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검사는 ''떵떵'' 수사 검사는 ''깨갱''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4.01.2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이 본격 수사에 나서면서 지난해 여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양길승 향응’ 의혹 사건이 다시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양길승 전 청와대 부속실장이 검찰 수사를 받던 이원호씨, 대통령 친구 정화삼씨 등과 지난해 6월28일 키스나이트클럽에서 부적절한 술자리를 가져 파문을 일으킨 이 사건은, 현직 검사가 몰카 촬영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나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로 번졌다. 최근 김진흥 특검이 검찰 내부의 이원호씨 비호 세력과 대통령의 대선자금 유입 의혹을 캐면서 정국의 뇌관으로 등장한 이 사건은, 술자리 파동 이후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등장 인물들의 운명이 엇갈리는 등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김도훈 전 검사(37)에게 2003년은 ‘몰카 검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최악의 해였다. 이 사건으로 지난해 8월 검사 직에서 쫓겨난 그는 지금 청주지방법원 피고인석에 앉아 동료 검사였던 심 아무개 검사로부터 호된 추궁을 받고 있다. 2월부터는 서울 강남의 대통령측근비리 특검 사무소에도 수시로 불려다녀야 한다. 청주의 토호 세력인 이원호씨를 잡으려다 검찰 조직과 갈등을 빚은 김도훈씨의 패배는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김씨는 내심 화려한 재기를 꿈꾸고 있다. 서울 용산에 사는 그는 지난해 12월 민주당에 전격 입당한 뒤 1월18일 아무런 연고가 없는 안산시 단원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다. 안산 단원은 열린우리당 실세인 천정배 의원이 버티고 있을 뿐더러 김진관 전 제주지검장과 민영삼 민주당 부대변인이 민주당 공천을 신청한 지역이어서 민주당 내 예선 통과도 만만치 않다. 청주 지역에서는 김씨의 전격적인 민주당 입당이 조순형 대표의 작품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국회 법사위 소속인 조순형 대표는 지난해 국정감사 때 양길승 향응 사건과 관련해 대전고검에서 김 전 검사와 양길승·이원호·정화삼 씨에 대해 증인 신문을 벌였던 인연이 있다.
현재 대통령측근비리 특검의 최대 관심사는 이원호씨 자금이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측에 흘러들어 갔다는 주장이 사실인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이원호씨 관련 계좌에서 빠져나간 50억원의 행방을 수사했던 김도훈 전 검사는 “특검에서 밝히겠다”라며 입을 굳게 다물어 왔다. 이와 관련해 김 전 검사의 한 측근은 지난 1월15일 “대선 직후인 2002년 12월과 2003년 1월에 이원호씨 주변 계좌에서 14억원이 빠져나갔다”라며 ‘당선 축하금’ 의혹을 새롭게 제기했다. 특검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진 셈이다.

검찰 내부에 이원호씨 비호 세력이 있다고 폭로했던 김씨의 주장도 근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가 수사했던 이원호씨의 살인 교사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언도 나왔다(52~53쪽 상자 기사 참조). 김씨는 이런 분위기를 활용해 단박에 명예 회복과 국회 진출이라는 ‘인생 역전’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포승에 묶인 채 구속되었던 때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반면 김도훈 전 검사로부터 이원호씨 비호 의혹의 당사자로 거론되었거나 이원호씨와 친분을 유지했던 검사들은 하나같이 곤혹스런 처지에 빠졌다. 우선 이원호씨와 친분이 있었던 서울고검 박 아무개 검사(51)가 지난해 12월 말 사표를 냈다. 박검사는 지난해 7월3일 이원호씨와 양길승·오원배 씨의 서울 ㄹ호텔 모임에 동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도훈 전 검사는 지난해 12월9일 “박 아무개 검사가 청주지검 동료 검사를 통해 이원호씨를 선처해 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해왔다”라고 말해 박검사의 이원호씨 비호 의혹을 제기했었다.

2002∼2003년 당시 청주지검 2부 수사 지휘부도 김도훈 전 검사의 말 한마디에 따라 특검 수사를 받느냐 마느냐가 결정될 처지에 놓였다. 당시 청주지검 2부(특수·강력) 조직은 강 아무개 부장검사-윤 아무개 부부장검사-김도훈 검사 체제였다. 당시 김검사는 이원호씨 조세 포탈과 살인 교사 의혹을 수사하며 이씨 주변을 압박해 들어갔지만, 강 아무개 부장검사 등은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수사하라’고 주문해 김검사로부터 이원호씨를 비호한 당사자로 지목되었다.

현재 울산지검에 근무하는 당시 강 아무개 부장검사는 이원호씨가 변호인으로 선임한 김원치 변호사(61)와 동향인 제주도 출신이다. 이원호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원치 변호사는 대검 공안부장을 지낸 검찰 간부 출신으로, 지난해 이원호씨 수사와 관련해 청주지검 지휘부를 직접 방문해 이원호씨를 비호한다는 의혹을 샀다. 2002년 이원호씨를 수사했던 윤 아무개 부장검사(40)는 키스나이트클럽에서 이원호씨로부터 술대접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평택지청으로 자리를 옮긴 윤부장검사는 이와 관련해 “이원호씨와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술을 마신 적은 없지만 조폭 수사에 대한 첩보 수집 차원에서 키스나이트클럽에서 두 차례 친구들과 사적으로 술을 마신 사실은 있다. 술값은 내가 모두 신용카드로 결제했다”라고 밝혔다. 윤부장검사는 자신이 이원호씨와 술자리를 함께했다고 보도한 청주 지역 주간 신문 <충청리뷰>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내고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윤부장검사는 지난 1월15일 <시사저널>과 한 전화 통화에서 “이원호씨 조세포탈 수사는 2002년 말 영장 청구 준비까지 갖출 정도로 수사가 이미 턱에 닿아 있었는데, 내가 꽃동네 수사 때문에 충주로 긴급 파견되는 바람에 김도훈 검사가 맡게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이원호씨에 대한 실무 라인의 수사가 영장 청구 준비까지 갖출 정도로 깊이 이루어졌는데도 이씨를 구속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검찰 내 이원호씨 비호 의혹을 간접 확인해주는 발언이다.

청주지검 검사들뿐만 아니라 몰카 사건과 관련된 인사들의 인생 부침도 만만치 않았다. 키스나이트클럽 실제 소유주 이원호씨는 지난해 몰카 사건의 후유증으로 외동딸의 혼사까지 깨진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살인교사 혐의와 노무현 후보측에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어 언제 다시 사법 처리될지 알 수 없다. 이씨의 부인 소유인 시가 2억4천만원짜리 청주시 복대동 ㅎ아파트 102호에는 이씨 부인과 자식들이 거주하지만 몰카 사건으로 가족 모두가 주민들의 기피 대상이 되었다. 경비실 관계자는 “낮에는 인적이 없고 이씨 부인이 몰고 다니는 빨간 외제차가 새벽에만 드나든다”라고 말했다.

이씨 개인에게는 힘든 세월이었지만 나이트클럽 사업은 도리어 크게 번창했다. 청주의 ‘관광슈퍼나이트크럽 KISS’는 연말과 설 대목 때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손님이 들끓었다. 나이트클럽 종업원은 “1층 홀에 6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연말연시에 손님들로 가득찼다. 20개가 넘는 룸도 주로 20대가 단골이다”라고 자랑했다.

청주 흥덕구의 상업지구인 복대동 유흥가 한복판에 있는 키스나이트클럽은 행정수도 기대 심리에 따라 주변 땅값이 평당 1천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올랐다. 건물이 서 있는 6백평의 땅값만 어림잡아 60억원이다. 2002년 키스나이트클럽 개업 때는 내부 시설비만 100억원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트클럽 주변에는 지난해 말 10층짜리 온천사우나 건물과 모텔이 들어섰고, 나이트클럽 맞은편에는 1월 초 ‘키스’ 이름을 딴 유흥주점까지 개업해 ‘키스 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술자리 사건으로 망신살이 뻗친 양길승씨는 몰카 사건 이후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전라도 지역 사찰을 전전했다. 술자리를 기획했던 오원배씨는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이씨로부터 수시로 용돈을 받아온 것으로 드러나 청주 지역 민주당 인사들까지 기피하는 인물이 되었다.
지난해 6월 키스나이트클럽 술자리에 참석해 이미지를 구긴 노대통령 친구 정화삼씨는 현재 청주의 서울낫소 공장과 집을 오가며 은둔자처럼 산다.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측에 금전적 도움을 주었다는 의혹을 받는 정화삼씨는 “특검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