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까지 부르는 브루셀라 전염병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9.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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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쇠고기 통해 감염되는 전염병… 국내 감염 사례 확인, 정부는 ‘무대책’
유산한 송아지를 받았던 수의사와 농부는 즉각 항생제를 맞아야 했다. 그 송아지 부검에 참여했던 축산학과 교수·학생 들도 마찬가지였다. 97년 3월26∼27일 미국 캔자스 주에서는 죽은 송아지 한 마리 때문에 9명이 긴급 예방 조처를 받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죽은 송아지에서 브루셀라균이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브루셀라란 소·돼지·양·개 따위 가축이 잘 걸리는 전염병. 브루셀라병에 걸린 가축은 흔히 임신 말기 유산·조산, 태막염, 유방염, 불임 증세를 보인다.

브루셀라병 환자, 전세계에서 연간 50만명 발생

지난해 이른바 ‘브루셀라 백신 파동’이 터진 이래 국내에서도 브루셀라병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35쪽 상자 기사 참조). 브루셀라병은 본래 가축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전염되는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 현재 전세계에 인수 공통 전염병은 2백여 가지 있는데, 브루셀라병은 탄저 병·렙토스피라와 함께 소가 사람에게 옮기는 대표적인 전염병 가운데 하나이다.

그럼에도 일반인이 브루셀라병을 비교적 가볍게 보아 넘겼던 것은 ‘그것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라는 정부 당국의 큰소리 때문이었다. 지난해 엉터리 브루셀라 예방 백신을 맞은 소 만여 마리가 유산하는 와중에도 농림부는 “브루셀라병이 인체에 전염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지금까지 사람에게서 (브루셀라병이) 발병했다는 사실은 보고된 일이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주장에 의구심이 제기된 것은 최근이다. 우선 사람이 발병한 사실이 보고된 일이 없다는 농림부 주장은 ‘광복 이후 국내에서는’이라는 단서를 달았을 때만 옳다. 전세계적으로 브루셀라병 환자가 연간 50만 명 가까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국제 의학계의 통계이다. 97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오염된 식품 때문에 사망한 5세 이하 어린이가 3백만명에 이른다면서, 이들이 앓는 주요 질병으로 콜레라·대장균 감염·살모넬라증과 함께 브루셀라병을 지목했다. 국내에서도 39년 경성(서울)에 거주하던 일본인 한 사람이 브루셀라병 환자로 밝혀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대해 농림부는, 설령 브루셀라병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은 중남미·중동·아시아 지역 일부 국가처럼 개발 도상국에 국한된 문제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미국만 해도 72∼81년 브루셀라병 환자가 2천2백38명에 달했다고 권위 있는 한 학회지는 전하고 있다(<인팩트> 94년). 물론 오늘날 선진국에 브루셀라병 환자가 거의 드물다는 농림부의 주장은 사실이다. 동물에 대한 예방 접종과 유제품에 대한 적절한 살균 처리가 이루어져 선진국에서는 브루셀라병 환자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

문제는 사람·가축에게서 브루셀라병이 동시에 줄고 있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가축 브루셀라병이 해마다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55년 미국 원조로 제주도 송당목장에 들어온 소에서 처음 발생했다는 브루셀라병은 해를 거듭할수록 전국으로 퍼져 가는 추세이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브루셀라병에 걸린 소는 백 마리 미만이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들어 5백 마리를 넘어서더니 97년에는 9백12마리까지 늘었다. 발생 지역 또한 90년대 초반까지 90% 이상이 제주 지역이었던 데 비해 90년대 후반 들어서는 경기·충청·호남 지역으로 고르게 확산되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아직 브루셀라병 환자가 나타난 일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의 방역 대책이 탁월해서일까, 한국 사람이 브루셀라균에 특별히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그 어느 쪽도 아니라는 것이 김준명 교수(연세대·내과학교실)의 지적이다. 김교수는 “사람과 동물의 발병률은 비례하게 되어 있다. 브루셀라병 환자는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단지 국내 의학계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김준명 교수가 이런 확신을 갖게 된 것은 95∼97년 제주 지역 주민을 상대로 브루셀라 감염 실태를 조사하면서부터였다(34쪽 인터뷰 기사 참조). 가축 브루셀라병이 극심한 이 지역에서 주민 2천3백여 명의 혈액을 채취해 혈청 검사를 한 김교수 연구팀은 분석 결과에 깜짝 놀랐다. 전체 조사 대상자 가운데 14명이 항체 양성 반응을 나타냈기 때문이다(전체 항체 양성률 0.59%). 제주도 주민 2백 명 가운데 1명꼴로 항체 양성 반응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항체를 몸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이 언젠가 브루셀라균에 감염된 경험이 있음을 뜻한다.

김준명 교수가 국내에서 브루셀라 감염 실태를 처음 연구한 것은 아니다. 국립보건원은 86년 원인 모를 발열 환자와 목축업자·유제품 가공업자·수의사 4백25명을 상대로 혈청 검사와 배양 검사를 동시에 했다. 당시에도 혈청 검사에서 항체 양성 반응을 나타낸 사람이 14명이었다(발열 환자 5명, 동물과 접촉하는 사람 9명). 그러나 이들 모두 배양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오는 바람에 브루셀라병을 확증하는 데 실패했다.

물론 브루셀라균에 감염되었다고 모두 브루셀라병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김준명 교수는 항체 양성 반응을 보인 사람 대부분이 불현성 감염, 곧 증상을 드러내지 않는 감염 상태를 거쳤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그중 일부는 증상이 나타났는데도 모르고 지나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김교수의 지적이다.살균한 우유와 익힌 고기는 안전

브루셀라병은 흔히 감기와 혼동된다. 노련한 의사가 아니면 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 걸렸다 하면 유산을 일으키는 가축 브루셀라병과 달리 인간 브루셀라병은 열과 땀이 나고, 근육통이 생기고, 입맛이 떨어지고,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 가장 일반적 증상이다(만성피로증후군과 매우 흡사한 경우도 많다). ‘설령 인체에 감염되었다 해도 사람에게는 파상열에 가까운 감기 증상을 보이다가 곧 사멸하며, 일반적인 항생제 복용만으로 완치된다’고 농림부가 자신 만만해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학계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브루셀라병은 잘못 방치했을 경우 전신에 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곧 브루셀라균이 관절을 파고들면 관절염을 유발하고, 뇌를 파고들면 뇌막염이나 뇌염을 일으키는 식이다. 비뇨 생식기를 파고들면 고환염·부고환염·전립선염·방광염을 일으킨다. 이밖에도 브루셀라병은 심내막염·기관지염·폐렴 따위 합병증을 일으키는데, 심내막염으로 발전한 환자는 드물지만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동물과 직접 접촉하지 않더라도 식품을 통해서 브루셀라병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하대 병원 정문현 박사(내과)는 “선진국의 경우 브루셀라병 환자 대부분이 목축업자·수의사 등 동물과 접촉한 중년 남자인 데 반해, 개발 도상국에서는 어린이나 여성에게서도 브루셀라병이 많이 발생한다.이는 식품을 통해 감염되었다는 증거이다”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지중해 연안 국가나 중앙 아시아·중동을 다녀온 사람이 발열 증세를 나타내면 브루셀라병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농림부는 브루셀라균이 열에 약하므로 61℃ 이상 가열하면 쉽게 파괴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그 이상 온도에서 살균하는 우유·유제품 모두 절대 안전하며, 고기 또한 익혀 먹으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정문현 박사 또한 “살균 처리가 우수한 국내에서는 식품으로 인한 감염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목장에서 갓 짜낸 우유를 그냥 마시거나 덜 익은 고기를 먹으면 위험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현재 농림부는 ‘있을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인체 브루셀라병 조사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브루셀라 백신 파동이 터진 뒤 농림부는 전문가 37명으로 구성된 특별 대책반을 구성했다. 그러나 모니터링팀과 안전성 평가팀 2개로 구성된 특별 대책반 어디에서도 브루셀라병이 인체에 미칠 영향을 조사하고 있지는 않다.

“이번에 유산한 소들은 예방 백신(일명 RB51)을 맞고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지 브루셀라병에 걸린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농림부 축산국 관계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일관성은 있는 셈이다. 가축 브루셀라병이 늘고 있을 때에도 ‘발병한 사람이 없는데 대책을 세우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강조해 온 농림부가 브루셀라병도 아닌 백신 부작용 때문에 인체 위해성 여부를 평가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RB51 백신 맞은 소 38만 마리 감염 가능성

그런데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을 하는 곳이 있다. 미국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그곳이다. 앞서 소개한 대로 유산한 송아지와 접촉했던 사람들이 즉각 항생제를 맞은 것은 이 센터의 권고 때문이었다. 문제의 송아지는 일반 브루셀라병에 걸린 것이 아니었다. 이 송아지의 어미소는 새끼를 낳기 6개월 전 브루셀라 예방 백신(한국에서 쓰인 것과 같은 RB51 백신)을 맞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미국 농무부 규정에 따르면 다 자란 소나 임신한 소에 접종하는 RB51 백신은 송아지에 접종하는 백신에 비해 균 수가 10분이 1 가까이 적어야 한다. 그런데 임신 사실을 미처 몰랐던 수의사가 이 암소에 일반 송아지용 백신을 주사했고, 이것이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미국 농무부가 RB51 백신 사용을 허가한 것은 96년. 그로부터 2년 남짓한 기간에 32명이 미국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나 백신 제조 업체에 자기가 RB51에 노출된 사실을 알렸다. 이들은 대부분 백신 주사를 놓다가 실수로 주사 바늘에 찔렸거나, 장갑·마스크·눈 보호대 따위를 쓰지 않고 소와 접촉한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 주사 바늘에 찔린 3명은 접종 부위에 염증이 있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간헐적인 열·오한·두통·근육통 따위를 호소했다.

현재로서 이것이 RB51 때문에 나타난 부작용인지는 규명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RB51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만큼 그 위해성을 조사하고, 일반에 위험 가능성을 사전에 알리는 조처가 필요하다는 것이 미국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의 판단이다. 이 센터는 이를 위해 일반인 신고 창구도 개설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식품 문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김준명 교수는 “브루셀라에 감염된 소가 늘면 접촉에 의한 전파 경로뿐 아니라 유제품·고기를 통한 경구 감염 경로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농림부는 ‘식품에 문제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같은 주장이 국민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여론이 악화할 경우 소 38만 마리를 잃게 될 축산 농가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지난해 브루셀라 예방 백신을 맞은 소가 대략 38만 마리이다).

분명한 것은 브루셀라 백신 파동이 일어나기 이전에나 이후에나 유제품 또는 고기를 수거해 검사해 보았다는 정부 기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보건복지부 식품정책과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축산물가공처리법이 시행되면서 축산물 생산·가공·유통과 관련한 모든 권한이 농림부로 넘어갔기 때문에 (브루셀라병 같은 문제에) 손을 대기 어렵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축산물가공처리법은 식품 위생 관리 체계를 보건복지부와 농림부로 이원화한다는 비판 때문에 상정 당시부터 논란을 빚었던 법안이다. 이 법안이 정부 부처간 책임 떠넘기기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보건 행정은 투명성과 성실성을 생명으로 한다. 보건 행정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할 경우 한국은 자칫 광우병 파동을 처리하느라 약 4조6천억원이라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던 영국의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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