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동 대성공사는 탈북자 ‘감옥’
  • 김 당 기자 ()
  • 승인 1999.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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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1년간 조사·신문하며 가혹 행위… 사회 적응·직업 훈련은 미비
1월15일 자유북한인협회(회장 한창권)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4개 인권 단체가 탈북자 인권 침해 방지 및 생활 정착을 위한 공동 기자회견(〈시사저널〉 제483호 참조)을 한 것을 계기로 탈북자 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 뒤 이른바 대성공사라는 위장 명칭으로 알려진 중앙합동신문소 관계자들을 형사 고발하고, 유엔 사무총장과 국제적십자 총재 앞으로 호소문을 보냈다. 이들의 호소 내용과 요구 사항을 중심으로 탈북자 실태와 그 개선점을 알아본다.〈편집자〉

‘자유 북한인(탈북자) 인권 침해 방지 및 생활 정착을 위한 공동 기자회견’이라는 회견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탈북자 문제의 핵심 쟁점은 이들이 입국해 대성공사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겪는 인권 침해 행위와, 이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는 생활고이다.

탈북자들이 국내에 입국하는 경로는 크게 나누어 제3국을 통한 경우와 군사분계선을 통한 경우가 있다. 과거에는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귀순 용사’들이 주류였으나 지금은 ‘경제 난민’ 성격을 띤 탈북자가 더 많다. 특히 북한에 식량난이 심각해진 94년 이후 탈북자가 급증했고, 경로도 제3국을 통한 입국자가 압도적으로 늘고 있다.

그러나 제3국에서 한국행 비행기표를 쥐는 탈북자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자유북한인협회는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의 5% 정도만이 겨우 국내에 들어오는 것으로 추정한다. 대부분의 탈북자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강제 송환되거나, 신변과 생계 위협 속에서 기약 없는 도피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은 제3국에 주재하는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한국에 보내 달라고 요구하지만 극히 일부에게만 ‘망명’이 허용될 뿐이다.

천신 만고 끝에 한국행 비행기표를 손에 쥔 탈북자들은 비행기 안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감과 긴 고난 끝에 안착했다는 안도감, 그리고 새롭게 적응해야 할 사회에 대한 불안감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경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와 안도감은, 비행기 트랩을 내려 공항에서 준비된 ‘만세 삼창’과 약식 기자회견을 마치고 대성공사로 가는 버스나 승용차에 오르는 순간 깨지고 만다. 차에 오르는 순간 “이 새끼야, 왜 왔어!” “가족을 버리고 온 인간 쓰레기!” 같은 욕설이 쏟아지는 것이다.인권 단체, 유엔·국제적십자사에 호소문 보내

입국한 탈북자들은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까지 대체로 공항(항만) 도착→공항 행사(기자회견 등)→차량 이동→대성공사 도착→1단계 신분 조사(1개월)→2단계 정보 조사(5개월)→사회 배출(경찰 인계)→주거지 보호 및 정착 지원 (2년) 과정을 밟는다. 이 가운데 고급 정보를 지녔다고 판단되는 탈북자는 공항에서 곧장 국가정보원(국정원:옛 국가안전기획부)으로 연행되어, 그곳에서 상당 기간 조사를 받은 뒤 대성공사에 입소한다. 이렇게 해서 대성공사를 거쳐 간 귀순자·탈북자의 수효는 천명에 이른다. 물론 예외도 있다. 황장엽씨 같은 거물은 아예 대성공사를 거치지 않고 안가에서 조사를 받는다.

이 중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대성공사에서의 1·2단계 조사 과정이다. 지난해 12월부터 탈북자들을 상대로 실태 조사를 해온 민변 등 4개 인권 단체는 최근 유엔 사무총장과 국제적십자 총재 앞으로 보낸 호소문에서 대성공사에서 생긴 일을 이렇게 호소했다.

‘자유를 찾아 한국 땅을 밟은 탈북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심한 고문과 가혹 행위였습니다. 한국 정부는 신분을 확인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대성공사라는 일반 회사 명칭으로 위장한 감옥(jail)에 감금한 채 온갖 고문과 가혹 행위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약 6개월에서 1년 동안 이들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이런 방식으로 조사를 받게 되는데, 우리가 조사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약 80% 정도의 탈북자가 이런 고문과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고문으로 인해 어깨뼈가 빠지거나 쇄골이 부러지는 것 같은 뚜렷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적어도 4명 발견했습니다.’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대성공사라는 위장 명칭의 시설은 대통령훈령상의 국가 보안 시설이다. 따라서 정확한 소재지나 사진을 지면에 소개하지는 않지만, 사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공개된 비밀 장소’이다. 4층 건물(지하 2층을 포함하면 6층) 3개 동으로 이루어진 대성공사의 정식 명칭은 중앙합동신문소. 취조실과 탈북자들을 수용하는 침실, 그리고 지하실 독방 등이 이 건물의 주요 시설이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침실은 1인용(4평 정도)과 2인용(8평 정도) 그리고 가족 단위 방도 있다. 방안에는 장급 여관처럼 침대와 옷장·텔레비전·전화기·욕조·화장실 등을 갖추고 있지만, 여관과 다른 점은 문 밖에 잠금 장치가 되어 있어 안에서는 여닫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전화기 또한 담당 조사관과의 통화만 가능할 뿐 외부 통화는 불가능하다. 또 일반 아파트에서는 볼록거울 구멍을 통해 안에서 밖을 보게 되어 있지만 이 방문은 정반대로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있고, 방안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가 24시간 작동한다. 사실상 외부와 완벽하게 격리된 감금 시설이다.

대성공사의 시설 관리는 국방부(국군정보사) 책임이지만 사실상 국정원이 권한을 행사한다. 또 이곳은 법적으로는 96년 12월에 제정된 북한 이탈 주민 보호 및 정착 지원법(제5조 3항)에 의거한 정착 지원 시설로 볼 수 있으나 실제로는 탈북자를 신문하기 위한 시설이다. 대성공사의 보안 관리 책임자에 따르면, 이 시설은 대통령훈령으로 규정된 국가 보안 시설이기 때문에 언론의 취재나 공개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이들은 피의자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구치소처럼 변호사 접견이 허용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대성공사는 기본적으로 특수 목적의 감금 시설인 셈이다.

이 특수 목적의 감금 시설에 대한 관리 책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 이곳에서 생긴 인권 침해 행위와 관련해 비난의 표적이 되는 까닭은 국정원이 중앙합동신문소에 신문관을 파견할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국가 보안 시설에 대한 보안감사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탈북자에 대한 가장 강도 높은 신문이 진행되는 1단계 조사를 담당하는 합동신문조는 국정원·경찰청·국방정보본부·정보사·기무사 등 5개 기관으로 구성되지만, 국정원이 합동 신문 주관 기관으로서 사실상의 지휘권을 갖고 있다. 대성공사 나오면 경찰이 2년간 보호·관찰

1단계 조사의 핵심은 탈북자의 신원 사항과 탈북 동기 및 경위, 그리고 입국 경위 등을 알아내는 것이다. 국정원은 이에 대해 “합동 신문 과정에서 그 대상자가 위장 귀순한 혐의가 있는 경우 엄중한 분위기 조성이 필요할 때가 있으며, 이는 남북 분단이라는 우리의 안보 현실상 불가피한 상황이다”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그 예로, 김진모씨(60)가 독일에 광부로 파견되었다가 북한에 포섭되어 입북해 간첩 교육을 받은 뒤에 북한인을 가장한 신분으로 82년 위장 귀순했다가 합동 신문 과정에서 정체가 드러나 검거한 사례를 들었다. 또 국정원은 98년 4월 탈북자 권 아무개씨가 항만을 통해 밀입국해 서울을 거쳐 여주까지 갔다가 경찰관 검문을 받게 되자 탈북자 신분임을 밝힌 사례 등을 들어, 탈북자 규모가 커지면서 위장 귀순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보사가 주관하는 2단계 조사의 핵심은 북한의 군사 정보와 지역 및 직업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탈북자들은 1단계보다는 덜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여전히 가혹 행위가 지속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조사만 받는 것은 아니다. 틈틈이 한국 사회 및 생활에 대한 적응 교육을 받는데, 외부 인사 초청 강의와 산업 시찰 그리고 백화점 쇼핑이 대표적인 사회 적응 훈련이다. 이러한 사회 적응 교육 및 직업 훈련은 통일부가 총괄하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1·2단계 조사 과정(6개월)이 끝나면 이들은 각서를 쓰고 사회로 배출되어 경찰에 인계된다. 각서 내용은 국가 보안 시설(대성공사)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발설할 경우 재교육을 각오한다거나, 정착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찰에 인계된 뒤 거주지에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대성공사를 ‘졸업’할 때 국적과 호적을 취득한다. 탈북자들의 주민등록증을 보면 하나같이 본적이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 000번지’라고 되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대성공사의 주소지이다. 이곳은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다시 태어난 제2의 고향’이지만, 탈북자들은 흔히 하는 말로 이곳을 지날 때면 오줌을 갈기고 싶은 심정이 든다는 것이다.

대성공사를 나오면 그때부터 2년 동안 경찰이 보호·관리하는 특별 관리 기간이 기다리고 있다. 탈북자 관리 업무 또한 대성공사라는 위장 명칭처럼 ‘무궁화 착근 사업’이라는 암호명을 쓰고 있다. 사회복지사 같은 민간 전문가가 아닌 경찰이 탈북자들의 사회 적응 업무를 담당하는 것은, 이들을 기본적으로 보안 업무 차원에서 취급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안국 형사들은 원칙적으로는 24시간 시내 안내와 생활 지도, 직업 알선 등 탈북자의 모든 생활을 보호·관리하도록 되어 있다. 마음씨 좋은 경찰을 만나면 좋은 직장을 알선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정착금을 떼먹는 경관도 있다.

탈북자들에 대한 정부와 국민들의 냉담한 인식도 문제이지만, 정보 가치에 따른 정부의 차별적 보상도 이들에게 소외감과 심리적 박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홍진희씨(30·96년 입국)는 “북한에서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인민을 착취한 사람이 한국에 와서도 여전히 대우받고 보상금도 많이 받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국정원이나 기무사가 관리하는 관제 모임이 아닌 최초의 순수한 탈북자 조직(자유북한인협회)을 이끌고 있는 한창권 회장(39·94년 입국)은, 탈북자들에 대한 정부의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즉 탈북자들을 북한 정보를 끌어내기 위한 정보원(情報源) 혹은 북한을 비방하기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인도적 시각에서 보호해 달라는 것이다. 자생적인 탈북자 단체가 처음 결성되고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그동안의 ‘무궁화 착근 사업’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증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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