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목일이 더 슬픈 나무들
  • 전남 장성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7.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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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소재 국내 대표적 조림단지, 애정 손길 끊긴 채 ‘황량’…독림가 우대·지원 절실
그곳에 들어서면 야외인데도 옆 사람의 말소리가 웅웅거리며 들려온다. 사람의 보행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찬 편백이며 삼나무들이 옆사람의 말을 이리저리로 튕겨내는 것이다.

전라남도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와 서삼면 모암리 일대 약 80만평에 펼쳐진 조림 단지. 이곳은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조림 단지 중 하나로 꼽힌다. 햇빛을 가릴 정도로 하늘 높이 뻗은 침엽수들이 사철을 가리지 않고 그득하다. 면적으로만 보아도 장성군내 사유림의 약 10%에 육박하는 규모이다. 이 곳에 들어찬 나무의 평균 높이는 20m. 이 단지에 심어진 나무들만도 줄잡아 40만 그루에 달한다. 56년부터 심기 시작했으니 40년 넘게 자란 나무들이다.

조림에 관한 한 세계적 선진국들인 호주·독일·일본 등의 관계자들이 이곳을 둘러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을 정도로 뛰어난 조림 단지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70년대와 80년대 장성군수를 지낸 사람들은 너나없이 이 조림 단지를 둘러보고 감명을 받아 조그마한 산언덕이라도 하나씩 사서 독림가(篤林家)를 자처하기도 했다.

이 조림 단지를 혼자 조성한 사람이 임종국씨(1915~1987)이다. 중졸 학력이 전부인 그는 양잠과 특용 작물 재배로 생계를 이은 전형적인 산골 농부였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별다른 재산도 없었던 평범한 농부 혼자 이 넓은 땅에 조림을 했다는 사실을 언뜻 믿기 어려워한다. 양잠과 특용 작물을 판매해 모은 전재산을 털어넣은 것은 물론 ‘미쳤다’는 비아냥을 받아가면서 친지들에게서 적지 않은 빚까지 끌어들여 나무를 심는 일에만 몰두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72년에 5·16 민족상을 받기도 했지만, 평생을 육림에 바친 이 헌신적인 독림가의 노년은 쓸쓸했다.

고 임종국씨, 단지 조성 보람 없이 빚만 잔뜩

임씨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해 조림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산림개발기금 조성 약속을 받아내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독림가로 인정받기까지 했다. 이러한 관심에 힘입어 그는 조림 사업이 공익성은 물론 경제성도 충분하리라고 판단하고 투자를 계속했으나 소득은커녕 차츰 빚에 쫓기기 시작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후에는 그나마 조림 사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마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빚만 잔뜩 떠안게 된 그는 결국 80년 이 조림 단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병을 얻은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조림에 대한 관심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비관하던 그는 이 땅을 판 직후 고혈압으로 쓰러졌고, 꼭 8년을 투병한 끝에 눈을 감았다. 자신의 이름에 있는 종(鍾)자를 ‘씨 종(種)’자로 개명할 정도로 조림 사업에 애착을 보여온 한국의 대표적인 독림가의 말년 치고는 허탈하기 이를 데 없다. 지금 이 단지에는 그가 눈을 감은 지 7년 만에 뒤늦게 군청이 나서서 세워 놓은 그의 공적비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다.

장성군은 현재 군이 벌이고 있는 북일면 문암리 일대의 영화마을 조성 사업과 연계해 이 일대에 대규모 휴양림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이 조림 단지가 임권택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문암리 금곡 마을의 그림 같은 정경을 품에 안듯 감싸고 있어, 휴양림 조성 사업이 빛을 보게 되기만 한다면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이다. 그러나 이 계획도 현 소유주와의 토지 매입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실현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독림가로 평가되는 임씨가 조성한 이 조림 단지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전국에 산재한 다른 조림 단지의 경우에도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현재 산림청장과 각 자치단체장에 의해 독림가로 지정된 사람은 3백35명이다. 그러나 이 숫자는 해마다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83년 5백71명이던 독림가 수가 10년 만인 93년에는 3백74명으로 약 35%나 줄어들었다. 국토산림계획에 적지 않이 공헌해 온 독림가 숫자가 이렇게 급격하게 줄어들자 정부에서도 개인 조림을 자극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우선 산림개발기금을 연 3% 저리로 약 30억원 독림가들에게 융자해 주고 있다. 수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최대 20년 거치 15년 상환이라는 획기적인 조건을 적용한다. 독림가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이런 유인책 덕분에 92년까지만 해도 2억원 남짓이던 개발기금 융자 실적이 93년부터 15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전남도청 김영환 산림과장은 “투자 후 소득이 발생할 때까지 회임 기간이 40년 이상이나 되는 조림 사업의 특성상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해, 임업 후계자를 지정해 우선 지원하고 재정 지원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묘목 등 현물 지원을 실시하는 등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더 큰 문제점은 그대로 남는다. 개인 조림에 도무지 경제성이 없다는 점이다. 목재의 대부분을 땔감으로 사용하던 과거와 달리 20년 이상 된 나무를 베어내도 마땅히 내다 팔 곳이 없다는 데 독림가들의 고민이 있다. 몇년 전만 해도 건설공사 현장의 비계목 등으로 통나무들이 사용되기도 했으나 얼마전부터 비계목이 철골로 대체됨에 따라 베어 낸 나무들이 팔려 나갈 곳이 없어지고 있다. 주로 남부 지방에 식재된 일본 수종인 편백의 경우는 모기향의 원료로 사용된다. 이런 성질 때문에 이 나무로 집을 지으면 모기가 모여들지 않는다 하여 최근 유행하고 있는 통나무 전원 주택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로 아직까지 조림 단지에서 간벌(間伐)해 낸 나무들을 소화할 수 있는 수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인해 간벌을 기피하는 사례도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 독림가들의 지적이다. “식목일에만 심으면 그만이라는 인식도 바꿔야”

이런 문제들 때문에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조림 사업에 대한 인식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당장의 재화 생산이라는 기능은 줄었지만 맑은 공기를 공급하고 산사태를 예방하는 공익적 기능은 점차 증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간벌 제도에 대한 국가 차원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오강인 교수(전남대·임학)는 무육(撫育) 간벌을 위한 시장 형성이 안 되어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환경 파괴 논란 등으로 외국에서 목재를 수입하기가 차츰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정부가 나서서 우선적으로 임도로를 정비·확충하는 등 국내 간벌에 대한 기반을 넓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무를 심고 가꾸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을 회복하는 일이다. 오교수는 조림지마다 최초 조림자의 이름을 비석 등에 새겨 경의를 표하는 캐나다의 예를 들며, 식목일에 아무 데나 나무 한 그루 심으면 그만이라는 인식을 버리고 묵묵히 심고 가꾸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사회 풍토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한다.

임종국씨의 장성군 조림 단지는 분명 외국인들이 견학 장소로 삼을 만큼 성공한 모범 사례이다. 그러나 평생을 바친 이 단지를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팔아 넘길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독림가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어느 수준인가를 보여준다. 선친의 뜻을 이어 조경 사업을 하고 있다는 3남 임관택씨(43)는 “부친께서 조림 사업하다가 망했다고 알려지는 것만은 막아 달라”고 기자에게 간곡한 어조로 당부했다.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독림가가 망했다면 도대체 누가 조림 사업에 뛰어들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52회 식목일을 코앞에 두고도 이런 질문에 우리 사회가 줄 수 있는 답변은 궁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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