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땜질한 상선으로 핵폐기물 나른다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7.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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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 선박 건조하려면 비용 엄청나…사고나면 한반도 전해역 순식간에 오염
환경 전사 4명을 태운 조각배가 러시아 핵 폐기물 전용선인 TNT-27호 곁으로 다가갔다. 거대한 핵 투기함에 비하면 일엽편주나 다름없는 쪽배를 몰고서였다. 순간 러시아 수병들이 이 배를 향해 소방 호스로 거센 물줄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육중한 물줄기 앞에서도 쪽배에 탄 그린피스의 환경 전사들은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골리앗이 쫓기고 다윗이 뒤를 쫓는 형국이었다. 이 조그만 고무배에는 ‘그린피스(GREENPEACE)’라는 영문 알파벳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지난 93년 러시아 군함 TNT-27호가 동해안에 핵 폐기물을 내다버리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의 동부 기지인 파블로브스키 항을 막 떠났을 때의 광경이다. 세계 모든 언론으로 긴급 타전된 이 사진은 그린피스라는 국제 환경단체의 활동을 우리 나라는 물론 세계에 선명히 알리는 중요한 삽화가 되었다.

대만 핵 폐기물을 북한이 반입하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을 때 우리 국민도 이런 장면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실제로 환경단체들은 핵 폐기물이 북한으로 수송되기 시작되면 선박을 동원해 해상을 봉쇄하러 나서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만에 대한 비난으로 연일 여론을 들끓게 하던 대만 핵 폐기물 문제는 이제 제2 라운드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과 대만 간의 민족 감정 문제로 치닫던 초기 국면과는 좀 다른 양상이다. 대만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계획까지 나왔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정부 차원의 외교 노력이 다각적으로 전개되고 관련 전문가들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제2 라운드의 가장 큰 관심사는 북한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대만 핵 폐기물을 실어 나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핵 폐기물 선적 시기과 관련해 지난 2월 초 환경단체가 대만에서 시위할 때 ‘선적 임박설’이 흘러 나오기도 했지만 일부 언론의 호들갑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현재는 아무리 빨라야 5월 이후 아니면 8월 선적설이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대만쪽 보도도 엇갈리게 나오고 있어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

북한이 안전하게 해상으로 수송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선적 시기보다 더 중요하다. 해상 수송 중에 사고가 발생할 경우 그 피해는 일부 해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해에서 제주해협을 따라 동해로 이르러 우리나라 바다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파도가 높기로 유명한 동중국해나 제주도 남서 해역 또는 서해 중부 해역 등 어디에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오염 물질은 삽시간에 해역 전체를 덮칠 가능성이 높다(아래 그림 참조).

핵 폐기물을 안전하게 수송하려면 안전한 배가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북한이 과연 엄격한 기준이 요구되는 방사성 폐기물 수송선을 건조할 능력이 있느냐로 관심의 초점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 2월3일 대만에서 발행되는 <자유시보(自由時報)>는 대만전력공사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은 핵 폐기물 수송에 적합한 선박을 건조할 수가 없어 제3국에 맡길 수밖에 없으며, 이 제3국은 오는 8월에 이 선박을 인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북한이 수송선 건조를 요청했다는 제3국은 과연 어디일까. 우선 떠올릴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대형 전용선으로도 20회 이상 옮겨야

현재 핵 폐기물 수송용 선박을 갖고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영국·스웨덴·일본 세 나라가 고작이다. 대만도 전광 1호라는 핵 폐기물 수송선을 갖고 있으나 이를 이용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규모가 8백t급으로 공해상 수송에 필요한 2천t급에는 턱도 없이 작은 규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알려진 대만·북한간 계약 내용에도 수송과 관련한 모든 문제는 북한이 책임진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일본은 ‘사용 후 핵 연료’를 수송하기 위한 전용선 외에도 세이에이 마루라는 저준위 폐기물 전용 수송선을 지난 92년부터 운용하고 있다. 또 핵 폐기물 수송을 위해 일본 NFT(Nuclear Fuel Transport Co.)라는 별도의 회사를 설립했다. 이 선박들은 미쓰비시중공업의 고베 조선소가 건조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과연 미쓰비시중공업을 통해 건조를 요청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세이에이 마루호는 2천8백50t급으로 한 번에 최대 3천 드럼 정도를 실을 수 있는 규모이다. 이 정도의 대형 선박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최소 20회 이상 대만과 북한을 왕복해야 한다. 물론 배의 규모가 작을수록 왕복 횟수는 늘어난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오히려 북한이 선박을 별도로 건조하지 않고 기존 상선을 적당히 개조해 사용할 가능성을 강력하게 제기해 관심을 끌고 있다. 핵 폐기물 반입에 대한 대가로 북한이 대만으로부터 제공받기로 한 경제 지원의 규모와 선박 건조에 드는 비용 등을 비교할 때 이런 분석이 가능하다. 물론 이렇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위태로운 해상 수송의 위험성을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북한이 핵 폐기물 6만 드럼을 해상으로 반입하기 위해 선박을 건조할 때 예산이 얼마나 드는가를 예측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국내에서도 중·저준위 폐기물 영구 처분장을 도서 지역에 건설하기로 잠정 결정한 후부터 해상 수송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미 운송선을 건조하기 위한 기술적·경제적 검토를 마쳤기 때문이다.

이 검토 결과에 따르면 2천t급 선박을 기준으로 했을 때 비용은 총 3백27억원이 든다. 이는 국내 건조를 전제로 했을 때의 예상 금액이다. 일본에 선박 건조를 의뢰할 경우 비용은 훨씬 높아지리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게다가 국내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수송하는 선박과 달리 공해상을 오가는 수송선은 더 까다로운 기준을 갖춰야만 한다. 우선 바닥과 측면을 포함해 선체를 모두 이중으로 만들어야 한다(지난 95년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건의 경우 선박의 화물창은 다중격벽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바닥과 측면이 이중으로 되어있지 않아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또 선원과 작업자 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화물창 주위에 콘크리트나 물탱크로 따로 차폐벽을 만들어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국제해사기구(IMO)가 인정하는 이 정도의 기준을 충족하려면 결국 폐기물 6만 드럼을 수입하는 대가로 북한이 대만으로부터 받기로 한 돈 7천5백만달러(약 6백억원)의 반 이상을 선박 건조 비용으로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극심한 식량난에 허덕여 핵 폐기물을 수입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사정을 감안하면 북한이 수송선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원자력 전문가인 장인순 원자력환경기술원장도 “북한이 대만 핵 폐기물을 수송하기 위해 선박을 건조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상선을 개조해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주장했다(62쪽 인터뷰 기사 참조).

이런 위험성이 지적되는 반면 환경단체들이 애초 계획했던 대로 그린피스를 동원해 해상 저지에 나선다는 구상은 그리 쉽게 실현되지 않을 전망이다. 아니 물 건너갔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지 모른다. 우선 사용 후 핵연료에서 나오는 고준위 폐기물도 아닌 중·저준위 폐기물 수송에 그린피스가 선박까지 동원해 나설 가능성은 별로 없다. 게다가 그린피스가 해상 저지용으로 운용하는 무지개(RAINBOW)호는 항해 일정이 이미 수 개월 전에 빡빡하게 잡혀 있을 뿐더러 이 배를 이용하는 데에는 엄청난 예산이 들어간다.

지난 2월 초 그린피스 홍콩지부를 방문해 홍콩 그린피스 앤 딩월 사무총장을 만났던 환경운동연합 최예용 조직국장도 “그린피스측이 우리가 벌이는 모든 반대 시위에 최대한 동참하기로 했지만, 선박을 동원하는 문제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2월2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그린피스 본부를 방문해 해상 저지 방안을 협의했던 녹색연합 장 원 사무총장도 이런 견해에 동의한다. 장사무총장은 이렇게 전했다. “대만 핵 폐기물 대응 방안을 협의했던 그린피스측 관계자가 ‘구체적인 해상 저지 방안을 깊숙이 논의하고 있으나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환경단체는 그린피스의 배를 임대할 것이 아니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아예 해상 활동용 선박을 건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계획은 이미 설계 단계로 들어가 있다. 물론 이 계획은 대만 핵 폐기물 선적이 시작되면 출발 예정지인 대만 북동부 기륭 항에서부터 출항을 저지하는 것은 물론 운송을 강행할 경우 남해 또는 서해에서 수송선을 봉쇄하겠다는 구상까지 포함하고 있다.

대만 핵 폐기물 북한 반입을 반대하는 움직임은 국제원자력기구와 미국이 개입된 한국·대만 간의 외교적 타결로 방향을 틀어가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이런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외교 문제 이전에 생명의 문제’라는 환경단체의 지적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이 어떤 수송 방식을 택할 것인가를 특히 주시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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