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관 돌풍...시대가 만드는 ‘건강 스타’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7.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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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구·안현필 이어 황수관 박사 ‘신바람 건강학’ 돌풍…방송·의료계 지원도 큰 몫
요즘 헬스클럽 주인들은 그야말로 ‘신바람’이 났다. 황수관 박사(52·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건강증진센터 부소장)의 ‘신바람 건강학’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헬스클럽을 찾는 이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한 80년대 이래 수많은 건강법이 등장했다 사라져 갔다. 건강법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건강 요법·식품 등이 중심을 이룬 것이고(55쪽 상자 기사 참조), 또 하나는 개인이 자기 이름을 내걸고 전파하는 건강법이다.

개인의 이름을 내건 건강법으로 화제를 낳은 시조라면 단연 이상구 박사(54)를 꼽을 수 있다. 89년 ‘엔도르핀’‘T 임파구’ 같은 어려운 의학 용어를 전국민의 유행어로 만든 이상구 박사의 건강법은 ‘뉴 스타트(NEW START) 운동’으로 집약된다. 이 말은 건강식·운동·물·햇빛·공기·절제·휴식·믿음의 영어 머리 글자를 딴 신조어이다. 이 원칙을 지키면 T 임파구(인체 면역 체계에 중대한 역할을 하는 백혈구의 한 종류)를 활성화하는 엔도르핀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어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박사의 지론이었다.

‘스타 만들기’ 시스템의 산물?

문제는 그가 제창한 건강식이었다. 채식 위주의 식생활(그 자신은 완전 채식주의자였다)을 강조한 그의 강연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동네 슈퍼마켓마다 현미와 잡곡이 동나고 고기·유제품은 남아도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당시 언론은 이를 ‘이상구 신드롬’이라 표현했다. 단적인 예로 83∼88년 연평균 16.6% 증가세를 보이던 우유 소비량은 89년 이후 연평균 2.8% 증가세로 뚝 떨어졌다. <축산연감>(95년판)은 그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로 이상구 신드롬을 꼽고 있다.이상구 박사만큼 폭발적인 화제를 모으지는 않았지만 고정 지지층을 꾸준히 확보하고 있는 사람이 안현필씨(84)이다. 그의 인기는 서점에 가 보면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서울 교보문고의 판매 담당자는 수백 종에 이르는 건강 관련서 중 가장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책이 그의 <삼위일체 장수법>이라고 전했다. <한국일보>에 2년간 고정 연재했던 글들을 묶은 이 책은, 처음 나온 94년 이래 23쇄를 거듭하면서 스테디 셀러 자리를 굳히고 있다.

안씨는 자신의 80평생을 ‘삼위일체 인생’이라고 부른다. 젊은 시절에는 영어 학습 교재 <삼위일체>의 지은이로, 나이 들어서는 ‘삼위일체 건강법’의 창시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에 걸친 투병 체험을 토대로 정립했다는 이 건강법의 3대 요체는 제독(除毒)·자연식·운동이다. ‘독을 빼내는 유일한 방법은 단식’이라고 잘라말하는 안씨는, 아침 한끼 단식을 구체적인 실천 방법으로 제시한다.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느라 자연식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는 ‘초콩(양조 식초에 콩을 절인 것)’‘멸새콩볶음(멸치·새우·콩을 한데 볶은 것)’을 곁들여 먹으라고도 처방한다. 안씨는 자기가 개발한 이들 식품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다섯 가지 흰 것(五白:백미·밀가루·설탕·정제염·화학 조미료)의 독성을 얼마간 중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상구 박사와 안현필씨의 건강법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연식과 절제를 강조하는 점이 그것이다. ‘할아버지·할머니가 먹던 20세기 초의 식탁’으로 되돌아가라는 것이 자연식의 핵심 메시지이다. 그러나 자연식이나 절제 모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을 굶고 ‘초콩’을 항상 갖고 다니는 일이 번거롭다고 불평하는 이들에게 안현필씨는 이렇게 말한다. “의지 박약자는 어차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여기에 비한다면 황수관 박사의 신바람 건강법은 거저 먹기처럼 여겨진다. 한바탕 폭소를 터뜨린 것만으로도 에어로빅을 5분간 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것이 ‘황수관식’ 설명이다. 현미식이나 채식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골고루 맛있게 ‘아침은 일꾼처럼, 점심은 황제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먹으라는 권고가 전부이다(인터뷰 기사 참조). 이 때문에 김병후씨(연희신경정신과 원장)는 돈이 많이 들거나 실천하기 까다로운 식이요법이 대종을 이루었던 과거 건강법에 대한 대중의 반동으로 ‘황수관 돌풍’을 이해한다. 최근의 사회 현실과 이를 연결하는 분석도 있다. 정치·경제 상황이 비정상일수록 단순하고 상식적인 데서 위안을 찾고 싶어하는 집단 무의식이 발동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한 가지 빠뜨릴 수 없는 것은 황수관 돌풍의 뒤에 ‘스타 만들기’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방송계와 의료계의 이해가 맞물린 결과이다. 개인 소득 만달러 시대에는 건강·의료 문제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만큼 관련 프로그램을 전진 배치하겠다는 것이 방송계의 공식 선언이다. 최근 들어 내셔널 지오그래픽사 작품과도 견줄 만하다는 호평을 받은 5부작 초대형 다큐멘터리 <생로병사의 비밀>(KBS)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이나, 저녁 9시 메인 뉴스에 건강 관련 시리즈물을 고정 배치한 것(KBS·MBC)은 이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손쉬운 방법이 스타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자생력’을 ‘자쌩력’이라 발음하는 유쾌한 인상의 ‘경상도 싸나이’ 황수관 박사 자체가 상품 가치를 갖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를 발굴하고 키우는 것은 전적으로 방송사의 몫이다. 책을 보고 발굴한 황박사를 ‘국민 스타’로 만드는 데 성공한 SBS는 내친 김에 4월 초부터 한 달에 한 편씩 다섯 차례에 걸쳐 전편보다 다양한 형식의 ‘신바람 건강법’ 특집을 내보낼 계획이다.

의료계 또한 이 시스템에 맞물려 있다. 이에 대해 윤종율씨(한강성심병원 가정의학과)는 “개인 병원이나 종합 병원 할 것 없이 경영 타개책의 일환으로 대중 매체를 이용해 보려는 풍조가 퍼져 있다”라고 지적한다. 잇단 재벌 병원 등장과 낮은 의료보험 수가 등으로 인해 적자가 만성이 되다 보니 대중 매체를 통해 의료 기기나 ‘스타’ 의사를 선전함으로써 더 많은 손님을 끌어모으려는 유혹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건강 스타’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오히려 의사와 환자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바로잡는 가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윤종율씨의 지적이다. 불평등은 의료 지식에 대한 소비자(환자)의 무지에서 더욱 깊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부정확한 정보 남발로 이어질 때이다. 언론 감시 단체 ‘바른언론’은 최근 같은 매체 안에서도 상반되는 의학 정보를 다루는 일이 많다며, 이처럼 부정확한 정보가 오히려 국민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단체가 상반된 정보의 예로 든 것은 △운동을 하면 오래 산다/빨리 죽는다 △아침을 굶으면 제독 효과가 있다/건강을 상한다 △살을 빼려면 절식하라/많이 먹어라 등이다.

건강 관련 프로그램이 확대될수록 언론 매체로서는 스타에 의존하려는 유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제2, 제3의 이상구·황수관이 대거 등장할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스타 개개인에 의존할수록 한쪽에 치우친 정보를 전달할 위험성은 더욱 높아진다. 한 주제에 대해 여러 명의 의사를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건강 정보 프로그램의 균형을 잡아가야 한다는 지적에 방송사들이 귀를 기울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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