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당긴 대학 개혁....‘고객 만족’ 경쟁
  • 李興煥 기자 ()
  • 승인 1995.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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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폐합·로스쿨 설치안 등 활로 개척 안간힘…교육법이 걸림돌
초봄 대학가에 ‘개혁’ 바람이 거세다. 대학마다 다투어 개혁안을 선보이고 있다. 전에 없던 일이다. 그 흔한 중·장기 발전 계획 하나 내놓지 못하는 대학은 제풀에 주저앉고 말 분위기이다. 작게는 강의 방식에서부터 크게는 대학끼리의 통폐합에 이르기까지 대학이 짜낸 생존 전략 아이디어도 가지가지다.

아주대학 경영대는 ‘졸업생 품질 보증’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일종의 애프터서비스 제도이다. 직장 근무 경력 4년 이상이 되는 졸업생들을 재교육하겠다는 것이다. 숙명여대는‘제2 창학(創學)’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졸업생 등록금 한번 더 내기’운동을 펼쳤고, 한양대는 오전 7시에 첫 강의를 시작해 오후 3시에 강의를 마치는 ‘7-3 강의제’를 도입했다. 모두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첫선을 보이는 개혁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남·계명·울산·전주·한남·호남 대학 등 충청·영남·호남 지역의 여섯 대학은 지난 3월23일 대학간 협력 체제를 이룰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교수 및 학점 교류와 자료 공동 이용은 물론, 투자도 공동으로 하는 국내 대학 사상 최초의 협약이다. 아예 대학의 통합을 추진하는 개혁안도 나와 있다. 부산대·부산수산대·한국해양대 등 부산 지역 3개 국립 대학 소속 교수들이 대학 통합에 앞장서고 있다.

유행병처럼 전국에 번지고 있는 대학 개혁은 여러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대학이 재량권을 갖고 추진중인 대학 내부의 개선에서부터 교육부가 개입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대학 구조 변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개혁안의 실행 가능성이다. 자칫 봇물처럼 쏟아져나온 개혁안이 속빈 강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교육 현장에 있는 대다수 교수는 대학의 변신 몸부림이라는 대변혁을 환영한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대학이 이제야 ‘감’을 잡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안의 알맹이, 즉 실행 순서와 가능성·개혁 범위 등에 대해서는 무척 회의적이다. ㅈ대학 ㅇ교수는 “일부 명문 사학의 일류병이 도지고 있다. 세계적인 교육기관을 만든다는 말이 그 증거다. 학생 숫자와 시설로 ‘세계적’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교육의 질과 내용이다”라고 지적한다.

정부는 뒷짐지고, 답답한 대학이 먼저 꿈틀

대학 개혁 바람의 극치는 로스쿨 설치안이다. 법학 교육 개선책의 하나로 거론된 이 로스쿨 제도는 구미식 법학 대학원을 만들어 법조 인력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로스쿨 설치안은 사법 개혁과 맞물려 있다. 단순한 대학 개혁 차원을 넘어선다.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한양대 등 몇몇 사학이 앞다투어 로스쿨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로스쿨 설치안은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는 시행할 수가 없다. 대학원설치기준령이나 대학 정원 등 교육부가 시행의 ‘칼자루’를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김신일 교수(서울대·교육학)는 개혁안 논의의 순서가 거꾸로 되었다고 지적한다. “지금은 대학이 내놓은 개혁안을 놓고 왈가왈부할 때가 아니다. 먼저 교육부 등 정부 당국이 움직여 줘야 한다. 정부가 개혁안을 제시한 후에라야 그 테두리 안에서 대학들이 움직일 수 있다.”

김교수는 대학 정원을 예로 들었다. “정원 문제를 앞으로는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정원법에 묶여 있다. 대학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로스쿨 등 법학 분야뿐만 아니라 고등 교육 전반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 교육법이 바뀌지 않는 한 개혁하는 대학은 탈법을 하는 셈이다.”

정부는 움직이지 않고, 답답한 대학은 앞서간다는 지적이다. 목 마른 사람이 먼저 우물을 파는 격이다. 일부 사학이 로스쿨 설치안 발표 경쟁을 벌인 것도 이 때문이다. ㅎ대학의 한 교수는 “먼저 김칫국(설치안)부터 마셔놓아야 나중에 떡(로스쿨)이 생겼을 때 먹을 수 있다는 발상이다. 정부는 냄새만 피우고 대학은 침만 삼키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전성연 교수(고려대·교육학)는 “대학이 인기 경쟁을 하듯 개혁 작업을 추진해서는 안되며, 실험을 거치지 않은 급작스런 개혁안은 오히려 부작용만 초래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교육 개혁은 금융실명제나 화폐 개혁이 아니다. 정부가 보안을 지키다가 어느 날 터뜨린다고 개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연세 21세기 계획’을 입안해 추진하고 있는 연세대는 3월21일 대학의 계열화 및 학제 개편 초안을 놓고 공청회를 열었다. 유사 교과목을 통폐합해 교과 과정을 교수 중심에서 학생 중심으로 개편해 운영한다는 취지에서다. 계열화는 대학 개혁의 핵심이다. 그만큼 논란이 많았고 지금도 계열화 여부에 대한 논의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학부의 학과가 지나치게 세분되어 있다는 것이 계열화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학사 과정의 학생 수를 많이 확보하기 위해 학과를 신설하다 보니 유사 학과가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학과 세분화는 교수를 확보하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그 결과 대학은 ‘비만증’에 걸렸다. 교수들의 기득권 고수도 비만증을 부채질하는 요인의 하나이다. 자신의 전문 과목을 계속 확보하려는 교수들의 이기주의 때문에 새로운 학문 분야나 교수는 기존 학과에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다. 결국 학과가 새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과 이기주의와 교수 이기주의의 결과이다.

학과 중심제를 무조건 매도할 수만은 없다. 고영석 교수(연세대·독문학)는 “학과 중심제는 과거 50여 년간 유지돼 왔다. 거기에는 전문 교육을 가능케 하고 학문의 특수성을 살리는 등의 장점도 있지만 교과목이 중복 편성되고 상호 연계성이 없다는 단점도 있다”라고 지적한다.

고려대 전성연 교수는 “계열화를 주장하는 것은 대학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지금 당장 학과 별로 강의를 해도 학생이 넘쳐 수업하기가 곤란한데 성급하게 계열화했다가는 부작용이 더 클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서울대 김신일 교수도 계열화에 부정적인 견해이다. “정원제에서는 계열화하기가 힘들다. 또 우리의 문화가 그렇지 못하다. 서양에서는 법학도 공부하고 물리학도 전공하는 다양한 경험을 존중해 주지만, 우리는 그런 식으로 공부했다가는 방향 없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는다. 현행 학과 제도에 문제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경직되어 있는 정원제를 융통성 있게 풀지 않는 한 계열화는 힘들다.”

개혁 핵심은 ‘계열화’…찬반 논란 계속

계열화 논의는 대학 자체는 물론 교수·학생 모두를 긴장시킨다. ㅈ대학은 유사 학과를 통폐합해 내년에 20개 학과를 8개 학부로 개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대학의 기획실 관계자는 “아직 교육부에 보고하지도 않았고 발표할 단계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쉬쉬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해당 학과 교수와 학생 들의 반발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한양대는 이미 지난 학기에 공대의 일부 학과를 통폐합한 바 있다. 한양대 기획조정처 부처장 오웅탁 교수는 “다소 잡음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인문계 대학을 중심으로 계열화 논의가 확산되고 있는 상태다”라고 말한다.

어쨌든 계열화는 ‘개혁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올 9~10월 안에는 대학 별로 계열화의 방향과 범위를 확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96년 입시 요강에 반영시킬 수 있다.

난립되어 있는 대학 부설 연구소를 정리하고 연구소 기능을 되찾겠다는 것도 대학 개혁의 중요한 부분이다. 16년째 교수 생활을 하는 동안 대학 보직을 여러 차례 맡았다는 ㅇ교수는, 연구소 난립이야말로 대학의 병폐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라고 지적한다. “연구소만 생겼다 하면 방 주고 전화 넣어주고 조교를 배치한다. 학생이나 학문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학과끼리 교수끼리 주도권 싸움을 한 결과이다. 연구소를 만들어 놓았으니 출판물이 있어야겠기에 너도 나도 논총이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여러 학과가 모여 연구소를 만들고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평가 받아 논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원칙이다. 대학 평가도 연구소가 난립하는 원인이다.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졸속으로 연구소 간판을 내거는 경우가 많다.”

대학도 교육부도 개혁을 외친다. 교육부가 선도하고 대학이 뒤따라가던 행태는 이제 먹혀들지 않는다. 대학이 앞서서 개혁을 외치는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교육 수요자이자 소비자인 학생의 선택권이 새로운 요인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학끼리 개혁안 발표 경쟁을 하는 것도 소비자인 학생을 우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혁의 틀은 교수 중심에서 학생 중심으로, 학교라는 공급자 중심에서 학생이라는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마침내 교육 시장에도 소비자 주권 논리가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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