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수십억대 '토지 비리'전모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7.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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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주민 ‘소유권 회복’ 국회 청원…<시사저널>, 토지대장 변조 혐의 ‘포착’
인천광역시 각 구청이 관리하고 있는 관내 토지·임야 대장 중 일부가 위조·변조되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인천시 남구 주안4동에 사는 함인홍씨(53)는 지난 11월4일 ‘인천시 관계공무원의 토지 대장 등 위조사건 진상 규명과 토지소유권 회복을 위한 청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민회의 조찬형 의원이 소개한 이 청원서에 따르면, 인천시가 67년께 경인고속도로 개설 과정에서 인천시 북구 석남동 산 88번지 일대 토지에 대한 구획정리사업을 진행하던 중 68년께 사업소 건물에 화재가 나 토지 대장 등 관계 서류가 모두 불탔다고 한다. 이후 인천시는 토지 대장을 재작성하는 과정에서 함재일씨(청원인의 선친) 소유 토지 일부를 타인 명의로 작성하고 등기를 냈다는 것이다. 그러다 88년께 함재일씨가 사망하여 상속자인 함인홍씨가 인천시청에 환지토지(석남동 산 88-2번지 일대 2만4천여 평)에 대한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했으나 인천시는 이 땅이 국가 소유라면서 등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 후 함씨는 10년 동안 관계 공무원이 토지·임야 대장을 위조한 사실을 밝혀내고 소유권 회복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직까지 어디서도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국회가 나서서 인천시 토지·임야 관련 서류 위·변조 진상을 규명해 달라는 것이 함씨의 청원 요지이다. 함인홍씨는 “처음에는 나 혼자만 피해를 본 줄 알았는데 조사하다 보니 토지 서류 위·변조가 한두 군데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발견했다. 내 문제만 해결하자면 행정 소송과 민사 소송을 하면 되지만 피해자들을 방치해서는 안되겠다 싶어 국회에 청원하기로 했다”라고 말한다.

땅 주인도 모르게 등기 이전

함인홍씨가 주장하는 인천시 공무원의 토지 대장 위·변조 문제는 정밀 조사가 이루어져야만 진위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함씨의 청원과 별도로 <시사저널>이 지난 2개월간 자체 추적한 바에 따르면, 인천시의 지적공부 작성·보관에 커다란 허점이 있음이 드러났다. 우선 현재 인천시 각 구청이 보관하고 있는, 일제 시대에 작성되었다는 토지 및 임야 대장이 실제로는 70년대 전후에 작성된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전국의 모든 토지와 임야는 일제 시대인 12년 토지조사령, 18년 임야조사령에 의해 측량된 후 일제히 지적공부가 제작되었다. 이때 작성된 토지·임야 원도와 대장(구대장)은 민법상 토지소유권을 따지는 중요한 잣대로 활용된다. 그런데 인천시 각 구청이 보관하고 있는 상당수 토지·임야 대장에는 광복 후 새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임야 대장의 경우 최초 등록(사정) 당시 소유자가 ‘국(國)’으로 표기된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지적 관계 전문가들은 토지 대장에 ‘국’을 표시한 것은 48년 정부 수립 후 공포된 ‘귀속 재산 처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른 것이므로 일제 때의 최초 사정 난에 ‘국’자가 표기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인천시의 토지·임야 대장은 총독부 관보에 나타난 조사 일시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령 현재 인천시 서구 석남동 103번지(옛 경기도 부천군 서곶면 번작리 331번지)의 경우 서구청이 보관한 일제때 토지 대장에는 최초 사정 일자가 명치 43년(1910년) 8월25일로 적혀 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관보 제720호 365쪽 ‘임시토지조사국공시 제12호’에 따르면 부천군 서곶면 번작리 사정 날짜는 14년 12월25일이다. 실제 토지 조사가 실시되기 4년여 전에 이미 이 지역 토지 대장이 만들어진 꼴이다.

인천시 서구청에 보관된 임야 대장의 경우 전국에 통일된 양식으로 비치된 일제 때의 서류 양식과 달라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총독부가 통일한 대장 양식은 첫 칸에만 ‘대정(大正)’이 적혀 있고, 나머지 토지 소유권 변동을 알려주는 칸들에는 월·일만 표기되어 있는데 인천지역 대장에는 모든 칸에 ‘대정’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의혹은 대장 형식에 그치지 않는다. 인천시(서구) 토지·임야 대장 내용 중 소유권 변동 내용을 임의로 써넣은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표적인 예가 인천시 서구 가정동 120-1, 신현동 210번지 일대 21만여 평이다. 이곳은 ‘대정 14년(1925년) 2월6일 답(畓)’으로 최초 사정했다고 토지 대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25년에 이 땅은 바다였다. 이같은 사실은 이 일대 매립사업을 26년에 허가해 31년에 끝냈다는 조선총독부 관보(제879호)에 의해 밝혀졌다. 총무처 문서기록보존소에 보관된 이 서류에 의하면, 31년 매립이 완료된 뒤 측량이나 분할을 한 사실이 없다. 지번도 부여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인천시는 이 지역이 25년에 지번이 부여된 밭이었고, 37년에 번지를 분할한 것으로 토지 대장에 올려두었다.

그 원인을 추적한 결과 인천시가 토지 대장을 변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증거 서류가 나왔다. 인천시가 보관한 자료 중 55년 5월에 작성한 ‘토지이동결의 서철’이라는 공문서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55년에 인천시가 이곳 매립지에 대한 분할이동지 조서를 만들면서 측량 도면도 첨부하지 않고 최초로 지번을 분할한 것이 드러난다. 결국 37년에 분할된 것으로 기재된 토지 대장은 변조된 것이라는 의혹을 피할 길이 없는 셈이다.
작성 시기 불분명한 토지대장 많아

<시사저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그밖에도 인천시 토지 대장 작성에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인천시가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에 넘긴 임야원도에 ‘인천직할시’와 ‘대정 7년 2월15일’이 같이 인쇄된 서류도 있다(부천군 서곶면 고작리 산 88번지 임야원도). 임야원도란 최초 사정 당시 측량한 도면인데, 이는 결국 일제 때 인천직할시라고 표기했다는 뜻이 된다. 또 인천시가 일제 때 작성되었다고 주장하는 토지 대장의 최초 기록부터 70년대 신토지 대장(카드)에 이르기까지 소유자 이름과 소유권 변동 사항 등이 동일인의 필체임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지번도 나타난다.

이같은 의혹에 대해 인천시청 지적과측은 “광복 후 다시 만든 것은 아니라고 본다. 6·25 때 인천지역 토지 대장이 불탄 일도 없다”라고 밝혔다. 사정 당시 ‘국’으로 소유권이 표시된 토지 대장에 대해서는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연구해 보겠다’라고 얼버무렸다.

인천시 도시계획 사업의 문제점이 집중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과 서구 가정동 일대이다. 경인고속도로 4공구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로 인천시가 개발해온 청천동(산 49번지 일대). 가정동(산 546번지 일대) 일대 6만여 평은 풍치지구인데도 현재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문제는 원래 임야였던 이곳 땅이 앞서와 같은 방식으로 국유지(보사부·재무부·산림청)로 등재된 후 90년대 들어 대거 민간에 불하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국유지 관리청은 그런 토지를 소유한 적도 매각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곳인 청천동 산 49번지 일대 3046㎡이다. 이 땅은 인천시가 토지 대장에 61년부터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소유로 표시해 두고 등기 상에는 재무부로 등기를 했다. 그 후 이 땅은 재무부가 91년 11월 노재호라는 인물을 내세워 (주)남성건설에 매각한 것으로 나타난다. 서류상 매각 당시 입회인으로 서명 날인한 김 아무개 변호사에게 그 경위를 확인한 결과 “나는 그때 가지도 않았고, 내 인장도 위조된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석남동 산 88-2번지의 경우 임야 대장에는 78년 10월10일 산림청 소유로 기재해 두고 등기에도 산림청으로 소유권을 보존시켜 두었으나 실제 산림청에서는 그런 재산을 관리한 적도, 처분한 일도 없다고 밝혔다.

이같은 편법은 이 땅을 개발한 과정에서도 발견된다. 인천시가 이 일대를 구획정리사업지구로 지정한 때는 토지 대장에 83년으로 나타난다. 그때부터 임야가 대지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등기부에는 91년 11월에야 비로소 ‘농지 개량에 의한 환지’로 이 일대 임야에 대한 용도 변경이 허용되었다. 인천시는 도시계획법상 개발이 불가능한 곳을 농지 개량이라는 편법을 써서 등기한 뒤 불하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지었던 것이다.

이같은 문제에 대해 인천시 시설계획과 구획정리계 관계자는 “도시구획정리지구로 등기를 신청하면 법원이 잘 안받아들이니까 농지 개량으로 신청한 것이다. 우리는 도시구획정리지구로 등기 촉탁을 했지만 법원에서 농지 개량이라고 쓴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할 북인천 등기소의 한 관계자는 “행정관서가 보내오는 등기 촉탁 내용을 법원이 임의로 바꾸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라고 일축했다.

문제의 고속 4공구 지역 임야에 대해서는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에 임야조사부가 비치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의문으로 남는다. 인천시는 모든 지역의 토지·임야 조사부를 총무처에 보냈지만 유독 이곳 석남동 임야조사부만 누락시킨 것이다. 따라서 석남동 일대 도시구획정리 사업은 누가 주체가 되어 해당 정부 부처도 모르는 국유지로 둔갑시킨 뒤 매각했는지, 그리고 그 대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개발 이익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당시 이 지역 등기를 담당했던 인천시 도시정비과 등기 촉탁 공무원 이태세씨가 현재 잠적 중이라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인천지검 특수부는 현재 인천시 남동구 구월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의 환지청산금 횡령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데, 이 비리에도 이태세씨가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박재권 검사는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의 환지 업무 자체가 원칙 없이 공무원 재량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많다. 인천시가 80년대 이후 실시한 각종 토지구획정리사업 비리 관련 공무원들이 잠적한 데다 공소 시효가 걸려 있어 애로가 많다. 때문에 현재는 환지 확정 상태에서 권리면적 이상을 받은 사람이 그 차액을 납부하는 과정에서 공무원이 횡령한 사건만 수사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태세씨를 비롯한 관련 공무원 10여 명이 모두 휴가를 떠나거나 사표를 내고 잠적해 수사 진척이 안되고 있다는 것이다.
토지구획사업, 공무원 재량 커 비리 온상

인천시는 80년 이후 총 22개 지역 1천3백만 평에 해당하는 구획정리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들 사업은 바로 이같은 공무원 비리 구조를 온존시킨 채 진행되어 왔다.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같은 인천시의 지적공부 관리와 토지구획정리사업 과정에서 재산 피해를 보았다고 호소하는 시민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국회에 청원서를 낸 함인홍씨가 대표적인 예이다.

함씨 외에도 최근에 피해를 주장하는 시민이 행정 심판을 거친 뒤 행정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인천시 서구 심곡동에 사는 고봉규씨(66)는 인천시의 ‘불법적인’ 지적 행정으로 사유지 수만 평을 빼앗겼다고 주장한다. 현재 고씨가 인천시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준비하는 땅은 서구 석남동 331번지 일대 3만여 평이다. 인천시가 보관한 토지 대장에는 고봉규씨가 이 토지를 61년 5월9일 석남동 358번지에 주소를 둔 주창복·방재인 씨에게 매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해 고씨는 “땅문서를 가진 조부님(고춘길)이 51년 폭격으로 작고하셔서 평생 그 땅이 내가 상속 받을 곳인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남에게 팔았다니 기가 막힌 일이다”라고 말한다.

취재진이 석남동사무소에 확인한 결과 고씨로부터 땅을 샀다는 주창복·방재인 씨는 해당 번지에는 물론 석남동 어디에도 거주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더구나 인천시는 토지 대장에 51년에 사망 신고된 고봉규씨의 조부 고춘길씨가 59년 12월 토지 분할 신청을 한 것으로 기록해 두었다. 분할 신청 접수 때 필수 자료인 인감증명·호적등본·측량도면 중 어느 것도 첨부되지 않은 상태였다. 고씨는 상속자인 자신이 땅 소재지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지적 담당 공무원들이 이미 사망한 조부를 내세워 분할 조서를 꾸민 뒤 마치 상속인이 매도한 것처럼 위조한 대장을 만들어 처분하는 바람에 피해를 보았다며 인천시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래저래 인천시의 토지 관리 의혹은 ‘위조 진상 규명’을 피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인천시 관내 지적 업무에만 30년 가까이 종사해 왔다는 인천시청 지적과의 한 관계자는 “일제 때 토지 대장이 광복 후 만들어진 것이냐 아니냐는 사실은 확인해줄 수 없다. 다만 인천시로서는 위·변조 사실이 없다는 점만 공식으로 밝힐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말만으로 곳곳에서 제기되는 의혹에서 벗어나기에는 어딘지 궁색해 보인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인천시 관내 토지·임야 대장(구대장)들에만도 어느 모로 보나 결코 일제 때 작성되었다고 볼 수 없는 증거 서류들과 공문서가 수두룩하다. 물론 광복 후 작성된 사실이 드러난다고 해서 인천시의 토지·임야 대장이 위·변조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인천시로서는 재작성해야 할 사유가 있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천시는 광복 후 재작성해야 했던 사유를 설명하고, 재작성 근거 서류인 원래의 토지·임야 대장을 공개하면 그만이다. 그 과정에서 과거 일부 공무원의 비리가 발견된다면 그 짐은 현재의 인천시가 털어내야 한다. 그 길만이 인천시가 비리 의혹을 떨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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