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 변강쇠 앞세워 돈 버는 지자체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1999.05.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국 지자체, 지역 ‘캐릭터·상품’ 개발 붐
지난달 초 광주 동구 궁동 ‘예술의 거리’에 ‘미스터 DJ 캐릭터 전시 판매장’이라는 이색적인 매장이 문을 열었다. 전남 신안군이 캐릭터 개발업체와 손잡고 모자·넥타이·시계·저금통 따위 김대중 대통령을 활용한 캐릭터 상품들을 선보인 것. 가장 인기를 끈 것은 6천원짜리 DJ 저금통으로 현재까지 50만개 이상이 팔려 나갔다고 한다.

비단 신안군만이 아니다. 전국의 자치단체가 지역 홍보와 재정 수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캐릭터 개발에 나서고 있다. 전북 남원시는 지난해 8천5백만원을 들여 ‘춘향과 이도령’ ‘변강쇠와 옹녀’ ‘흥부와 놀부’ 등 캐릭터 상표 다섯 가지를 등록하고 올해부터 상품 시판에 들어갈 예정이다. 춘향과 이도령은 연인들의 사랑 메시지를 담은 고급 팬시 상품에, 흥부와 놀부는 어린이와 유아를 위한 학용품 분야에, 변강쇠와 옹녀는 건강 식품과 성인용 공예품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마케팅 잘못하면 예산 낭비로 이어질 수도

전남 장성군도 ‘홍길동’ 캐릭터를 개발해, 지난해 어린이용 문구업체를 통해 ‘홍길동 굴렁쇠’만으로 5천만원을 벌었다. 함평군 역시 ‘함평 천지 나비’ 캐릭터를 상표로 등록해, 모자·접시·돗자리 등 캐릭터 상품들을 내놓았다. 진돗개 캐릭터를 상표 등록하려는 프로축구연맹과 분쟁을 빚었던 진도군은, 마스코트 ‘진돌이’를 활용한 캐릭터 상품 개발과 함께 만화 영화 ‘백구’를 제작 중이다. 공룡 화석이 발견된 해남군은 공룡 ‘디노’를, 영광군은 백제에 불교를 전한 승려 ‘마라난타’를, 완도군은 ‘장보고’ 캐릭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캐릭터는 대부분 해당 지역과 연관이 있는 역사적인 인물이나 문학 작품의 주인공, 지역 특산물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보통 6천만∼7천만 원이 투입되는 자치단체들의 캐릭터 개발은, 지역 홍보와 재정 수입 외에도 ‘지역 이미지 통일화 사업’(CIP)을 겸해 이루어지고 있다.
캐릭터 개발과 CIP 작업을 맨 처음 시도해 올해 행정자치부가 주관하는 경영관리 부문 대상을 수상한 장성군 김흥식 군수는 “홍길동 캐릭터를 미국의 미키마우스나 일본의 드래곤처럼 키우겠다. 국내 캐릭터 시장은 5천억원에 불과하지만, 2000년대에는 2조∼3조 원 시장으로 확대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효과적인 마케팅을 병행할 경우 캐릭터 개발은 자치단체의 이미지를 널리 알리고 빈약한 재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 문제는 면밀한 대책 없이 자치단체들이 너도나도 덩달아 따라하고 있다는 것.

실제 장성군의 홍길동 캐릭터 개발이 언론에 알려진 뒤 <홍길동전> 작가 허 균의 연고지인 강릉시에서도 홍길동 캐릭터를 개발했고, 전남 구례군이 5백만원을 들여 원추리와 옥잠화 향으로 ‘노고단 향수’를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지난해 매출 1억원을 올리자 속초시와 경주시가 각각 ‘설악산’과 ‘서라벌’ 브랜드로 향수를 잇달아 개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노고단 향수를 개발한 정연권 구례군 농업기술센터 기술개발 담당은 “향수 개발은 아직까지는 수입산보다 품질이 뒤지고, 사치품으로 여겨지는 등 판로 개척이 만만치 않다”라며 개발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치단체가 개발한 캐릭터와 관광 상품이 자치단체의 재정을 살찌울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떠오를지는 속단할 수 없다. 효과적인 마케팅을 병행하지 못할 경우 돈을 벌기는커녕 자칫 예산 낭비와 전시 행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때문에 최근 자치단체의 캐릭터 개발 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오재일 교수(전남대·행정학과)는 “캐릭터 개발 붐은 지역민의 의사를 무시한 채 일부 공무원들만의 ‘튀는’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전시 행정으로 치달을 수 있다. 자치단체 재정에 도움이 되었는지 수익성을 꼼꼼히 평가해 성패에 대한 책임을 따져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