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사람들 "해태·쌍방울 구단 팔지 말라"
  • 광주·전주 羅權一 주재기자 ()
  • 승인 1997.12.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남 민심, 프로야구 해태·쌍방울 구단 매각 ‘절대 반대’
호남 프로 야구의 쌍두 마차 해태와 쌍방울이 휘청거리고 있다. 호남 야구 팬들로부터 열광적인 인기를 얻어온 ‘해태 타이거스’와 ‘쌍방울 레이더스’는 요즘 모기업인 해태와 쌍방울 그룹의 경영난으로 매각설과 해체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북을 연고로 하고 있는 쌍방울 레이더스(구단주 이의철)는 구단의 매각 발표에도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자 ‘국내 최고의 포수’박경완 선수를 현대에 현금 트레이드하는 등 팀의 기둥 선수들이 줄줄이 빠져나갈 위기에 처해 있다. 게다가 용병 수입도 포기하고 이미 인원 감축과 감량 경영을 천명해 놓은 상태여서 프로 야구 관계자들조차 쌍방울이 내년 시즌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을 정도이다.

국내 최고의 명문 구단 해태 타이거스(구단주 박건배)는 한국 시리즈 아홉 번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아놓고도 그룹의 경영난과 야구 천재 이종범 선수(27) 일본 진출 문제로 흔들리고 있다.

해태 구단측은 심각한 재정난과 관련해 “종금사와 은행의 지원으로 그룹 경영은 이미 정상화 되었다. 해태 구단은 끝까지 해태 그룹과 운명을 같이할 것이다”라며 매각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대기업들, 해태 구단에 군침

그러나 대우·SK·금호 등 대기업이 전국적인 지명도와 막대한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해태 구단을 인수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구단주의 입을 통해 ‘시민 구단’얘기까지 흘러나오는 판국이다.

해태 팬들의 구단 매각 반대는 확고하다. 프로 야구 출범 때부터 해태 팬이 되어 지난해부터 해태 응원단장을 맏고 있는 김창규씨(41)는 “해태 타이거스는 광주의 상징이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지역 연고가 없는 기업에 매각해서는 안된다. 최악의 경우 시민들에게 주식을 공모해 시민 구단으로라도 남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모그룹의 경영 위기에 따라 팀의 기둥 선수들도 흔들리고 있다. 최근 팀의 에이스 조계현 선수가 삼성으로 현금 4억원에 트레이드된 데 이어 노장 이순철은 코치 승격과 해외 연수 제의도 마다하고 자유 계약 선수로 풀어달라며 LG행을 희망하고 있다.

구단측은 경영 위기 타개책으로 감량 경영을 추진하며 일부 선수 방출과 코칭 스태프 축소를 단행할 예정이다. 11월 말부터 연봉 협상과 재계약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현금 트레이드와 방출설이 나돌아 선수·코치·감독 모두 마음이 편치 않다. 왼손 타자가 필요해 용병 수입에도 참여했지만 숀 헤어와 윌리엄 서비 두 사람을 지명해 놓고도 결국 돈 문제로 계약은 지지부진하다.

이종범 선수의 일본 프로 야구 진출 문제도 해태 타이거스로서는 뜨거운 감자이다. 팀 전력의 20∼30%를 차지한다는 이종범 선수는 일본 진출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구단의 절대 불가 방침에 반발해 구단주와의 직접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오른쪽 인터뷰 참조). 이종범 선수 일본 진출 문제는 호남인뿐만 아니라 국내 야구 팬들 초미의 관심사이다. 광주 시민들의 여론은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있다.

찬성하는 쪽은, 선수 개인을 위해서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광주 시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영남씨(39·여)는 “선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넓은 무대에서 뛰면서 국위 선양도 한다는데 당연히 보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이종범의 일본 진출을 반대한다는 광주시 농성동에 사는 윤행석씨(29)는 “이종범이나 이상훈(LG) 같은 우수한 선수들이 줄줄이 외국으로 빠져나간다면 국내 프로 야구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용병들이 판치게 되고 상대적으로 토종 선수들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국내 프로 야구 수준이 ‘동네 야구’로 전락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해태 2군 코치를 맡고 있는 왕년의 ‘홈런왕’김봉연씨(45)는 “종범이가 일본 무대에 진출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 욕심보다는 팀의 어려운 사정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며, 이종범 선수가 일본행을 포기하고 주저앉게 되리라고 전망했다.

이종범 선수 일본 진출 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11월16일 KBS 2TV의 한 프로그램이 전화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는 찬성이 반대보다 2배 가까이나 많이 접수되었다.

쌍방울, 선수·코치 10여 명 줄여 팀 유지

해태도 어렵지만 같은 호남 구단인 쌍방울 레이더스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전북도민이 ‘쌍방울 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그룹 사정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구단측이 직접 나서 매각을 발표했지만 거평그룹 등의 인수설이 잠시 나돌았을 뿐 매각 추진은 현재 제자리걸음이다.

쌍방울은 결국 감량 경영을 통해 팀을 유지한다는 대책을 세웠다. 내년 시즌에 대비해 선수 5∼10명을 정리하고 코칭 스태프도 4∼5명 정도 줄여 구단의 전체 예산을 올 시즌보다 20% 줄인 70억원 선에서 운영할 계획이다. 쌍방울 김성근 감독은 이와 관련해 “최악의 멤버로 내년 시즌을 치를 것 같다”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감량 경영을 추진하던 쌍방울 경영진은 지난 11일 구단의 안방을 맡고 있는 포수 박경완을 감독이나 코칭 스태프와 한마디 상의 없이 현금 9억원에 현대로 트레이드해 전북 도민으로부터 큰 반발을 샀다.

전주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홍식씨(40·전주시 삼천동)는 “전북 도민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속옷 하나라도 쌍방울 내의를 사주었다. 그런데도 열심히 해보려는 노력도 없이 돈 몇억원 받자고 박경완을 팔 수 있느냐. 이렇게 가다간 정말 ‘쌍방울만 차게 되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냐”라고 비난했다. 경영이 어렵다는 핑계로 투자는 못할망정 우수한 선수를 팔아 돈벌이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해태와 쌍방울 두 구단의 위기는 최근 선수들의 자유계약제 요구와 외국 진출 러시, 월드컵 열풍에 밀린 급격한 관중 감소 등으로 한국 프로 야구전체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