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제로’ 꿈의 기술 한국 온다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7.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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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핵 폐기물 재처리 ‘첨단 기법’ 도입 추진…원전 해체 때 효용성 높아
대만이 북한에 핵 폐기물을 수출하기로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핵 폐기물 문제가 또 한번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아직 핵 폐기물을 안전하게 영구 처분하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처분장 문제는 어느 나라건 골칫거리임에 틀림없다.

최근 국내 한 민간 기업이 기존 핵 폐기물 양을 현재의 3% 수준으로 대폭 줄여 재활용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을 러시아로부터 도입하려고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옛 소련 과학연구소 산하 핵폐기물처리기술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25년간 연구해 개발한 이 기술은, 방사능에 오염된 금속성 중·저 준위 폐기물에 특수 약품을 처리해 방사능을 1차 분리한 뒤 용광로에서 용융 과정을 거쳐 잔류 방사능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세계 34개국에 특허 등록을 신청해 놓은 이 신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도 막후에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신기술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에 따르면, 러시아측과 우리측의 계약 조건에는 기술 도입뿐만 아니라 해외 수출 판권까지 포함되어 있어, 계약이 성사된다면 우리나라가 핵 폐기물 처리 기술을 해외로 수출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 사업자인 한국전력측도 이 신기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기술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민간 기업이 주선해 전력연구원 원자력 연구실 송명재 부처장 등이 러시아 현지를 직접 방문해 이 기술에 대한 현지 실험에 참여하고 공동으로 실험 보고서를 작성하기까지 했다.

한전측은 이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 신기술이 오염 방사능을 제거하는 ‘제염’ 효과와 시간에서 기존 방법보다 약 10배 정도 성능이 뛰어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실험에 참가했던 한전 연구진은 제염 후 방사능 준위가 자연 상태의 방사능 정도로 떨어졌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특히 이 금속 폐기물 재활용 기술은 원자로의 핵심 부품인 증기 발생기를 교체하거나 수명을 다한 원전을 폐기 처분할 때 나오는 각종 금속 물질을 처리하는 데 큰 효용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된다면 당장 내년부터 교체 공사에 들어갈 고리 1호기 증기 발생기 공사에 이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또한 2000년대 초반부터 줄줄이 폐기 처분될 원전의 방사능 물질을 폐기하는 데도 청신호가 켜지게 된다(63쪽 상자 기사 참조).

물론 이 신기술이 폐기 처분하는 금속 부품이나 방사능 구역에서 사용한 방호복·장갑 등 모든 중·저 준위 폐기물(사용후 핵연료에서 나오는 고준위 폐기물과는 달리 반감기가 3백년 정도 된다)에 사용할 수 있는 ‘기적의 방법’인지는 검토할 여지가 있다. 전문가들은 2차 용융 과정에서의 제염 효과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러시아측이 기술의 핵심인 제염 약품의 성분을 밝힐 리도 없기 때문에 기술 자립화와는 거리가 먼 것도 사실이다.

아직 국내에서 핵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한 기술은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전이 참여해 개발할 단계에 온 ‘유리화’ 방식은 일단 기존 임시 저장 방식의 단점을 보완할 기술로 평가되고 있다. 이 방식은, 원전에서 사용한 의류와 장갑 등 저준위 폐기물을 섭씨 1천3백도인 고온 유리에 녹인 뒤 고체로 만드는 기술이다. 한국전력 연구원 원자력연구실 박종길 선임연구원은, 이 유리화 방식이 특히 콘크리트와 달리 유리가 방사능을 흡수하는 성질을 갖기 때문에 방사능 누출 여부에 따른 시비를 상당 부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한다. 금속 폐기물 재활용 기술 ‘상용화’ 쉬워

그러나 유리화 기술 역시 방호복이나 장갑과 같은 가연성 폐기물 외에 원전의 핵심 부품인 증기발생기 등 철골 구조물은 처리할 수 없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게다가 이 기술은 이제 막 실험 단계를 마친 상태이다. 최종적으로 상용화 단계에 들어가려면 2002년이나 2003년이 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신기술은 현재 실험용 시설에서 운용을 마친 것은 물론 러시아내 원전에서 실제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다른 기술보다 손쉽게 상용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전문가의 견해가 모두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원자력환경기술원 방사선동위원소 관리팀 허영회 박사는 “부식층에 침투한 오염 물질을 닦아내는 수준이라면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방사선 물질이 침투해 오염된 금속의 원자 상태가 바뀌었을 경우이다”라고 말했다.

한전 연구진도 보고서에서 금속 표면에 기름이나 페인트가 묻어 있으면 제염 효과가 감소한다는 등의 단서를 달아 놓았다. 결국 이 러시아 신기술은 원전 해체 문제가 코 앞에 닥쳐 있는 우리 실정에서 관심과 논란을 동시에 일으키는 대상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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