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가족 11명,제3국 도피 생활 300일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7.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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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7월 탈출, 망명 신청 거부당해 유랑… 북한 ‘체포조’에 몰살될 뻔
“중국으로 건너오면 자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 데도 나갈 수 없고 답답해요. 하루빨리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남한으로 우리를 보내주세요.”

화면 속의 어린이는 천진난만했다. 어른들이 연신 한숨을 내쉬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서로 장난을 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망울은 어른들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청와대에 탄원, 후속 조처 ‘캄캄’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북한을 탈출한 다섯 가족 11명이 제3국에서 10개월째 위험천만한 도피 생활을 하고 있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또한 이들 가족 중에는 한국에 친척이 있는 국군 포로의 아들도 포함되어 있다(53쪽 상자 기사 참조). 이들은 지난 7월 말께 주중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해 여태껏 제3국을 떠돌고 있다.

이들의 사연이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현지에서 이들과 동행하고 있는 민간 단체의 한 관계자가 이들의 음성과 모습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들여와 관계 요로에 이들의 한국행을 도와 달라고 당부하면서부터다. 이 테이프는 김수환 추기경을 통해 청와대에도 전해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이들은 하루하루를 두려움과 조바심 속에 떨고 있다. 현지에서 전해져 오는 소식에 따르면 이들은 도피하다가 북한 특무요원(사회안전부 체포조)의 급습을 받아 몰살될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또 신변 위협 때문에 일부 여성은 중국 공안(경찰)에 적발되지 않기 위해 쌍꺼풀 수술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대부분 극심한 식량난을 못 견뎌 굶어 죽지 않으려고 탈출을 감행했다. 아홉 살·여덟 살짜리 아들과 딸을 데리고 부인과 함께 네 식구가 탈출한 이태훈씨(가명)의 경우 “일가 중에서만 최근 8명이 아사했다”라고 밝혔다. 또한 인민학교(초등학교)에서는 한 반 학생 중 절반 정도가 학교에 나오지 못할 뿐 아니라 교사들도 상당수가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민학교 1학년에 다니는 이씨의 아들 강혁군(가명)에 따르면, 한 학급 40명 중 그나마 학교에 꼬박꼬박 출석하는 인원은 15명. 게다가 그동안 이 반에서 굶어 죽은 아이들도 2명이나 된다는 것이 강혁군의 증언이다.

현재 북·중 국경지대에는 수많은 탈북자가 중국 공안과 북한 특무의 눈을 피해 은신·도피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가족 3명과 함께 탈출한 이태훈씨가 접경 지역에서 약 한 달간 은신하면서 목격한 탈북자만 해도 5백여 명에 이른다. 올해 들어서는 아사 직전 상태에서 국경을 넘었다가 은거지를 찾지 못해 접경 지역에서 숨진 시신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는 것이 이 곳을 다녀온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밝혀지기도 했다. 지난 여름 접경 지역을 다녀온 한 관계자는 “6월 한 달 동안 강을 건너다가 숨진 시신이 백여 구 발견됐으며, 이중 39구를 중국측이 수습해 북한에 넘겼다”라고 말했다.

정치적 이유나 범죄 때문에 북한을 탈출하는 망명자뿐만이 아니라 최근 1∼2년 사이에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고향을 등지는‘1차원적 탈출’이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이 기댈 언덕은 별로 많지 않다. 안기부 등 관계 당국이 여전히 정보 가치 등을 고려한 ‘선별 귀순’방침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를 만나 도움을 받거나 제3국에 친척이 살고 있어 도피에 필요한 자금을 보내주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몽골 등 내륙 지역이나 태국 등 동남아로 숨어든다. 현재 도피 중인 다섯 가족 중 일부도 몽골로 숨어들었다가 탈북자라는 사실이 우연히 알려져 죽을 고비를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믿다가 한 달 허비했다”

정부 당국은 탈북자들의 실상을 뻔히 알면서도 외교 마찰을 우려해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번 탈북자 11명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소식이 청와대에 알려진 것은 지난 8월께. 그러나 청와대의 긍정적 신호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들의 도피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관계 당국과 교감이 있었던 데다 가족 단위의 안전한 이동이 더 이상 쉽지 않다고 판단해 한국측의 물밑 지원을 기대하고 이동을 멈췄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한 달여를 허비했다”라고 밝혔다.

4∼10개월‘국제 미아’신세로 제3국을 떠돌고 있는 이들 11명에게는 세 가지 낙인이 찍혀 있다. 중국에서는 ‘범법자’로, 북한에서는‘배신자’로, 한국에서는‘골칫덩이’로 취급당하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끊임없이 이들의 위험을 호소하면서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이 구조 신호마저 끊기고 나면 한국행을 간절히 염원했던 이들 11명의 모습은 비디오 테이프 속에서만 ‘생존’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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