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진군·곡성군의 '심청이'원조 싸움
  • 곡성·羅權一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1999.10.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 옹진군·전남 곡성군 “우리 군이 심청이 고향” 다툼
최근 인천 옹진군과 전남 곡성군이 <심청전>의 무대가 자기 고장이라고 서로 주장하며 관광 개발을 서둘러 눈길을 끌고 있다.

<심청전>을 일찍부터 ‘찜한’ 고장은 인천 광역시 옹진군이다. 옹진군(군수 조건호)은 95년 한국민속학회의 고증을 근거로 일찍부터 <심청전> 무대가 백령도와 황해도 지역이라고 주장해 왔다. 백령도 앞바다에 ‘인당수’라고 불리는 험난한 물길이 있고, 심청이 용궁에서 연꽃을 타고 인간 세계로 돌아왔다는 전설을 간직한 ‘연봉바위’가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에 있다는 점, 백령도에 ‘연화리(蓮花里)’라는 지명이 있는 점을 주요 근거로 삼았다.

90년대 중반부터 백령도를 심청의 고향이라고 알려온 옹진군은 10월21일 옹진군 백령도 진촌리에서 문화관광부장관을 초청해 ‘심청각(沈淸閣) 준공 및 심청 효행상 시상식’을 갖고 옹진군을 효사상의 본고장으로 널리 알릴 방침이다. 25억원을 들여 만든 심청각에는 심청의 일대기를 그린 그림과 함께 영화·판소리·소설 자료를 수집해 놓았는데, 옹진군은 앞으로 백령도에 심청관광단지를 조성할 예정이다.

옹진군은 심청각, 곡성군은 심청 장승 세워

반면 ‘심청전(沈淸戰)’에 뒤늦게 뛰어든 곡성군(군수 고현석)은 오산면 소재 관음 도량인 관음사(觀音寺) 사적기(事蹟記)에 <심청전>의 원형이라고 할 연기설화가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근거로 곡성이 효의 본고장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백제 시대 곡성 대흥현에 살던 가난한 장님 원량(元良)의 딸 원홍장(元洪莊)의 효심은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원량이 화주승에게 딸을 시주한 뒤 홍장이 중국에서 진(晉)나라 황후가 되었고, 홍장이 관음성상(觀音星像)을 돌배에 실어 고국 땅에 실어보냈더니 옥과땅의 성덕 처녀가 모셔다 곡성에 관음사를 창건해 원량도 개안(開眼)하게 되었다는 것이 설화의 요지다.
곡성군으로부터 학술 용역을 받아 중국을 오가며 고증 작업을 하는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양권승 박사는 “인당수 부분만 빼고는 관음사 연기설화가 <심청전>과 90% 일치한다. 서기 300년 무렵 중국 진서(晉書)에 원희(元姬;원홍장을 지칭)라는 기록이 나오는 데다, 백제와 중국이 교류한 항구였던 저장성(浙江省) 보타현(普陀縣)에 남아 있는 마을 이름도 <심청전> 내용과 맞아떨어진다”라고 밝혔다.

인당수 역시 백령도 앞바다가 아니라 전북 부안 위도면의 인수도 부근을 비롯한 네 군데 정도로 추정된다는 것. 연세대와 곡성군은 이러한 내용의 학술발표회를 11월8일 열어 백령도설을 뒤집고 곡성군이 <심청전>의 고장임을 밝힐 계획이다.

곡성군은 또 ‘심청전 개발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이달 초 이미 4천여만 원을 들여 관음사 입구 도로변에 ‘효(孝)공원’을 조성했다. 효공원에는 <심청전>에 등장하는 인물 12명의 장승과 함께 효·인륜·도덕을 소재로 한 장승 20여 기가 세워졌다. 안영식 오산면장은 “곡성이 <심청전> 무대로 밝혀질 것으로 확신한다. 곡성의 관음사를 효 사상의 전통을 전한 사찰로 널리 알려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겠다”라고 밝혔다.

지방 자치 시대로 접어들면서 자치단체들이 앞다투어 판소리 문학과 고대 소설을 관광 상품화하면서 갈등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전남 장성군과 강원도 강릉시가 <홍길동전>의 연고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다 장성군이 판정승을 거두었다. 아직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은 전북 남원시는 남원과 운봉이 각각 <춘향전>과 <흥부전>의 무대임을 널리 알려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세기 말에 ‘환생’한 심청은 백령도에 머무를 것인가, 곡성 관음사로 발길을 돌릴 것인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