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구속자회 이권 개입 진상을 밝힌다”
  • 광주·羅權一 주재기자 ()
  • 승인 2000.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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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자회 정치권 유착·이권 개입 사례, 전 간부가 폭로
인권과 평화운동으로 전국화·세계화하고 있는 5·18의 의미가 정작 항쟁의 도시 광주에서는 퇴색하고 있다. ‘사단법인 5·18 민중항쟁 구속자회’(구속자회)와 부상자회 등 5·18 단체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가짜 보상자를 만들어준 뒤 보상금을 나누어 가진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단체들은 5·18 사업을 추진하면서 수많은 이권에 개입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구속자회는 지난 4월 총선을 전후해 여당의 실력자 등 정치인과 광주·전남 지역 단체장의 영향력을 활용해 기념 사업을 추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거액을 모금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구속자회 전 조직국장 조승래씨(41·광주시 농성동)는 최근 <시사저널>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5·18 자유공원에 기념탑을 건립한다면서 그림 3점과 도자기 8점을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자들에게 비싸게 팔아 사업 기금을 조성하려 했다”라고 폭로했다. 조승래씨에 따르면, 구속자회는 합법적으로 사업자금 10억원대를 마련하기 위해 2002년까지 광주시 상무동 5·18 자유공원 내에 기념탑을 건립한다는 사업 계획을 전체 회원들의 동의도 거치지 않은 채 은밀히 추진했다. 구속자회는 구속자회 고문인 한화갑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허경만 전남도지사와 고재유 광주시장, 김동원 5·18 기념재단 이사장과 조아라 여사 등 유력 인사들을 찾아가 사업계획서를 내보이고 사업 추진과 관련한 동의서에 서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DJ 친필 사인 모조한 도자기 제작해 판매”

구속자회는 그 뒤 이들의 영향력을 이용해 미리 준비한 값싼 그림과 도자기를 총선이 끝난 뒤 신진 정치인들에게 웃돈을 받고 팔아 기념탑 건립 기금을 마련하려 했으나, 지난 5월10일 이무헌 이사장이 구속되는 바람에 사업 추진이 잠정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조승래씨의 폭로와 관련해 또 다른 구속자회 회원은 이름을 밝히지 않기로 하고 “구속자회 간부들이 별도 사업단을 꾸린 뒤 도예가로 활동하는 한 간부 부인의 도움을 받아 경기도 이천의 도자기 공장에서 제작한 백자 도자기를 입수해 광주로 운반한 뒤 이를 수백만원씩 받고 판매하려 했다”라고 밝혔다.

특히 조승래씨는 “이무헌 이사장에게 전달된 도자기 가운데엔 ‘새천년 김대중’이라는 대통령 서명이 든 것도 있었다”라고 말해, 이같은 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도자기 입수 경위 등을 놓고 큰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만약 구속자회가 기념탑 건립 계획에 동의한 정치권 인사들과 단체장들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대통령의 친필 사인을 흉내 낸 도자기를 제작해 판매했다면 희대의 사기극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구속자회의 기념탑 건립 사업은 중단된 상태이지만 문제의 도자기 일부는 구속자회 소속인 한 간부의 집에 은밀히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자회가 추진한 사업에 유력 정치인이 동의했다는 조승래씨의 폭로와 관련해 민주당 한화갑 의원측은 “구속자회 간부를 면담한 기억은 없으나 내용이 그렇다면 순수한 기념 사업이라는 사업계획 취지에 공감해 서명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평소에 5·18 단체들의 잦은 행사 비용 지원 요구에 시달렸다는 전라남도의 한 관계자는 “사업과 관련한 재정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사업 취지에 공감해 도지사가 서명했다”라고 말했다. 조씨의 폭로는 현재 5·18 단체 간부들의 도덕적 해이가 어느 정도인지 말해주고 있다.

조승래씨에 따르면, 구속자회는 지난 총선 때 특정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광주 남구에서 출마한 강운태 후보를 비롯해 호남의 일부 후보자들을 은밀히 도왔다는 것이다. 특히 무소속으로 출마한 강운태 후보의 경우 구속자회의 지원을 받으며 하루 25만원짜리 전세 버스를 타고 광주 남구 선거구 지역을 돌면서 <바꿔> 로고송과 플래카드를 활용한 선거운동을 한달 가까이 벌였다는 것이다. 조씨는 “이무헌 이사장이 돈이 되지 않는 일을 벌일 사람이 아니다. 당시 후보와 이사장 사이에 어떤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강운태 의원측은 “시민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낙선운동을 벌였다. 그들이 직접 후보자의 선거운동을 도운 일도 없고, 금품을 제공한 일도 없다”라고 반박했다. 1998년 민주당 광주시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당시 위성삼씨(전 구속자회 상임이사)가 금품 수수 혐의로 구속되었을 정도로 구속자회의 정치 개입은 선거 때마다 심심치 않게 도마에 올랐다. 지난 4월 총선에서도 강운태 후보측은 상대 후보인 임복진 전 의원측으로부터 5·18 단체 회원들이 도와주고 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경마장 매점 운영권 되팔아 이익금 가로채”

구속자회는 각종 이권에도 개입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조승래씨에 따르면, 구속자회 간부들은 지난 2월 말 과천의 한국마사회를 방문해 당시 오영우 회장에게 ‘마사회 광주지점 개설과 관련해 다른 시민단체들처럼 시끄럽게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이권을 요구했다. 구속자회는 그 뒤 한국마사회 광주지점(점장 김 량)이 지난 4월 개장한 경마장 내 매점 3개의 운영권과 주말 개장 때 고객을 수송할 전세 버스 5대의 계약권을 따냈다. 그리고 마사회와의 계약을 위반하고 이를 제3자에게 권리금을 받고 되팔아 이익금을 일부 간부들이 나누어 가졌다.

조승래씨는 “이무헌씨가 매점 3개의 운영권을 3천만원을 받고 5·18 관련자가 아닌 제3자에게 넘겼고, 전세 버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회원들을 위해 이익금을 써야 하는데도 자신들의 사리사욕만 챙겼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마사회 광주지점 관계자는 제3자에게 전매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밝혔다. 조씨에 따르면, 구속자회 전 이사장인 이무헌씨는 이밖에도 광주시가 5·18 자유공원 입구에 시비 1천9백만원을 들여 건축한 안내실 겸 매점 역시 건물이 완공되기도 전에 미리 돈을 받고 운영권을 5·18 관련자가 아닌 제3자에게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권 개입의 압권은 골프연습장 철거를 주장하면서 눈감아 주는 대가로 사례를 요구했다는 대목이다. 5·18 자유공원 옆에는 광주도시공사가 운영하는 ‘상무 골프연습장’이 있다. 이무헌 이사장은 이 골프연습장 철거를 밀어붙이면서 물밑에서는 광주도시공사에 손을 벌렸다는 것이다. 조씨는 “이무헌씨로부터 구속자회 회원이기도 한 광주도시공사 사장을 만나 8억원대 공사를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는 말을 들었다. 공사 금액의 5%인 4천만원을 이무헌씨가 받았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광주도시공사 정태성 사장은 “그런 요구를 받았으나 완곡히 거절했다. 돈을 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반박했다.

이같은 구속자회의 이권 개입과 구속자회 간부들의 비리를 폭로한 조승래씨는 지난 2월9일부터 구속자회 조직국장으로 근무해 오다가 6월1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5·18 정신을 빛내고 회원의 복지 증진과 생활 향상을 도모해야 할 구속자회 간부들이 이권에 개입해 자기 호주머니만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심한 회의를 느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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