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뢰 금지...한국은 지뢰 방치?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9.03.1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간인 피해 속출…정부, 무관심·무대책 여전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현리에서 20여 년간 농사일을 해온 백춘옥씨(61)가 불구가 된 때는 지난해 8월12일이었다. 뙤약볕에서 밭일을 하던 김씨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밭둑 바로 아래 있는 개울로 세수하러 내려갔다. 홍수로 물이 불어난 개울가를 조심스럽게 걷던 백씨는 갑자기 `‘꽝’ 하는 폭음과 함께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주민들이 달려가 보니 김씨는 오른쪽 발목이 날아간 채 처참한 형태로 널부러져 있었다. 홍수에 떠내려온 지뢰를 밟았던 것이다.

사고 후 춘천 한림대 병원으로 이송되어 다리를 절단하고 두달 간 치료를 받은 백씨는 이제 생활 능력을 잃은 채 정부만 원망하고 있다. “객지로 나간 아들 내외가 돌아와 나를 보살피고 있는데 자식들 고생시키는 걸 생각하면 죽고만 싶다. 지뢰를 떠내려 보낸 군에서는 치료비를 보조해 주기는커녕 위로 전화 한 통 없다. 마을 사람이 모두들 재수 없어 생긴 일로 넘기라고 말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막말로 죽지 못해 살고 있다.”

백씨가 지뢰를 밟기 나흘 전인 지난해 8월8일에는 인천시 서어도에서 신동선씨(48)가 홍수에 떠내려온 지뢰를 밟았다. 여름 휴가차 가족과 함께 처가 인 서어도를 찾은 신씨는 산책중 빗물에 쓸려온 지뢰를 밟아 인천 길병원으로 후송되어 오른쪽 발가락 4개를 절단했다. 이 사고로 하루아침에 직장까지 잃게 된 신씨 역시 아직까지 한푼도 배상받지 못한 채 방안에 드러누워 다섯 식구의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다행히 신씨는 사고 소식이 언론에 알려진 덕분에 변호사의 도움으로 국방부에 배상 신청을 해두기는 했다. “억울한 심정은 말로 다 못한다. 군에서는 아직껏 위로 전화 한번 없는데, 배상이라도 빨리 받아서 병원비 때문에 진 빚이나 갚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이렇게 말한 신씨는 국내 언론보다 오히려 일본·독일 등 외국 언론이 자기의 처지에 관심을 갖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사고 후 일본과 독일 방송 기자들이 찾아와 그를 위로하고 사고 사연을 자세히 정리해 가더라는 것이다.

지뢰 때문에 식구를 둘이나 잃고도 하소연할 곳을 찾지 못한 채 한많은 세월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경기도 옹진군 백령면에 사는 서성모씨(66)는 85년에 아들 윤황군을, 92년에는 아내 안준단 씨를 각각 지뢰 사고로 떠나보냈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은 소를 먹이러 나갔다가 아무 표지판도 없는 풀밭에서 지뢰를 밟아 폭사했고, 아내는 이웃 주민(김진택씨 아내)과 함께 나물을 뜯으러 갔다가 역시 표지판 없는 바닷가에서 대인 지뢰를 밟아 두 사람 모두 비명에 갔다.

졸지에 두 식구를 잃고도 차마 농토를 버릴 수 없어 백령도를 뜨지 않았다는 서성모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90년대 들어서만 주민 7명이 지뢰를 밟아 6명이 즉사했는데도 군부대와 정부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노후 대책이나 세워 주기 바란다”라며 울먹였다.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안돼

이처럼 민간인 지뢰 피해자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정부는 아직껏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92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7년 동안 85명(민간인 32명, 군인 53명)이 대인 지뢰에 죽거나 다쳤다고 밝혔다. 민간인 지뢰 피해자들의 경우 지뢰 지대나 미확인 지뢰 지대에 무단으로 들어가 나물을 채취하거나 낚시·사냥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 국방부측 주장이다. 주로 본인 잘못으로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별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의 사례에서 보듯이 군부대가 지뢰 관리를 소홀히 했거나 홍수로 인해 후방에 유실된 지뢰로 말미암아 사고를 당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군 당국의 통계에서 누락되어 있다.

정부가 지뢰 피해자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대책회의·공동대표 조재국 목사)가 지난해 하반기에 실시한 일부 지역 실태 조사 결과만 보아도 극명히 드러난다. 대책회의는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두 차례 경기도와 강원도 일부 민통선 부근에 조사단을 파견했다. 이들은 경기도 옹진군과 연천군 백학면,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등지에서 50여 민간인 지뢰 피해자를 만나 사진을 찍고 면접 조사를 했다.

피해자 가운데는 국방부의 주장과 달리 표지판이 없는 곳에서 사고를 당했거나, 평생 농사를 짓던 농토에서 지뢰를 밟은 경우, 그리고 마을 근처에서 떠내려온 지뢰를 밟은 경우도 많았다. 또 1개 면에서 지뢰 피해자가 수십 명이나 되는 곳도 있었다.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이 그렇다. 이곳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민통선 안에 자리잡은 면 단위 지역으로서 30년 전 정부 시책에 따라 1천8백여 주민이 들어가 살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해안면에서만 50여 명이 대인 지뢰를 밟아 죽거나 다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민간인 대인 지뢰 피해자 실태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보니 이들에 대한 구제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 <시사저널> 취재진과 연락된 국내 지뢰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정부와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을 원망하고 있었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지뢰 피해자들은 발목이 절단되어 사실상 노동력을 상실함으로써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사회 복지 단체도, 언론도 이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민간인 지뢰 피해자들에 대해 정부와 사회가 얼마나 냉대와 무관심으로 대해 왔는지는 지난해 2월 국제 대인지뢰금지운동(ICBL) 책임자인 조디 윌리엄스 씨(97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방한해 가진 한 행사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조디 씨는 한 마을에 지뢰 피해자 7명이 몰려 살고 있는 경기도 파주시 금파리를 방문해 한국 정부와 사회 단체의 철저한 무관심에 놀라움을 표시한 뒤 즉석에서 자신이 받은 강연료를 털어 이들에게 의족을 기증했다. 당황한 파주 시청은 그제서야 이들 피해자에게 백만원씩 생계비를 들고 찾아갔다. 대인 지뢰를 철폐하고 피해자를 적극 구제하라는 국제 사회의 압력을 받고 해외 지뢰 피해자를 위한 기금 조성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힌 현실의 뒤안에서 민간인 피해자들은 이처럼 존재 자체조차 은폐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실정에 대해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사실 민간인 지뢰 피해자에게는 본인이 사고 후 3년 이내에 신고하면 배상받을 길이 열려 있다. 그러나 홍보가 제대로 안된 점을 인정한다”라고 말했다.미국 “민간인 피해자 없다”

한국의 대인 지뢰 매설 지역 면적은 무려 2억9천7백만평. 이는 여의도 면적의 3백44배에 이르는 규모이다. 주된 매설 지역은 민통선 지역으로, 최소한 백만 개 이상이 이곳에 묻혀 있다.

군사 보안을 이유로 정확한 매설 지점이 공개되지 않고 있을 뿐, 후방에도 대인 지뢰가 매설된 곳이 적지 않다. 국방부에 따르면, 전국 곳곳에 자리한 공군 기지 시설물에는 기지 방어의 취약점을 보강한다는 목적으로 기지당 평균 1천6백30여개씩 대인 지뢰를 매설해 두고 있다고 한다. 전체 숫자는 최소 10만개가 넘을 것이라는 것이 군사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그밖에도 경기도 평택·성남, 경남 양산, 부산 등이 대표적인 지뢰 매설 지역이다. 후방 지역 매설 지뢰는 민간인 거주 지역과 근접해 있는 데다 관리가 부실해 유실된 채 찾지 못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사정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정부와 미국은 `‘한국에는 민간인 지뢰 피해자가 없다’고 국제 사회에 홍보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책회의측은 지난해 실시한 일부 지역 실태 조사 결과를 국제 사회에 알리기 위해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 모니터 보고대회장에 대표를 파견했다. 아울러 오는 3월24일에는 국내에서 대인 지뢰 민간인 피해자 기자회견을 열고 보고서도 펴낼 계획이다.

국제적으로 비인도적 재래식 무기의 전형으로 꼽혀 금지 운동 대상이 되고 있는 대인 지뢰가 한반도에서 `‘당연한 무기’로 고수되는 이유는 북한 남침 억지력 논리 때문이다. 한·미 양국 정부는 대인 지뢰가 유사시 적의 행동을 지연시켜 방어 작전을 펼 시간을 벌어 준다는 점을 들어 한반도에 대인 지뢰가 불가피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재래식 대인 지뢰에 의존해 북한 남침을 억지한다는 한·미 양국 정부의 논리는 점점 궁색해지고 있다. 화학무기와 핵무기 등 대인 지뢰보다 전쟁 억지력이 더 큰 무기들도 시대 흐름에 따라 한국에서 금지되거나 철폐되었지만, 이로 인해 한반도에 전쟁 억지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서 `‘지뢰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군비 통제 협상’을 제안했던 국민회의 임복진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지뢰에 의존했던 재래전 개념의 전술은 날로 발전하는 정보 경고 체제 덕분에 군사적 효용성이 사라지고 있다. 국방부는 이제 미래전 개념에 맞는 전쟁 억지력 강화 방안을 구축하고, 국내 대인지뢰실태조사단을 발족해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세우고, 지뢰를 제거할 기초 조사에 시급히 착수해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