀양 시와 남해군. 통영시가 관광특구로 지정된 미륵도의 미륵산에, 밀양시가 천연기념물인 얼음골 인근 영남 알프스의 관문인 재약산에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남해 금산의 경우는 사정이 달라서, 군이 아닌 군의회 의원과 일부 군민이 앞장섰다.

이들이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는 배경은 비교적 단순하다. 한정된 볼거리로 인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관광지를 되살리기 위해 새로운 상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영 수익을 올리려는 단체장들의 욕심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케이블카 설치가 환경을 망치는 것은 물론 주민의 세금까지 결딴 낼 무모한 사업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양측은 먼저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가장 구체화한 통영시에서 격돌했다. 통영시는 1998년 4월 미륵도에 자연공원 조성을 추진하면서 그 안에 케이블카도 설치할 계획을 세웠다. ‘미륵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를 위한 시민모임’(시민모임·대표 염동훈)은 통영시가 이미 경상남도로부터 자연공원 도시계획시설 결정을 받아내 환경영향평가를 마칠 즈음인 지난해 7월 뒤늦게 결성되었다. 사무국장 설종국씨(건축 설계사)는 “통영시가 자연공원 계획서에 케이블카에 대해서는 한두 줄만 언급하고 별다른 설명도 하지 않아 계획을 뒤늦게 알았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시민모임은 결성 직후부터 신문 광고와 시민 서명운동, 성명서 등을 통해 케이블카 설치 반대 분위기를 확산해 왔다. 통영시는 시대로 시민 설명회·토론회 등을 통해 케이블카 설치의 당위성을 홍보해 논쟁이 점점 뜨거워졌다. 부동산 투기·특혜 의혹도

초기의 쟁점은 케이블카 설치 예정지인 미륵산에 대한 시민 정서였다. 미륵산은 근대 불교의 거봉인 효봉 스님이 수도한 바위와 임진왜란 때 승병이 주둔한 호국사, 충무공 이순신이 이끈 수군 통제영의 봉수대 등이 자리해 통영 시민의 마음의 고향이 되어 왔다. 설종국 사무국장은 “굳이 경사가 60°가 넘는 이곳을 발파해 승강장을 설치하겠다는 것은 힘을 앞세워 케이블카 설치 반대운동을 잠재우겠다는 의도이다”라고 말했다.

통영시와 시민모임의 팽팽한 대립은, 종점 설치 예정지 일대가 통영 지역의 유일한 토종 수목인 ‘통영병꽃’ 자생지라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 시민모임에 유리한 국면으로 기울고 있다. 지난 7월2일 산림청 산하 임업연구원 이유미 박사팀이 현장을 확인한 결과 현재 남은 개체가 30 그루 이하로 밝혀져 보존이 절실한 상태이다. 통영시는 최근 “필요하다면 종점 위치를 현재의 해발 430m 지점에서 병꽃나무 자생지 아래인 해발 380m 지점으로 옮기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라고 신축적인 자세를 보였으나, 사업 계획을 철회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했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안에 기본 설계 공모와 사업자 선정을 거쳐 내년 초에 착공하게 되어 있어, 환경단체들과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있는 셈이다.

막판에 통영병꽃이라는 돌발 변수를 만난 통영시와 달리, 밀양시는 처음부터 홍역을 치르고 있다. 밀양시가 케이블카 설치 계획을 밝힌 것은 지난 4월 경상남도가 서울에서 개최한 투자유치 설명회를 통해서였다. 그날로 지역 업체인 한국화이바가 사업에 필요한 70억 원 전액을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혀 협약서를 체결했지만, 아직은 구체적인 사업 계획조차 나오지 않은 단계다. 후보지가 가지산 도립공원 구역에 들어 있어, 경상남도에 건의한 공원계획 변경 결과가 나온 후라야 사업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 밀양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밀양 참여시민연대(공동대표 나철수 목사 석지연 스님 김용환 신부)의 반대운동에 대해서는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오히려 등산객에 의한 훼손을 줄일 수 있다. 공사 장비와 자재를 헬리콥터로 수송하는 등 설치 단계에서부터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이런 발표 내용을 무색케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케이블카 중간 지주를 설치할 위치에 있던 나무 수백 그루가 아무런 절차도 밟지 않은 채 베어진 사실을 시민연대가 폭로했다. 이에 대해 ‘측량 작업 과정에서 공무원이 입회해 나뭇가지 일부를 쳐냈을 뿐 훼손은 없었다’고 해명한 밀양시는 시민연대가 현장 사진을 공개하자 ‘측량회사 직원들이 한 일’이라고 발뺌했다.

검찰 지시로 뒤늦게 현장 조사를 벌인 밀양시 산림보호과 관계자는 “투자 의사를 밝힌 한국화이바가 서울의 ㄹ사에 의뢰해 측량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훼손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측량을 맡았던 팀이 외국 출장 중이어서 진상을 파악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ㄹ사는 외국 케이블카 업체의 국내 에이전트로 알려져 있는데, 전화번호도 공개하지 않고 몰래 활동해 온 사실이 확인되었다.

당초 “아직 밀양시가 사업 계획도 세우지 않은 단계여서 우리는 아무런 조처도 취할 수 없다”라며 ㄹ사와의 관련을 부인한 한국화이바는 “ㄹ사가 일방적으로 접근해 와 몇 차례 접촉한 적은 있다”라고 밝혔다. 타당성 조사 등 가장 기초적인 절차도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도 사업권자인 밀양시가 아닌 민자 참여 업체를 상대로 사업권을 따기 위해 접촉했다는 사실은 의혹을 살 만하다.

취재 과정에서 또 다른 의혹도 감지되었다. 한국화이바가 최근 조 아무개씨(37·부산시 남구 광안동) 소유 산 95-1 일대 땅 95만5천여㎡를 대상으로 분할 측량을 실시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곳은 밀양시가 케이블카 노선 개략도에 종점 설치 장소로 표시해 둔 곳이다. 한국화이바측은 “비용을 우리가 대는 조건으로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 토지를 분할했다”라고 밝혀 토지 매입 절차가 상당 부분 진행되었음을 시사했다. 땅을 매입한 후 노선이 현재대로 확정된다면, 부동산 투기나 특혜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남해군은 주민들이 적극 나서

남해군에서는 상주 일대 주민과 이 지역 출신인 김노원 군의회 의원이 지난 5월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공원계획 변경 건의서를 제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남해군이 1994년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된 금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다가 내무부와 환경부의 반대로 무산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금산 들머리에 자리잡은 상주면이 1980년대 말 반대편인 이동면 복곡리 쪽에 임도가 개설되어 관광객을 빼앗기자 케이블카로 상권을 되찾겠다는 것이 재추진 배경이다.

그러나 재정 자립도가 낮아 사업 재원을 전액 민자에 의존해야 하는데다 가뜩이나 몸살을 앓는 금산 훼손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남해군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하지만 남해군은 주민이 추진하는 사업을 내놓고 반대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재일교포 기업인 등을 상대로 한 상주면 주민들의 민자 유치 여부가 남은 변수이다.

케이블카 바람은 환경단체를 제외한 대다수 주민이 무관심하거나 찬성하는 분위기에서 불어닥치고 있다. 케이블카가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 환경만 파괴하는 애물이 되지는 않을지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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