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이전 둘러싸고 영호남 ‘동시 잡음’
  • 朴柄出(부산)·羅權一(광주)주재 기자 ()
  • 승인 1997.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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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유치 경쟁 이어 시·도 통합 싸고 지역간 대립…경북도 이전 후보지 놓고 시끌
동쪽으로 갈까, 서쪽으로 갈까. 이도 저도 아니면 한데 합칠까. 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계기로 불거진 ‘도청 이전 경쟁’이 내년 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시·도 통합 논쟁’으로 변질되고 있다. 특히 광주·전남과 대구·경북이 그런 논란에 휩싸여 있다.

현재 광역시·도 통합과 관련해 전남 지역은 동부권인 여수·순천권과 서부권인 목포권으로 찬반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여수·순천·광양·여천 시와 곡성·고흥·구례·보성 등 동부권 주민들은 시·도 통합에 적극 찬성하고 있다. 반면 목포시와 무안·신안 등 서부권 주민들은 이미 도청 후보지로 선정된 무안군 삼향면 지역으로 도청이 들어서기를 바라며 전남도가 추진하는 통합에 극력 반대하고 있다.

광주·전남 통합 공방은 지난해 허경만 전남도지사가 자신의 선거 공약을 이행한다는 명분으로 여론조사와 공청회를 통해 광주와 목포 지역의 민심을 거스르며 광주·전남 통합론을 들고 나와 시작되었다. ‘광주·전남이 원래 역사 문화적으로 한 뿌리이며 동일 생활권인데도 중앙 정부가 86년 인위적으로 갈라놓아 호남이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 허경만 전남도지사의 통합 추진 명분이었다. 여기에 도청이 광주를 떠나 이전할 경우, 2조~3조원대로 추정되는 신도시 건설비용 조달도 어렵고 광주시의 지역 경제 또한 크게 위축되어 광주·전남 자치단체 양쪽 모두 손해를 본다는 논리를 곁들였다.

“소모적 통합 논쟁으로 許宋 세월 보내고 있다”

통합 공방과 시·도간 갈등이 절정에 달한 것은 지난해 말이었다. 전남도가 도민 외에 광주 시민까지 포함해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통합의 장점을 홍보하는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자 광주시는 <광주·전남 통합, 이래서 될 수 없습니다>라는 홍보 책자를 만들어 시민에게 배포하는 식으로 맞대응했다. ‘전남도가 추진하는 시·도 통합은 95년 도지사 선거 때 선거 전략으로 대두한 것인데 도지사의 공약만으로는 실현하기 어렵고 중앙 정부가 결정해야 할 국가 정책 사항’이라는 내용이 담긴 홍보물이었다. 전남도가 광주시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남도민은 시·도 통합에 67%가 찬성하고 23.7%가 반대했으며, 광주 시민은 48.1%가 찬성, 40%가 반대했다. 전남도로서는 긍정적인 답변을 얻은 셈이다. 그러나 광주시는 여론조사의 부정확성을 들어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광주시는 지난해 말 전남도와 홍보전을 거친 뒤로는 일단 ‘무반응,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전남도는 광주시의 이런 무대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언론과 시민단체를 통한 공청회와 함께 광주 시민과 전남 도민 전세대를 대상으로 주민 투표를 실시해 통합 여론을 도출한 뒤 정부에 관련 법 개정을 건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통합’문제는 어차피 광주시가 동의하지 않고는 실현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내년 단체장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허경만 도지사가 난감한 지경에 빠진 도청 이전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꺼낸 국면 전환용 카드로 보고 있다. 즉 전남도가 도청을 무안군 삼향 지역으로 이전할 경우 동부권 지역 주민들의 반대 여론에 직면할 것이 뻔하고, 순천·광양 등 동부권으로 이전할 경우 목포 등 서남권 주민들의 반대에 맞닥뜨리게 된다. 결국 광주·전남 통합론이 제기된 것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할 속셈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지역 언론의 반응은, 소외된 광주·전남이 소모적인 통합 논쟁으로 ‘許宋 세월’(허경만 전남도지사와 송언종 광주시장의 이름을 빗댄 풍자)만 하고 있다는 식으로 냉소적이다.

경상북도의 사정 역시 전남을 빼다박은 듯 닮았다.‘도민 정서 규합’과‘행정 구심점 확립’을 위해 추진하기 시작한 도청 이전이, 도민들을 극한 대립과 분열로 몰아넣고 행정을 표류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논점을 도청 이전에서 광역 통합으로 옮긴 전남과 달리, 경북 지역은 아직도 이전을 둘러싼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경북에서는 후보지‘0순위’를 자처하는 안동시와, 구미·포항·의성·경주·영천이 도청 이전을 놓고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경북 지역에서 도청 이전 문제가 처음 공론화한 것은 93년이다. ‘도가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아’경북도 의회가 나서서 도청이전추진특위를 구성했다. 후보지를 세 곳 추천해 본회의 표결로 한 곳을 선정한다는 것이 특위의 결정이었다. 그런데 본회의 상정은커녕 특위 내부에서조차 합의점을 찾지 못해 갑론을박을 벌여 왔다.

그러다 외부 연구기관에 용역을 의뢰한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연구기관이 자연 환경·교통 접근성·안전성 등 8개 사항을 정해 점수를 매김으로써 도내 34개(당시) 시·군의‘후보 서열’이 정해져 버린 것이다. 이전 적지로는 안동·구미·포항이 뽑혔다. 경북도가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결과를 대외비로 한 채 상위 6곳을 부동산 거래 허가 지역으로 묶자 4∼6위권에 든 경주·영천·의성 출신 도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결국 경북도 의회는 지방선거를 앞둔 95년 5월 절묘한 해법을 찾아냈다. 자신들 손으로 도청을‘남의 동네’로 넘겼다가는,‘몰표’대신‘몰매’가 돌아올 것이라는 판단으로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경북도로 넘겨 최종 선택하도록 일임한 것이다.

‘억지 춘향’이 된 이의근 경북지사는 임기 중에 이전 예정지를 확정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 계획에 대해서는 원론에서 단 한 걸음도 못 나아가고 있다. 이지사로서도 특정 지역을 이전지로 확정하면 나머지 전지역의 반발을 사 재선 가도가 자갈길로 바뀐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도 고위 관계자들은 의회가 처음부터 한 곳을 후보지로 정해 주었어야 했다며 내심 불만을 갖고 있다.

경북에서도 ‘광역 통합론’ 등장

‘뜨거운 감자’가 경북도와 의회를 오가는 사이, 도민들의 여론 역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특히 80년대 중반부터 도청 유치 운동을 벌여온 안동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다. 안동이 의회의 연구 용역 결과에서 이전 후보지 1위로 평가되었는데도 의회와 도가 다른 시·군 눈치를 보느라 ‘당연한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안동 지역 시민단체인 안동사회문제연구소 김성현 소장(44)은 이의근 지사와 도 의원 83명 전원을 직무 유기로 고발하기까지 했다.

도청 유치가 실패할 경우 이를 핵 폐기물 처리장 유치운동으로 전환하겠다는 배수진을 친 안동 시민들은, 대선 직전인 오는 10월 영남 일원의 젖줄인 안동·임하 댐을 봉쇄하는 총공세로 싸움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일찌감치 준비에 들어갔다. ‘투쟁 기금’도 4억원 이상 모였다. 동병상련 처지인 전남 목포·무안 시민단체들과 공동 투쟁을 합의한 점 역시 예사롭지 않다. 두 지역은 89년에도‘영호남 연대 투쟁’을 통해 고교 평준화 해지를 관철한 바 있다.

경북도 내에서도, 초기의 각개 약진이 이제는 북부권(안동·영주 등) 서북권(상주·점촌 등) 서남권(구미·김천 등) 동남권(포항·경주 등) 식의 지역연합 대결로 바뀌고 있다.

도청 이전 문제에 한 가지 변수는 송필각 경북도 의원(교육사회 위원장)을 중심으로 제기되기 시작한‘광역 통합론’이다. 송의원은 지난 연말 한 방송과의 대담에서 ‘원래 한 집에서 분가한 대구광역시와 경북이 합가(合家)하면 대구시의 부지난과 양 지역의 균형 발전 문제가 해소되고 엄청난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대구시 의원들도 이 의견에 공감을 표했다. 그러나 송의원은 통합 주장이 도청 이전과는 무관한 제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자칫 전남의 경우처럼 도청 이전 문제에 대한‘물타기’발언으로 비칠 것을 우려한 듯하다.

현재 경북도 내에는 각 지역이 펴낸 도청 유치 운동 책자 10여 종이 나와 있다. 저마다 도청이‘반드시’자기네 지역으로 와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것이다. 경북도청이 남의 마당(대구)을 떠나 제 집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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