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폐기물’ 수출 막을 길 없는가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7.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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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제법에 규정된 ‘안정성 충족’ 여부 집중 공략해야
외교 압력이냐 국제법이냐. 최근 대만이 북한에 핵 폐기물을 수출하려는 문제와 관련해 심각한 외교 마찰을 빚고 있는 한국과 대만이 상대방에게 취하는 태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중국, 심지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까지 대만의 처사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지만, 대만은 핵 폐기물의 국가간 이동에 관한 국제법을 근거로 들이밀면서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지난 1월29일 대만전력의 廖肇聰(료조총) 전문위원이 한국 기자단과 인터뷰하면서 밝힌 내용도 그같은 접근법의 차이를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북한이 기술적인 능력이 없다고 판명되면 계약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북한에 핵 폐기물을 이전하는 작업이 “국제법적으로나 국제 규정상 합법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북한이 기술적인 능력이 없다고’라는 말을 두고 일부에서는 대만이 폐기물 수출을 재검토할지 모른다고 확대 해석했지만, 사실 그의 말에 담긴 속뜻은 전연 달랐다. 그는 핵 폐기물의 국가간 이전에 관한 국제 법규를 들어 자기들 입장을 변호하려고 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반응이다. 사건 초기 북한을 고려해 공식 입장 표명에 미온적이던 미국 정부는 1월29일 핵 폐기물 반입이 한반도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다며 대만 정부에 관련국과의 대화에 나서라고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이튿날 중국의 沈國放 외교부 대변인도 대만의 핵 폐기물 수출이 관련국들과의 관계를 훼손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뜨리기 위한 술책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IAEA, 핵 폐기물 수출 제재 방법 없어

현재 핵 폐기물의 국가간 이동을 규정하는 것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실행 규약’이다. 이에 따르면, 국제원자력기구 회원국들은 핵 폐기물을 다른 나라로 이전할 때 국제 안전 기준을 지켜야 한다. 특히 핵 폐기물을 들여가는 나라는 국제 안전 기준에 맞게 핵 폐기물을 관리·처분할 행정·기술 능력과 통제 구조를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또 폐기물이 제3국을 경유할 때에는, 해당 국가에 알리고 사전에 동의를 구해야 한다.

따라서 이 규정은 핵 폐기물의 국가간 이전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을 위한 필요 조건을 규정한 셈이다. 게다가 이 규정은 권고적 성격에 불과해서, 회원국이 이를 어겨도 국제원자력기구가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 올해로 창설 40주년을 맞는 국제원자력기구는 94년 9월 제38차 총회 결의에 따라 ‘방사성 폐기물 관리 안전 협약안’을 마련하고 있다. 95년 2월 준비회의를 시작으로 올해 1월까지 여섯 차례 전문가 회의를 열었으며, 올해 3월부터 7차 회의와 후속 회의를 열어 9월 정기 총회 때는 협약안을 상정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내용은 △사용후 핵연료를 이 규약에 포함할 것인지 여부 △군사·방위 폐기물에도 적용할 것인지 여부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는 나라에도 핵 폐기물의 이동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 등이다.

그러나 이 협약안의 핵심 골자는 기존 실행 규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협약안이 채택되어도 핵 폐기물의 국가간 이동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관계국이 합의하고 안전 조건만 충족된다면 핵 폐기물은 자유롭게 옮길 수 있다. 구속력이 없다는 점도 기존 실행 규약과 같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대만의 핵 폐기물 수출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대응도 더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 외교적 압력과 함께 국제법적인 대응, 즉 북한·대만 간의 이번 거래가 국제법이 규정하고 있는 안전성을 충족할 수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 이를 여론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95년 현재 세계에서 가동되고 있는 원자력발전소는 4백50여 기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폐기물은 방사능 오염도에 따라 고준위 폐기물과 중·저 준위 폐기물로 나뉜다. 고준위 폐기물은 사용후 핵연료 또는 이를 자원으로 재활용하기 위해 재처리할 때 발생하는 높은 수준의 방사능 폐기물을 말한다.

반면 중·저 준위 폐기물은 글자 그대로 방사능 피폭 정도가 낮은 것, 원전의 운전원이나 보수요원이 사용했던 장갑·덧신·가운·걸레와 각종 교체 부품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반감기(위험성이 반으로 주는 데 걸리는 시간)가 30년을 넘느냐에 따라 중준위와 저준위로 나뉜다.

방사성 폐기물 처분 방식은 땅을 얕게 파서 묻는 천층처분법과, 깊은 땅속이나 해저에 동굴을 파서 보관하는 심층처분법이 있다. 스웨덴·독일은 깊은 동굴을 만들어 처분하는데, 영국·프랑스·미국·일본은 천층처분법을 채택한다.

대다수 국가는 원자력 발전소 증가에 따른 핵 폐기물 증가로 새로운 저장소를 마련해야 하는 일에 골치를 앓고 있다. 미국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지원을 약속하고 처분장을 마련했는가 하면, 후보지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저준위 폐기물은 바다에 몰래 버리는 일이 가끔씩 발생했다. 이를 막기 위해 72년 런던에서 덤핑협약이 체결되었지만, 폐기물의 해양 투기는 그후에도 은밀히 계속되었다. 94년 러시아가 동해에 핵 폐기물을 버려 한국과 일본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것도 한 예에 불과하다.

지난해 11월 국제원자력기구 회원국들은 런던에 모여 ‘런던협약 의정서 개정을 위한 특별회의’를 개최했다. 여기서 각국은 준설 물질이나 하수 침전물 등 7개 폐기물을 제외한 나머지 폐기물은 절대로 바다에 버릴 수 없다고 못박았다. 대만, 러시아·중국에도 ‘추파’ 던져

마지막으로 남는 폐기물 해결책은 다른 나라에 돈을 주고 수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방식을 통해 핵 폐기물을 처리한 예는 한 건도 없다. 일본이 고준위 핵 폐기물을 프랑스로 이전한 적은 있지만, 재처리 후 플루토늄과 나머지 핵 폐기물을 일본이 모두 돌려받았기 때문에 폐기물 수출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밖에도 핵 폐기물을 수출하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번번이 중단되고 말았다. 예컨대 대만은 3년 전부터 핵 쓰레기를 다른 나라에 수출하기 위해 중국·러시아·마셜 군도와 접촉해 왔지만, 서로 제시하는 가격이 맞지 않아 결렬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남태평양의 마셜 군도는 아시아 국가들의 핵 쓰레기 처분장 후보지로 수없이 거론되어 왔지만, 호주·뉴질랜드 등 주변 국가들의 거센 반발로 철회되었다.

또 95년 미국 웨스팅하우스사의 지원을 받는 쓰레기 처리 회사 SEG가 러시아연방내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에 저준위 핵 폐기물을 수출하는 계획을 추진했지만, 이것도 중도에 변경되었다. 따라서 핵 폐기물을 다른 나라에 내다 판 기록은 한 건도 없다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대만이 결국 국제적 압력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추악한 역사’의 선구자가 될 것인가. 핵 폐기물을 이전하면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까지 노리는 대만의 향후 태도에 국제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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