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의 명물 가로수 길을 살려주세요”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0.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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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확장으로 메타세쿼이아 나무 훼손 위기… 군·주민, 피해 최소화 묘안 찾기
메타세쿼이아(meta sequoia)라는 나무가 있다. 중국이 원산지인 삼나뭇과의 상록 낙엽수종인 메타세쿼이아는 속이 무르고 옹이가 많아 목재로는 경제성이 적지만, 성장 속도가 빠르고 외양이 수려해 관상용이나 가로수종으로 보급된 나무이다. 특히 국도 29호선(2차선 도로)이 지나는 전남 담양읍∼금성면 8.5㎞ 구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수령이 30년이나 되는 우람한 나무들이 양켠에서 터널을 이루어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꼽힌다.

수령 30년… 전국 최고 가로수 길로 꼽혀

담양군은 1972년부터 국도와 지방도에 메타세쿼이아를 집중해 심었다. 이 나무는 1974년에 내무부 지정 시범 가로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일찍부터 메타세쿼이아를 가로수로 보급해 가꾼 덕분에 전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 길이라는 관광 자원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95년부터 국도 29호선을 4차선으로 확장하는 도로 공사가 시작되면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의 수난이 예고되었다.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이 담양 고서면 보촌리∼담양읍 금월리 구간을 확장하면서 담양읍 금월리 일대 2.2㎞ 구간 가로수 6백8 그루를 다 베어낼 수밖에 없다고 담양군에 통보한 것이다. 2차선 가로수 길의 노폭(현재 6.2m)이 좁아서 4차선 도로 편도로도 이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벌목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담양군(군수 문경규)은 1996년 익산지방국토관리청과 협의한 끝에 가로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1백78 그루만 벌목하기로 합의했다. 담양군은 그 뒤 가로수 제거에 따른 손해배상금 명목으로 익산지방국토관리청으로부터 1억1천만원을 받았고, 이 돈은 가로수를 새로 심는 데 쓰기로 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막상 도로공사가 본격화하자 담양 군민은 물론 인근 광주 시민까지 가로수를 보존해야 한다고 나섰다. 담양군청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아름다운 관광 자원을 훼손한다’는 네티즌의 항의 메시지가 빗발쳤고, 농민회·청년회의소 등 담양 지역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지난 5월25일 ‘가로수 보호 군민연대 모임’이 조직되었다. 급기야 광주·전남 지역 환경단체들도 한 그루라도 더 살리자며 ‘담양의 명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 살리기 운동에 가세했다.

가로수 벌목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던 담양군청 건설과는 부랴부랴 공청회를 열고 담양군 의회와 가로수보호군민연대 대표자들과 협의회를 구성한 뒤 가로수 보존 계획을 세웠다. 담양군이 밝힌 가로수 보존 계획에 따르면, 현재 계획된 도로 노선을 변경해 가로수 길을 우회하는 대체 도로 4백80m를 개설하면 75 그루만 잘라내면 된다는 것이다. 담양군청 건설과 토목계 차일환 계장은 “군청은 담양의 명물인 메타세쿼이아를 한 그루라도 더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계획이 받아들여진다면 도로 공사 구간과 겹치는 2.2㎞ 가로수 길 가운데 1.8㎞를 보존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담양군은 최근 이러한 방안을 마련해 익산지방국토관리청에 건의하기로 하고, 가로수 벌목 손해배상금으로 받은 1억1천만원 중 일부를 되돌려주기로 결정했다.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은 담양군의 건의에 따라 선형 변경에 따른 기술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군청의 복안을 수용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검토해야 하지만, 480m 도로를 개설하는 데 소요될 추가 공사비 6억5천만원도 마련해야 한다. 도로 개설로 땅의 일부를 또다시 내놓아야 할 농민이 응할지도 불확실하다.

국도 29호선 확장 공사의 현장감리단 관계자는 “담양 군민과 환경단체의 주장을 검토하고 있지만 일부 구간의 가로수 제거는 불가피하다. 제거한 가로수를 다른 곳에 옮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식 비용이 한 그루당 2백만원이나 들어 현실성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가로수보호군민연대모임 이해섭 공동의장(71·담양향토문화연구회장)은 “30년 동안 자란 나무와 자연 환경의 가치를 돈으로 따져서는 안된다. 개발보다는 아름다운 환경 보존이 더 중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인근 농민들은 농사 피해 들어 벌목에 찬성

이씨에 따르면 담양∼금성 구간의 가로수 길뿐만 아니라 현재 담양읍∼수북면 구간도 국도 13호선 확장 공사 때문에 메타세쿼이아 4백 그루가 더 벌목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가로수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도 군청과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을 상대로 계속 줄다리기를 할 것 같다.

그런데 가로수 벌목을 찬성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늘이 져 농작물이 충분히 자라지 못한다고 푸념하는 농부들과, 항상 대형 교통 사고 위험에 시달리는 인근 주민이 가로수 벌목을 찬성하는 이들이다. 도로 너비가 좁아 대형 공사 트럭과 버스 들이 규정 속도인 시속 60㎞를 넘게 마주보며 달릴 경우 인도가 없어 보행자는 항상 두려움에 떤다. 자전거나 경운기도 교통 사고 위험에 시달린다. 실제로 지난 4월 가로수 길에서 승용차 운전자가 메타세쿼이아 나무에 부딪쳐 사망하기도 했다. 가로수 길 옆에 있는 논에서 작업하던 최학기씨(74)는 “농사 짓는 데도 도움이 안 되고, 조금만 부주의하면 가로수에 부딪쳐 사망하기가 다반사다. 벨 수 있으면 이번 기회에 많이 베어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수려하고 풍광 좋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 보존 여부를 놓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지만, 담양군과 주민들은 관광 자원으로서 가치를 인정해 ‘가로수 벌목 최소화’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환경과 안전과 효율을 조화시킬 수 있는 사람의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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