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개항 100년, 희망의 찬가 부른다
  • 목포·羅權一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1997.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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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100주년 맞아 동북아 중심 무역항 추진
좌절과 소외의 상징, 극심한 불균형 개발을 함축하는 역설적 의미로 ‘아껴놓은 땅’ ‘크게 써야 할 땅’으로 일컬어졌던 목포가 10월1일 개항 100년을 맞았다. 근대 도시 100년 역사를 맞은 전남 목포시(시장 권이담)는 지금 21세기에 동북아시아의 중심 무역항으로 발전한다는 미래상을 그리며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게다가 어느 때보다 이 지역 출신 정치인의 선전과 정권 교체를 바라는 시민들의 기대도 가득 실려 있다. ‘목포의 눈물’은 개항 100년 만에 ‘목포의 찬가’로 바뀔 수 있을 것인가?

광복 후 ‘비운의 도시’로 전락

개항 100년을 맞은 목포는 우선 예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활기에 가득 차 있다. 동북아 국제 무역항으로 발돋움할 신 외항 건설이 시작되었고, 무안 망운 국제 공항 건설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남도 문화를 꽃 피울 ‘목포 종합 문예회관’이 완공되었고, 시가지를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100년로’도 공사를 마쳤다.

목포의 도약 의지는 ‘제2 개항 선언문’에서도 엿볼 수 있다. 목포 출신 원로 극작가 차범석씨가 기초한 제2 개항 선언문은 목포가 ‘호남선의 종점이 아니라 국토 제 1호선의 시발점이며, 바다 열어 가꾼 100년의 꿈을 이룰 전진 기지’가 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아울러 목포를 다도해의 멋과 꿈을 바탕으로 삼고 남도 사람의 흥과 신명으로 반죽한 문화 예술의 산실로 자리매김한다. 100년 전의 개항이 다분히 일제의 강요에 의한 수탈 성격을 띠고 있었다면 올해 ‘제2 개항 선언’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개항인 셈이다.

목포시는 올해를 21세기 목포 발전의 계기로 삼는다는 방침을 세우고 ‘개항 100주년 사업 추진위’를 결성해 <목포 개항 100년사>를 발간하고 박화성·차범석·김 현·천승세·김지하를 배출한 예향으로서 <목포 문학 100년 문학지>를 펴냈다. 아울러 10월 한 달 동안 개항 100년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학술 세미나와 제37회 목포 예술제, 제 9회 목포 가요제, 목포권 도자기 축제, 전국 국악 경연 등을 벌이며 개항 100년을 자축할 예정이다.

목포는 일제의 강요에 따라 개항한 만큼 건물과 집 등에 일제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건물이 35년에 세워진 동양척식회사 건물이다. 광복 후 해군 헌병대로 사용되다 폐쇄되었으나 건물은 남아 있는 상태다. 목포시는 국방부에 건의해 역사 교육관으로 활용하거나 철거할 방침이다.

개항 100년 행사를 총괄하고 있는 ‘사단법인 목포 100년회’김준형 이사장은 행사의 의미와 관련해 “중심 주제는 ‘바다 열어 가꾼 100년, 미래 열어 선진 도약’이다. 개항 100년을 자축하는 것 못지 않게 발전 가능성이 충분한 목포의 미래를 위해 지역민들이 열심히 노력해 보자고 다짐하는 뜻이 더 크다”라고 말했다.

목포의 눈물로 상징되는 목포시는 또 ‘목포는 항구다’로 통한다. 1897년 부산과 인천에 이어 세 번째 국제 교역항으로 문을 연 목포는 천혜의 지리적 이점으로 30년대에는 남북한을 통틀어 전국 3대 항구이자 6대 도시로 전성기를 누렸다.
사회간접자본 확충이 활로

그러나 목포는 광복·분단과 더불어 ‘비운의 도시’로 전락했다. 한마디로 일제 때 번성했다가 광복 이후 주저앉은 ‘붐 타운(Boom Town)’성격을 지닌 도시라는 것이 지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일본과 교류가 끊기면서 무역항 기능이 쇠퇴했고, 경제 개발의 축이 동남권에 집중되면서 목포는 정체된 중소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게다가 야당 정치인 김대중씨가 정치적 부침을 겪으면서 목포는 비운의 도시라는 달갑지 않은 얘기를 들어 왔다. <목포의 눈물>이 ‘정치적 소외’와 ‘호남의 한(恨)’을 상징하는 전라도의 노래로 인식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대 도시로 출발한 지 벌써 100년이 되었지만 목포시의 현재는 초라하기만 하다. 인구 26만명으로 인구 규모 28위 중소 도시로 전락한 목포의 미래는 68년 착공된 호남선 복선화가 완공되는 시점이 2002년으로 또다시 미루어진 상태이고, 이미 정부가 약속한 호남고속철도 계획조차 경부고속철도에 밀려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목포 포럼’의 고문이자 이 지역 환경운동의 대부인 서한태씨(70·의사)는 “목포는 명색이 우리나라 국도와 철도의 시발점인데, 호남선 복선화라도 끝내고 나서 경부고속철도를 놓아야 순리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한다.

목포의 활로는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달려 있다. 무안 망운 국제 공항 건설, 서남권 신산업철도 건설, 목포 신 외항 건설을 비롯해 목포·인천 서해안 고속도로, 목포·광양 고속화도로 등 국도 1호선의 출발점인 목포를 기점으로 전국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것이 중국·일본을 잇는 황해권의 중심 무역항이 되는 것이 목포시의 비전이다. 목포시의 발전이 이러한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달려 있다고 볼 때 정부 차원의 대규모 투자는 필수다.

그러나 투자만이 목포 발전을 가져온다는 중앙 의존적인 타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정민 교수(목포대·지역개발학과)는 “외부로부터 대규모 재원이 투입되고 개발사업이 이루어진다고 목포가 저절로 발전되는 건 아니다. 투자로 인한 개발 효과를 내부화할 지역 기반을 스스로 구축하지 못할 경우 지역 개발의 열매는 다른 지역으로 유출되고 자본과 기술 면에서 외부 지역에 대한 종속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한다.

바야흐로 개항 100년을 맞은 목포는 ‘크게 써야 할 땅’으로 도약할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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