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컴퓨터’ 미래 자동차 지상 시승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1999.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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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모터쇼에 선보인 ‘첨단 컨셉트카’ 집중 분석
20세기 자동차가 기계공학의 꽃이라면 21세기 자동차는 정보통신 기술의 꽃이다. 지난 5월11일 서울모터쇼에 출품된 컨셉트카(concept car·신차 개발을 완료하기 전에 그 기본 개념을 담아 선보이는 차)와 부품은, 자동차가 더 이상 기계공학 제품이 아니라 정보통신 기술의 산물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컴퓨터와 통신 기술의 성과들이 적용되면서, 자동차가 움직이는 컴퓨터로 변모하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연료이다. 20세기 자동차는 가솔린이나 디젤 같은 화석 연료로 움직이지만, 서울모터쇼에 선보인 21세기 자동차는 컴퓨터처럼 전기로 움직인다. 전기 자동차는 배출 가스가 없어 환경 친화적인 제품으로 분류되는데, 환경 기준이 엄격해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2∼3년 안에 상용화할 전망이다. 포드 자동차는 핀란드에 전기 자동차 생산 라인을 설치하고 2001년까지 해마다 5천대를 생산할 예정이다. 노르웨이 자동차 전문지 <빌포라게트 애스>의 토르이바르 폴라 편집장은 “유럽의 환경 기준이 엄격해지고 있어 환경 친화적인 자동차만이 유럽 땅을 달릴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업체들도 이같은 자동차 시장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있다. 우선 현대자동차가 서울모터쇼에서 선보인 컨셉트카 FGVⅡ. 이 차는 화석 연료 자동차와 전기 자동차의 중간 단계인 하이브리드 카(hybrid car)이다. 시동을 걸 때는 가솔린이 쓰이나 주행 단계에서는 전기로 움직인다. 말하자면 과도기 형태의 차인 셈이다.추돌 사고 막는 자동주행통제시스템 나와

대우자동차가 밀레니엄관에서 선보인 DEV5-Ⅲ는 순수 전기 자동차이다. 이 차는 연료 탱크 대신 차체 밑바닥에 니켈-메탈 수소전지를 갖추고 있다. 차체는 철제 대신 알루미늄과 유리 섬유를 섞은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철제 자동차보다 30% 가량 가볍다. 전기 자동차는 가파른 길을 올라가거나 장거리를 주행할 때 힘이 달리고 동력이 빨리 떨어지기 때문에 차체를 가볍게 해야 한다.

이 전기 자동차에는 또 항법장치(내비게이션 시스템)가 설치되어 있다. 항법장치는 자동차가 있는 위치를 계산하고 전자 지도를 통해 목적지까지 가는 최적의 경로를 찾아낸다. 하지만 이 기능은 대우 오토PC라는 컴퓨터 시스템이 가진 많은 기능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대우 오토PC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인 윈도CE가 깔려 있어 자동 항법장치를 비롯해 통신·오락과 자체 진단 기능을 갖추고 있다. 휴대폰과 연결하면 인터넷 전자 우편을 주고받을 수 있고, CD뿐만 아니라 DVD롬 드라이브도 이용할 수 있다.

이렇듯 컴퓨터와 센서를 비롯한 첨단 정보 기술은 자동차의 안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독일 기계공학 업체인 마네스만의 계열사 VDO는 자동차 안전 거리를 철저하게 지킬 수 있는 자동주행통제시스템을 서울모터쇼에서 공개했다. 자동차에 장착된 센서가 앞 자동차와의 거리를 인지하고 안전 거리보다 가까이 접근했을 때는 엔진·브레이크·트랜스미션(동력전달장치)을 통제해 속도를 자동으로 줄인다. 이 장치가 널리 보급되면 안전 거리를 무시해서 발생하는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센서 기술은 승차감을 개선하는 데도 쓰인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대원강업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함께 센서 기술을 응용한 운전 좌석을 개발했다. 운전자가 운전석에 앉으면 운전자의 신체 조건을 감지해 가장 편안한 운전 자세가 나오도록 좌석 높이와 거리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이 기술은 정부가 지원하는 G7 과제였는데, 고급 차종을 중심으로 2∼3년 안에 상용화할 전망이다. 센서는 타이어 안에도 들어간다. 금호타이어가 선보인 런플렛 타이어에는 센서 기술이 적용되었다. 기존의 런플렛 타이어는 바퀴가 터져도 시속 80㎞ 이상으로 1시간 정도 달릴 수 있는 반면, 타이어가 터졌는지를 알아차리기가 힘들다는 맹점을 안고 있었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이어 안에 센서를 설치한 것이다. 센서는 타이어가 터진 사실을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차를 도난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삼영코리아가 만든 차량 도난 방지 시스템을 눈여겨볼 만하다. ‘카가드’라고 불리는 이 시스템은 도난 차량이 1㎞ 안에 있을 때 리모컨으로 도난 차량의 엔진을 겉돌게 해 그 차를 멈추게 할 수 있다. 1㎞ 이상 벗어났을 때는 무선호출망을 이용해 자동차 운행을 막을 수 있다.

날로 발전하는 전자 기술이 자동차 성능을 개선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동차가 전자제품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모터쇼는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자동차가 단순한 전자제품이 아니라 정보통신 기술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인공 지능 컴퓨터가 잇달아 선보이는 것을 감안하면, 학습 능력과 위기 대처 능력까지 갖춘 인공 지능 자동차가 나타날 날도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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