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 공화국, 해도 너무한다”
  • 김 당 기자 ()
  • 승인 1997.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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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행정 핵심에 PK 출신 배치 ‘대선 준비 끝’…반발·파열 조짐도 거세
“세상 참 많이 좋아졌습니다. 검찰총장이 헌법 소원을 제기하더니 이번에는 검사가 검찰 조직을 비판하는 글을 신문에 내지 않나. 다 처음 있는 일 아닙니까. 검찰 내부의 불만이 오죽했으면 그런 글을 썼겠습니까.”(‘민변’ ㅇ변호사)

“검찰을 PK가 지배한 지가 하루 이틀입니까? 그런데 TK 정권이 30년 걸려 한 것을 PK는 단 2년 만에 해치웠습니다. YS가 화끈하긴 합니다.”(서울지검 ㅇ검사)

“어디 검찰뿐입니까. 노태우 정권 때도 이러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때보다 한술 더 뜹니다. 욕하면서 배운다더니 딱 그짝입니다. 그러니까 ‘PK 공화국’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서울 지방경찰청 ㅇ경위)

“정말 해도해도 너무합니다. 언론에서 맨날 지적하면 뭐합니까. 입만 아프지. 너는 짖어라, 나는 내 길을 간다는 식인데.”(재경원 한 사무관)

그런 말이 나오게도 생겼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이처럼 노골적으로 특정 지역 출신이 정부 부처의 주요 자리를 독식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자리가 바뀐 주요 공직만 보아도 그렇다.

지난 연말 개각에 이은 14개 부처 차관 및 외청장 인사(12월24일)에서 김대통령의 연고지인 이른바 PK(부산·경남) 출신은 차기 장관 승진 0순위인 총리행정조정실장 등 5명이나 되었다. 백분율로 따지면 35.7%이니 3명에 1명꼴이 넘는다. 그 직전에 대통령의 경남고 후배인 박일룡 경찰청장을 안기부 1차장에 임명한 데 이은 경찰 수뇌부 인사에서도 그랬다. 안기부가 개입된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 당사자인 박씨를 국내 정보를 총괄하는 안기부 1차장에 앉히고 그 후임에 역시 부산 출신인 황용하 서울경찰청장을 승진 발령했다. “PK 출신들 공안기관 완전 점령”

그러나 무어니 무어니 해도 ‘PK 독식’의 백미는 올 들어 단행된 검찰 수뇌부 인사였다. 결과적으로 검찰의 5대 핵심 요직을 죄다 PK로 배치한 것은 누가 보기에도 집권 말기의 정권 재창출을 겨냥한 노골적인 전진 배치로 비칠 수밖에 없다.

야당이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1월21일 성명에서 “검찰을 PK가 완전 점령했다”라고 선포했다. 정대변인은 이번 인사를 이렇게 규정했다.

“건국 이래 법무부장관·검찰총장·서울지검장·대검 중수부장·대검 공안부장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휘 계통 상의 5대 핵심 요직을 모조리 특정 지역이 독식한 것은 김영삼 정권이 최초이다. 김정권의 무리한 검찰 인사는 PK의 안기부 장악, 경찰 장악에 이은 공안기관 PK 점령 계획의 완성판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에 전개되고 있는 일련의 PK 전진 배치(<표1> 참조)는 매우 노골적이다. 우선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대법원 인사에서는 퇴임한 김석수 대법관 후임으로 송진훈 부산 고법원장(대구 출신)이 지명된 데 이어, 경남고 출신인 안용득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에 임명되었다. 비록 행정부와 관계 없는 대법원 인사이기는 하지만 전국 법관의 인사를 좌우하는 법원행정처장이라는 자리를 경남고 출신이 차지했다는 점에서 주목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날치기 입법에 대한 헌법 소원 청구에서 알 수 있듯 그 권한이 어느 때보다 막중해진 헌법재판소 인사에서도 그 의도가 엿보인다. 퇴임한 김진우 재판관 후임으로 이영모 헌재 사무처장(경남 의령 출신)이 임명된 데 이어, 장관급인 사무처장 자리에는 장응수 헌재 사무차장(경남 밀양 출신)이 임명되었다. 이런 식의 구도대로라면 PK 출신은 정권이 바뀌지 않고 재임 중 대과가 없는 한 자연적으로 올라가도록 보장되어 있는 셈이다. 지난해 7월 현재 1급 이상 행정·정무 직 공무원 출신 지역별 현황을 보아도 부산·경남 출신 차관급 비율은 25.9%로 단연 눈에 띈다(<표 5> 참조). 이미 PK는 ‘허리’가 튼튼하니 당겨 쓰는 데 별로 꺼림이 없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봐줄 만했다. 법무부·검찰은 1월20일 갑작스레 고검장 및 검사장급 전보 인사를 단행했다. 김기수 검찰총장은 올 9월로 임기가 끝난다. 그때 가면 인사 폭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때 가서 대선을 코앞에 두고 조직을 흔들기에는 부담스럽다. 때문에 이번 인사는 서울지검장 등 핵심 요직을 안정되게 다져 놓은 다음에 그때 가서 고검장급 승진 인사를 단행한다는 복안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마디로 ‘대선용’이라는 것이다. 자발적인 인사라면 스스로 ‘정치 검찰’임을 드러낸 것이고, 외풍에 의한 인사라면 야당으로부터 ‘동문회 권력에 의한 동문회 정권’이라는 비난을 들어도 별로 할 말이 없게 되었다.

경남고 선후배인 안우만 법무부장관·김기수 검찰총장 체제가 들어선 95년 9월 당시 김기수 총장은 첫 기자회견에서 검찰 내부와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해서인지 “출신 지역과 대학 동문을 우대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었다. 앞서 인용한 한 검사의 빈정거림(2년 만에 화끈하게 해치운 PK의 검찰 점령)도 동문 장관­총장 체제를 겨냥한 것이었다. 검찰 조직에 크게 의존했던 노태우 정권 때 요직을 독차지한 경북고 출신과 대구·경북 출신에 빗대어 ‘성골’(경남고 졸업자)이니 ‘진골’(부산·경남 출신)이니 ‘육두품’(기타 지역 출신)이니 하는 푸념이 나온 것도 이때였다.

김기수 총장이 들어선 직후(95년 9월)에 단행한 검찰 인사와 최근 검찰 인사를 비교·분석해 보면, 이같은 푸념이 여전히 유효함을 알 수 있다. 우선 당시에 보임된 법무부·검찰 간부(검사장급 이상) 들의 출신지를 보면, 40개 자리(당시 공석인 대전고검 차장직 제외) 중에서 △부산·경남이 9명으로 수위(22.5%)를 차지했고 △대구·경북은 7명(17.5%)으로 영남세가 이미 전체의 40%(16명)을 차지한 반면에 △전통적으로 강세였던 서울 출신은 6명(15%)으로 퇴조했다. 그런데 1월20일 단행된 검사장급 이상 고위 간부 인사 결과에 따르면 총 41명 중에서 △부산·경남 출신 10명(24.4%) △대구·경북 출신 7명(17.1%) △서울 출신 6명(14.6%)으로 공석이었던 한 자리마저 경남세가 더 차지했다(<표2> 참조).

그러나 검찰 조직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위협하는 요인은 이같은 ‘양적 독식’보다 오히려 ‘질적 독식’에 있다. 이번 인사에서 검찰 내부의 불만과 야권의 표적이 유독 안강민 서울지검장(부산 출신)·최병국 대검 중수부장(경남 울산 출신)·주선회 대검 공안부장(경남 함안 출신) 3인 체제에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지검장은 연말 대선에서 최대 승부처가 될 서울과 수도권의 검찰 조직을 총지휘하는 ‘검찰의 꽃’이다. 검찰총장을 보좌하는 핵심 보직 가운데 하나인 중수부장은 고위직 공직자에 대한 사정 수사를 총지휘해 권력 누수를 방지하는 사령탑이다. 또 다른 핵심 보직인 공안부장은 대선 때 각 후보 진영의 각종 선거법 위반 사건 수사를 총지휘하는 요직이다. 이 중에서 울산중·부산고를 나온 최검사장은 동향인 안우만 장관의 울산중 후배로 안장관이 법관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또 김기수 총장의 고대 법대 후배인 주검사장은 김총장의 의중을 잘 아는 참모로 알려져 있다. 부산 출신인 안검사장 또한 PK로 분류된다. 결국 핵심 5인이 YS와 학연과 지연이라는 그물망으로 엮여 있는 셈이다.

군도 마찬가지이다. YS가 개혁을 앞세워 맨 먼저 칼을 댄 곳은 군의 사조직인 하나회였다. 하나회는 영남 출신 중심이었고 따라서 군에서 TK(대구·경북) 세력의 몰락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문제는 그 자리를 철저히 PK로 대체한 것이다. 그 결과 1월 현재 육군 대장 6명 중에서 경남 출신이 2명인 반면에 대구·경북 출신은 1명도 없다. 또 육·해·공군 3성 이상 장군의 출신지별 현황(96년 9월 현재)에 따르면, 총 44명 중에서 △부산·경남 출신 25%(11명) △대구·경북 출신 15.9%(7명)로 여전히 영남세(40.9%)가 크고, 그중 PK가 TK보다 훨씬 우세하다(<표4>참조).국방부·직할 부대 요직도 ‘독차지’

또 1월20일 국방부 제1 차관보 임명을 끝으로 종결된 국방부 및 직할 부대의 주요 국장급(소장) 이상 인사(총 18명)를 대상으로 그 출신지를 분석해 보면, △부산·경남 출신 27.8%(5명) △서울 출신 27.8%(5명) △대구·경북 출신 16.7%(3명) 등이다(<표 3> 참조). 이처럼 단순 비교를 하더라도 영남 출신(44.5%)은 다른 지역 출신에 비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장관만 서울 출신일 뿐 군의 조직·자금·정보를 관장하는 핵심 보직인 합참의장·기획관리실장·조달본부장·기무사령관은 검찰처럼 모두 PK가 차지하고 있다.

재미 있는 것은 원래 1월10일로 국방부 인사가 종결되었을 때는 국방부 국장급(소장) 이상 주요 보직에 광주·호남 출신 인사가 1명도 없었으나 1월20일 오점록 소장(육사 22기·전남 화순 출신)을 제1차관보에 임명하는 후속 인사를 했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당초 1월10일 제1, 2 차관보에 각각 정연우 예비역 소장(갑종 157기·경북 예천 출신)과 이청남 소장(육사 21기·서울 출신)을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제1 차관보를 내정한 지 10일 만에 그 자리에 오점록 소장을 임명했다. 국방부 교육정훈관을 지낸 오차관보는 지난해 11월 이후 국군의 날 행사 기획단 기획부장으로 근무해 오다 이 날 임명과 동시에 전역했다.

국방부는 내정자가 바뀐 이유를 “당초 정연우 예비역 소장이 내정됐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고사함에 따라 이날 오소장이 임명되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방부 내에서는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안 좋은 것도 모르고 내정한 것과 그 자리에 열흘 간의 공백을 두고 후임자를 임명한 것과 관련해 뭔가 말 못할 진통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그중의 하나가 ‘특정 지역 배제 구도에 따른 반발’이다. 즉 국방부 주요 보직에 호남 출신이 1명도 없는 데 대한 반발을 우려해 그 자리에 전남 출신인 오소장을 앉히는 추가 인사를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호남 출신이 비교적 많은 곳으로 알려진 경찰 조직에서도 핵심 요직과 간부급은 PK 일색이다. 박일룡 경찰청장이 안기부 1차장으로 가면서 빈 자리를 역시 PK 출신인 황용하 서울경찰청장이 승계했고, 서울경찰청장에는 경기 시흥 출신인 이필우 부산경찰청장이 승진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청장의 경우 1년 6개월 간의 부산경찰청장 재직 중 잡음 없이 업무를 수행해 부산 출신 정치권 실세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딴 것이 승진 배경이라는 구설이 뒤따랐다. 어쨌건 이로써 경찰 조직의 총수인 경찰청장(치안총감)은 물론이고 군대로 치면 군단장급에 해당하는 치안정감 보직 4개(경찰청 차장·경찰대학장·해양경찰청장·서울경찰청장) 중에서 본청 차장(유상식·경남 김해)과 해경청장(조성빈·경남 양산)은 PK가 차지하고 ‘옷 벗기 대기직’(경찰대학장)은 호남 몫으로 굳어졌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지난해 7월 김옥두 의원(국민회의)이 총경급 이상 간부들의 출신고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4백77명 중 △부산·경남 출신이 23.3%(1백11명)로 가장 많이 차지했으며 △대구·경북 출신 20.5%(98명) △서울 출신 14.9%(71명)였다. 반면에 △광주·전남 11.5% △대전·충남 8.3% △전북 6.9% 등으로 드러나 경찰 조직에서도 PK 출신이 다른 지역보다 2∼5배나 더 많은 극심한 특정 지역 편중을 보였다.

안기부의 경우 국내 정보를 총괄하는 제1차장 자리에 박일룡씨를 앉힌 것부터가 대선을 겨냥한 것이지만 벌써부터 권영해 안기부장의 후임으로 동문이 거론되는 ‘물밑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역시 복국집 사건의 장본인인 김기춘 의원과 김광일 청와대 비서실장이 그들인데, 두 사람 모두 대통령의 경남고 후배이다. 만약 김의원이 안기부장에 기용되어 복국집 사건의 ‘투 톱’이 안기부를 장악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PK 점령 계획의 완성판’이라는 정동영 대변인의 앞서의 성명은 ‘PK 정권 재창출 마스터 플랜의 최종 수정판’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공직 사회의 집단 반발을 야기해 정권 재창출 실패뿐 아니라 국가에 불행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미 유권자의 70% 이상이 정부 인사에서 영남권이 우대받고 있다고 여기고 있으며, 60% 가량은 지역간 정권교체론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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