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파로 얼룩진 수영 국가대표 선발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0.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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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경영, ‘될 선수’ 탈락… 싱크로나이즈, 선발전 없이 대표 선발
이혜화양(16) 재납치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경찰은 아직까지 뚜렷한 단서나 용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미궁에 빠진 이양 사건을 취재하면서 기자는 일선 코치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제보를 받았다. “혜화양 사건뿐 아니라 수영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제보 내용은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 흑막이 있다는 것이었다. 수영은 기록 경기이고, 기록이 실력을 말해주므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확인해 보니 제보는 사실이었다.

2000 시드니올림픽 국가대표로는 경영 17명, 싱크로나이즈 2명, 다이빙 4명이 뽑혔다. 대한수영연맹은 부산 아시아 수영 선수권대회(3월28일∼4월2일)와 동아 수영대회(4월22∼25일) 기록을 기준으로 5월2일 1차 올림픽 국가대표 12명을 선발했다. 지나치게 선수단 규모를 줄였다는 비난과 기초 종목을 육성하라는 대한체육회의 권고에 밀려 5월10일 국가대표를 추가 선발했다. 이 2차 선발에 잡음이 일었다.

2차 국가대표 추가 선발에서 당연히 뽑혀야 할 선수가 탈락했다. 국가대표에서 탈락한 선수는 자유형 200m가 주종목인 최 아무개군. 그는 아시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계영 400m와 800m에서 동료 선수들과 함께 각각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은메달을 차지했다. 특히 계영 800m 7분31초96은 한국 신기록일 뿐 아니라 올림픽 기준 기록인 7분32초97을 넘어선 기록이다. 기준 기록을 통과했다는 것은 한국 수영으로서는 처음으로 본선 A파이널(1∼8위전)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남녀 배영의 지상준과 이창하가 B파이널(9~16위전)에 오른 것이 역대 올림픽에서 거둔 최고 성적이었다.

최선수를 포함해 한국 신기록을 세운 남자 계영 800m 선수들은 ‘드림팀’으로 알려져 있다. 드림팀이 올림픽에 나간다면 올림픽 참가 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 일선 코치들의 지적이다. 계영 800m를 함께 뛰었던 동료들은 모두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그렇다면 다른 선수가 최선수 역할을 해주어야 계영에서 좋은 기록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최선수 대신 국가대표로 선발된 선수는 자유형 선수가 아닌 배영 이 아무개 선수다. 이선수는 성 아무개 선수와 동일 종목에서 함께 뽑혔다. 문제는 성선수가 동아 수영대회 배영 100m·200m 경기 모두 이선수를 앞섰기 때문에 더욱 의문이 일고 있다. 굳이 배영 선수 2명을 뽑느니 최선수를 뽑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이다. 계영 800m 출전 포기해야 할 판

최선수가 빠지면서 남자 계영 800m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 일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수영 관계자는 “최선수가 대표팀에서 빠진 것으로 보아 계영 800m 출전은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다른 선수가 들어간다고 해도 좋은 기록을 낼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남자 경영뿐 아니라 싱크로나이즈 국가대표 선발 때도 문제가 제기되었다. 시드니올림픽 싱크로나이즈는 8명 팀 부문과 2명 듀엣 부문 경기가 열린다. 한국은 지난 4월 시드니에서 열린 팀 부문 예선전에서 탈락해 듀엣 부문만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했다. 싱크로나이즈에서는 장윤경·최유진·유나미·김민정 선수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 1인자인 장선수는 다른 선수에 비해 일찌감치 올림픽 대표로 내정된 상태였다. 장선수의 파트너를 정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한국 싱크로나이즈는 두 지도자에 의해 양분되고 있다. 바로 김 아무개씨와 이 아무개씨. 두 사람은 상임이사를 역임하면서 싱크로나이즈 발전에 기여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김○○ 사단’이니 ‘이○○ 사단’이니 하는 계보가 만들어졌다. 수영연맹의 한 대의원은 “누가 상임이사가 되느냐에 따라 판도가 바뀐다. 감독부터 선수까지 한쪽에서 다 차지하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김 아무개씨의 수제자는 유나미·최유진, 이 아무개씨 수제자는 김민정 선수다. 자연스럽게 자기 선수를 대표로 만들기 위해 양 계파가 대립했고, 이 과정에서 4월로 예정되었던 선발전이 연기되었다. 5월10일 국가대표 추가 선발 때 이관웅 수영연맹 전무는 “뒷말을 없애기 위해 선발전을 하지 않고 경력을 고려해 대표를 선발했다”라며 유나미 선수를 장선수의 파트너로 정했다. 국가대표 선발이 선발전 없이 결정된 것이다. 나머지 선수들은 실력도 펼쳐 보지 못하고 올림픽 출전 기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잡음이 일자 싱크로나이즈 관계자는 선수들에게 다음과 같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세계수영연맹(FINA)으로부터 ‘올림픽 예선전에 출전한 선수만 본선에 나갈 수 있다’는 공문이 전달되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올림픽 듀엣 대표 선발에 잡음이 생길 이유가 없다. 지난 4월 시드니에서 열린 올림픽 예선전 듀엣 부문에 장윤경·유나미 선수가 호흡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국가대표 선발전도 필요 없이 두 선수가 출전해야 한다. 확인해 보니 이러한 공문은 온 적이 없었다. 수영연맹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싱크로나이즈 듀엣 부문에서 후보 선수 없이 2명만 출전시키도록 세계수영연맹으로부터 공문이 내려왔다. 그러나 최종 선발 선수는 조정할 수 있다. 선수가 선발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선발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스포츠는 공정한 규칙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어린 선수들은 그런 규칙에 의해 운영되는 스포츠가 깨끗하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한국 수영은 선수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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